DAILY DEVOTIONS

매일, 말씀과 함께.

하루의 말씀을 읽고, 묵상을 삶으로 이어갑니다.

묵상 글 466

2024.03.22 · 최종혁

영원한 왕의 백성으로 누리는 복

마태복음 22:41-46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6). 다윗을 창조한 다윗의 근원이시며 또한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셨을 때,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

2024.03.21 · 최종혁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는 이웃 사랑

마태복음 22:34-40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마 9:5). 말하기 쉬운 것은 당연히 전자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아서 확인하기 어렵지만 일어나 걷는 것은 즉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웃을 사…

2024.03.20 · 최종혁

영원을 믿기에 오늘을 다르게 삽니다

마태복음 22:23-33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우리 관점에서는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실제로는 꽤나 다른 두 그룹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바리새인은 좀 더 종교적이었다면 사두개인은 좀 더 정치적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비롯해서 내세나 영혼의 불멸 등 영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땅에서 잘사는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두개인보다 바리새인을 더 많이 책망하셨던 것은 흥미롭…

2024.03.19 · 최종혁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며

마태복음 22:15-22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 사용되기 참 좋은 말씀입니다.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뒷부분, 즉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만 강조하고, 반대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앞부분, 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만 강조합니다. 아마 이렇게 말씀이 잘못 사용되기 쉬운…

2024.03.18 · 최종혁

구원은 은혜, 심판은 공의입니다

마태복음 22:1-14

지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에 이어 예수님은 다시 비유로 구원의 은혜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보다 확실하게 거절한 자들과 영접한 자들이 나옵니다. 거절한 자들은 ‘초청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았지만 혼인 잔치에 가기를 싫어 했습니다. 피치 못할 상황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싫어 했습니다. 그래서 가기를 거절하고 자기 할 일을 했습니다. 심지어 임금이 보…

2024.03.15 · 최종혁

회개를 돕는 힘든 사랑

마태복음 21:12-46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더 많은 증거나 더 확실한 논리적 근거와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믿고 싶은데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믿고 싶지 않은 불신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예수님에 대해 나쁘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진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2024.03.14 · 최종혁

주님, 우리의 눈을 뜨게 하소서

마태복음 20:29-21:11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따르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영혼의 진정한 구원자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보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두 맹인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 31절) 라고 소리치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은혜를 구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

2024.03.13 · 최종혁

받은 은혜로 섬기는 제자의 길

마태복음 20:17-28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습니다. 딱히 내가 크게 손해보거나 희생하지 않아도 될 때입니다. 그럴 때 섬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꼭 남의 칭찬이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름 잘했다는 자기 만족이 있기도 합니다. 진짜 섬김은 그런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낮추고 희생할 수 있느냐입니다. 교회 성도들이…

2024.03.11 · 최종혁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마태복음 19:13-30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히 그들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헌신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법이 없어도 될 사람들이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될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은 몰라도 죽고 나…

2024.03.08 · 최종혁

결혼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와 교회

마태복음 19:1-12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은 모든 하나님의 진리도 부정하고 그 가치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중 오늘날에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결혼일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의 언약이 결혼이었다면, 이제는 그 숫자가 다르거나 성별이 달라도 결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결혼이 아니어도 남녀가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혼을 해도 굳이 하나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

2024.03.07 · 최종혁

회개하고 용서하는 공동체

마태복음 18:15-35

최소한 교회는 죄가 없는 완벽한 공동체이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내가 교회에 있는한 그 교회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속한 교회가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죄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바로 회개와 용서를 통해서 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회개하고 회개한 자를 용서할 때 무너진 관계는 회복되고 죄의 영향력은 사라지게 됩니…

2024.03.06 · 최종혁

십자가를 기억하며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

마태복음 18:1-14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죄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도 아니고 하다못해 사도 바울도 아닌데 어쩌겠냐는 것입니다. 그런 핑계로 우리를 지옥에 가게 하는 죄를 별 것 아닌 것처럼 만듭니다. 그래도 되는 것처럼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죄를 범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러해서는 안됩니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한 것처럼 이불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