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서 처음 나타나신 것은 창세기 12장으로 당시 아브라함은 75세였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지만 편의상 아브라함으로 통칭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시며 ‘땅, 나라(자손), 복 ’의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창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 놀라왔지만, 그 명령은 쉽게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그 땅을 보지도 못했고, 그의 아내는 불임이었으며, 익숙한 나라와 친족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멀었고 그가 순종해야 하는 명령은 가까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궁금해 하는 부분이지만 성경은 당시 아브라함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 아브라함이라는 개인에게 그런 약속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도 밝히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순종했다는 사실만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이 약속은 더욱 구체화 되고 분명해지며, 또한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셨는지도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창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땅과 자손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언하신 것입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아브라함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상태였습니다(13:1-2). 그와 함께 하던 조카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땅을 보이시며 또 다시 약속을 상기시키십니다.

창 13:14-17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크게 번성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땅의 티끌을 셀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자손들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이 부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땅을 얻는 것이나 복을 받는 것에 비해 자식에 대한 약속은 쉽게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른 약속들은 어느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지만, 자식에 대한 약속은 정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을 상속자로 지목하기도 하고(15:2),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 대신 그 여종을 통해 아들을 낳기도 했고(16:15), 하나님께서 재차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한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 웃으며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했습니다(17:15-18). 그에게 있어 자녀의 약속은 정말로 그냥 믿고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확신을 주시며 언약을 진행해 나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종을 상속자로 말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며 그의 자손이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15:4-5). 아브라함은 그런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하셨습니다(15:6).

그리고 아브라함이 잘 때에 하나님은 당시의 방법을 통해서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15:17-21).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으로 바꾸시고, 사라의 이름을 사래에서 사라(“여주인”)로 바꾸시며, 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행할 것을 아브라함에게 명하셨습니다(17장).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십니다(21:2).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냥 이삭을 주실 수 없으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이런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아브라함에게 겪게 하셨을까요?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중요한 한가지는 그 과정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그 때, 하나님은 그 일을 가능하게 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내신 것입니다. 이삭의 탄생 이후에(22장) 나오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그 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는 아무런 주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이삭을 하나님께 드립니다(히 11:17-19 참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삭의 삶, 야곱의 삶, 그리고 요셉의 삶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약속에 따라 신실하게 행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평탄한 삶을 살기도 하고 때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자기 욕심에 따라 살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하여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하고 여러 일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창세기의 시작에서는 유일한 행위자였던 ‘하나님’이 창세기의 뒤로 갈수록 조금씩 언급되는 빈도가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말하고 행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 마지막에 요셉이 그 형들에게 하는 말은 주목할 만합니다(45:8).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조건이 없고(15:12) 영원한 것(17:7)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두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그 언약에 신실하심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속성이며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해골을 약속의 땅으로 가지고 갈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50:24-25; 히 11:22). 출애굽 사건을 통해 그의 믿음은 허황된 것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출 13:19).

 

우리는 창세기를 살고 있지도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이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창세기를 통해서 드러난 이 조건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은 사실 아브라함과 그의 육신의 자손만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을 주기 원하셨습니다(12:3).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이 부분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갈 3:7-9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여전히 육적 아브라함 자손과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복은 믿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증명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그를 믿는 모든 자의 구원자가 되십니다(딤전 4:10; 요일 2:2).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엡 2:11-22).

 

여러분은 지금 이 약속 안에 계십니까, 아니면 밖에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을 누리는 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