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왕국으로서 이스라엘의 전성기는 길지 못했습니다. 영적 전성기인 다윗 시대를 지나, 물질적으로도 전성기를 누렸던 솔로몬의 때가 끝나자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분열됩니다.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입니다. 열왕기상과 하는 다윗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솔로몬의 통치, 그리고 분열된 두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열왕기가 그저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한 책은 아닙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이 왕들에 대한 평가도 기록했습니다. 이 평가는 단지 한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내린 평가입니다. 따라서 평가의 기준은 당연히 얼마나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으로 나라를 잘 다스렸느냐가 아닙니다. 왕들이 이뤄낸 성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오직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냐입니다. 전자의 좋은 예는 다윗이고 후자의 예는 여로보암입니다.

다윗은 선한 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했고,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왕상 15:5). 다윗이 실제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우리아의 일”도 생각해 보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자신의 죄를 변명하려 하거나 축소하려 하지 않았고, 그 즉시로 죄를 자백했습니다(삼하 12:13). 그는 인구 조사를 했을 때도 그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다(삼하 24:10). 시편에서 그가 고백한 것을 보면 다윗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진실함을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시 51:5~6). 사울을 폐위하고 다음 왕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맞는 자를 찾아 지도자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그가 바로 다윗이었던 것입니다(삼상 13:14; 시 89:20; 행 13:22).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원하셨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연약하여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죄에 계속해서 머물려고 하거나 그것을 기뻐하지 않고 곧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런 자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반면에 여로보암은 악한 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종이었고 뛰어난 용사였으며 성실한 자였습니다(왕상 11:26, 28).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우상들을 숭배하자,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10 지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 놀라운 약속이 아닐 수 없는 약속을 받은 여로보암은 어떻게 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는 이 놀라운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떠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큰 일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 속한 지파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남왕국 유다의 땅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걱정했습니다. 곧 그들이 자신을 떠나 르호보암(솔로몬의 아들, 남쪽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왕)에게로 갈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때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고 더욱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어느새 그의 머리속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배하는 것이 문제이니, 이곳에서 예배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신이라고 말하며 그 금송아지들을 벧엘과 단에 두고 백성들에게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산당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하고, 레위인이 아닌 아무 사람이나 골라서 제사장으로 삼고 유대의 절기와 비슷한 절기를 만들어 지키게했습니다. 그렇게 백성들을 자신의 땅에 묶어 두어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어쩌는 그가 선택한 방법은 세상적으로 현명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악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하나하나 무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경고를 받게 되지만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왕상 13장).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백성들은 그의 영향 아래 범죄하게 되었고, 그와 그의 집은 하나님의 진노에 멸망하게 됩니다(왕상 15:28~30).

다윗이나 여로보암이나 연약한 인간인 것은 동일합니다. 여로보암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가 어떤 면에서 잘했는지 알기 어렵지만, 그도 전적으로 악한 일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분명한 차이는 그들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른 사람이었고(행 13:22),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등 뒤에 버려둔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4:9). 하나님을 눈 앞에 두고 따르느냐, 하나님을 등 뒤에 두고 버려두느냐가 이들 삶에 대한 평가를 극과 극으로 만든 것입니다.

다윗 후에 다윗과 같은 왕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아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그 마음이 여호와 앞에서 온전했습니다(왕상 15:11, 14). 히스기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어떤 왕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했던 왕입니다(왕하 18:3, 5). 요시야 왕처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이켰던 왕이 없었습니다(왕하 22:2; 23:25). 여호사밧은 아사와 같았습니다(왕상 22:43). 어떤 왕들은 선한 일들을 했지만 다윗과는 같지 않았던 왕들이 있습니다. 솔로몬(왕상 11:4), 아비얌(왕상 15:30), 아마샤(왕하 14:3), 아사랴(왕하 15:30, 그리고 요담(왕하 15:34)이 이런 왕들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많은 (혹은 대부분의) 왕들은 다윗과 같지 않았고, 오히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습니다. 다 열거하기에는 너무 많은 왕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특별히 아합에 대해서는 여로보암보다 더 악했다(왕상 16:30~33)고 성경은 평하고,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이에 비견됩니다(왕하 8:18, 27). 이런 평가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지목된 자들은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입니다(왕하 21:2~9, 20). 그의 지도력 아래 벌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가나안 땅의 여러 민족들보다 더욱 심했습니다.

이들이 모두 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이들을 평가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동일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느냐를 보십니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왕들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런 평가를 받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기 원하십니까? 사실 그 날은 언제가 될지 모릅니다. 내일 혹은 오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루 하루 하나님을 바라보고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혹은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하나님은 그런 삶을 산 당신의 종들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런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