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에 이어 예수님은 다시 비유로 구원의 은혜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보다 확실하게 거절한 자들과 영접한 자들이 나옵니다.
거절한 자들은 ‘초청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았지만 혼인 잔치에 가기를 싫어 했습니다. 피치 못할 상황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싫어 했습니다. 그래서 가기를 거절하고 자기 할 일을 했습니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정도로 싫어했던 것입니다.
임금은 그들에 대하여 진노했고 그들을 진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초청 받은 사람들은 “아무나”였습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초청을 받아 혼인 잔치가 손님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역시 ‘거절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거절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비유는 온통 ‘청함’에 대한 말씀이었지’ 택함’은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처음 초청 받은 사람들이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택함’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라면 ‘청함’을 받은 자가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청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비유의 말씀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중 누구도 ‘강제로’ 복음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거절합니다.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강제로’ 복음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영접합니다.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고 나서 마치 강제로 어떤 일을 하게 된 사람처럼 후회하거나 짜증내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구원 받은 자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택함 받았구나’를 미리 알지 못합니다. 다만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할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이고,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입니다. 구원을 베풀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신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고려하지 않아도, 이런 구원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 받았다면, 그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의 깊이를 더욱 깨달아 구원하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