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 시리즈는 매트 챈들러와 제라드 윌슨이 쓴 The Mingling of Souls(“결혼, 하고 싶다”, 두란노)의 첫 번째 부분인 “연애, 하고 싶다: 첫 끌림에서 영혼의 어우러짐까지” 부분을 정리하여 쓴 것입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결혼, 두 영혼의 어우러짐이다(The Mingling of Souls)

드디어 바른 끌림에 따라 연애와 구혼의 과정을 거쳐 결혼에 다다랐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영혼의 어우러짐”(The Mingling of Souls)입니다. 결혼은 단지 육체적, 정신적 연합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결혼이 언약(covenant)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언약과 계약(contract)을 구분 짓습니다. 저자는 오늘날의 결혼이 계약의 관계처럼 변질된 것에 통탄해합니다.

계약 결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마치 사업상 계약처럼 다룬다. ‘뭐든 50대 50이야. 항상 주는 만큼 받아야 해'(113-4pp).

이러한 풍조는 우리의 죄성과 아주 잘 들어맞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우리는 모든 관계를 일종의 계약으로 다루려고 한다. 배우자가 우리에게 잘할 때만 기꺼이 희생한다. 우리는 수긍이 갈 때만 배우자에게 복종한다. 우리는 배우자가 섬겨 주는 만큼만 섬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와 맺으신 은혜의 언약과 전혀 닮아 있지 않다(114-5pp).

하나님이 우리와 맺으신 언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악할 때,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 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결혼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결혼의 언약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50대 50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100을 전부 주는 관계다. 상대방이 100퍼센트 헌신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100퍼센트 헌신하는 관계다. 왜냐하면 결혼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먼저 죄인들을 구원함으로써 은혜의 언약을 보여 주셨으니 우리는 상대방이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해도 100퍼센트를 줘야 한다(115p).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사랑을 배우자에게 보이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무궁하고 이타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맛보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배우자를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부부 

저자는 나에게 꼭 맞는 소울메이트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이 그 배우자로 적합한지 조사하고 심문하는 것이 언약과 은혜에 반하는 개념이며 세상적인 개념이라고 지적합니다. “굳이 천생배필이라는 것이 있다면…바로 지금의 아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주관하여 이끄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혹은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공감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은 성경적으로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혼에 대해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막 10:9).

결혼은 헌신해야 하는 언약의 관계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확신이 자리합니다.

기뻐하는 공동체

저자가 다루고 있는 아가서에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공동체는 새로 탄생한 부부를 축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공동체는 두 부부에게 용기를 줍니다. 연합의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들을 지지하는 공동체의 역할을 다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관계이지만 두 사람만의 관계를 넘어서는 연합입니다.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 교회 성도들 등 수많은 사람이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는 이 부부와 함께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들이 기뻐하고 함께 격려하며 지지할 수 있는 결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유익합니다.

물론 다른 종교 배경에서 유일한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경우, 여러 가지 핍박이나 비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해 그런 핍박을 기꺼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이유로 두 사람을 둘러싼 공동체가 기뻐할 수 없고 지지하기 힘든 결혼을 하는 것은 가정의 큰 어려움이 될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두 사람의 인생 여정에 그들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어우러질 영혼들이 필요합니다. 결혼은 영혼의 어우러짐이며 영혼들의 어우러짐이기도 합니다.

남편의 희생적인 리드

저자는 아주 통찰력있는 말을 합니다.

남자들이여,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싸움은 정욕과의 싸움이 아니라 인류 타락 이후로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해 온 수동성과의 싸움이다. 아내에게 희생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지나친 공격성은 수동성에 대한 과잉보상일 뿐이다. 공격적이고 무례한 행동은 거짓 남성성일 뿐이다. 평화와 인내, 섬김이라는 어려운 길로 가지 않고 반응과 충동이라는 쉬운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128p).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연합하여 두 사람의 역할을 각각 잘 감당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가정의 리더로 남자를 세우셨습니다. 그의 역할은 머리입니다. 그것은 권위를 갖는 것과 동시에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아담이 그 옆에서 수동적으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아담을 찾으셔서 그 죄의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결혼의 관계로 들어가는 남편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이 머리이며 남편이 책임을 집니다. 수동적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 있으려는 자세는 가정이라는 차의 운전석에 앉아 몰고 가면서 운전대에서 손을 떼겠다는 말입니다. 많은 헌신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래 참음과 기도와 인내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머리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의 관계 속에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 보이신 사랑과 헌신과 인도하심을 기억하면서 그 모습을 닮아가는 남편이 돼야 합니다.

그러한 결단이 결혼 서약을 하는 모든 신랑이 “네”라고 큰소리로 외칠 때 함께 울려 퍼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결혼을 계획하시고 두 영혼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서 가정이 주 안에서 바로 서고 함께 하는 공동체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결혼에 두신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축복과 비밀을 부부가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