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받은 은혜로 섬기는 제자의 길

최종혁 · 2024.03.13 · 마태복음 20: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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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습니다.
딱히 내가 크게 손해보거나
희생하지 않아도 될 때입니다.
그럴 때 섬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꼭 남의 칭찬이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름 잘했다는
자기 만족이 있기도 합니다.

진짜 섬김은
그런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낮추고
희생할 수 있느냐입니다.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에서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좀 더 어려운 일이 됩니다.
성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보다
아내나 남편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희생의 댓가가 더 크고
돌아오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본은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희생한 섬김입니다.
그냥 ‘섬겨 준 것‘이 아니라
정말 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나는 ’섬기는 자‘로 있음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다른 신분과 마찬가지로
’종’이라는 나의 신분을 잊지 않고
그에 합당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3/12 마 20:1-16
예수님의 비유 중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이기는 가장 어려운 비유가
아마 오늘 본문의 비유일 것입니다.
아무리 읽어 봐도
먼저 온 품꾼의 말이 틀린 것이 없습니다.
더 수고 했으니
더 품삯을 받는 것이 공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말도
틀린 것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약속한 대로 주었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그에게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은 선을 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애초에 먼저 온 품꾼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은 주인입니다.
주인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한 데나리온이든
반 데나리온이든
그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선을 베풀었을 뿐입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방인의 구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선을 행한 사람은
십자가 위의 강도와 같은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볼 때
구원 받지 말아야할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십니다.
그 은혜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볼 때
나도 구원 받을만한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구원 받을만한 사람은 애초에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신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은 자로서
더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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