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1-3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서 땅과 씨(자손),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15장에 가서 그 언약을 공식적으로 체결하셨습니다. 이 언약의 성취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해야 할 것은 없었기에 이 언약은 ‘조건없는 언약’이라 불립니다. 그 이후의 기록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기록에서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는 주로 땅과 관련된 부분을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은 문자 그대로의 ‘땅’입니다. 영적인 하늘나라도 아니고 혹은 신대륙도 아닙니다. 특별히 창세기 15장 18-21절에서 하나님은 이 땅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도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땅을 점령하고 분배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모두 점령하지는 못합니다. 다른 하나님의 언약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대한 궁극적인 성취는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 후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수 1:2)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여호수아는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그 땅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시작합니다(1:10-15). 우리가 잘 아는 가나안 땅의 첫 성인 여리고 성에서의 전쟁은 6장에서 벌어집니다. 그 전까지 여호수아는 여러모로 전쟁을 준비하는데, 이 과정에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2장은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정탐꾼을 보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들의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담을 녹게 했었습니다(14:8). 하지만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은 그 땅의 거주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간담이 녹았다고 보고 합니다(2: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혹은 그들을 통해 행하셨던 이적이 그 땅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한 신임을 알게 하였던 것입니다(2:11).

3-4장은 요단 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애굽을 나올 때,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요단강을 건넌 이들은 홍해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이적에 하나님은 최소 3개의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첫째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는 것이었고, 둘째는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이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4:24). 그리고 끝으로는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3:7; 4:14).

4장까지의 사건을 통해 이제 그들은 전쟁을 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아직 더 중요한 준비가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할례’였습니다(5:2). 어떤 면에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제 강을 건너서 싸워야 할 적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이 모두 수술을 받아 꼼짝없이 낫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일부러 만든 것입니다. 적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당장에 이스라엘을 급습하여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할례가 중요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할례 없는 자’가 되어(5:7) 언약에 따라 주어지는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애굽으로 가던 모세를 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이유로 하나님께서 죽이시려던 장면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출 4:24-25).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백성을 인도해야 할 모세가 언약의 백성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할례에 순종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멸망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5:6). 광야 세대가 그 광야 생활을 통해 꼭 배웠어야 하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 즉 순종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어야 했습니다.

이 교훈은 여리고 성을 칠 때(6장)와 그 후 아이 성을 칠 때(7-8장)의 대조되는 결과를 통해 다시 한번 분명하게 그들이 배우게 됩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는 과정은 사실 ‘전쟁’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습니다. 일곱째 날까지 말씀에 순종해서 성을 돌고, 소리쳤을 때 성벽이 무너졌고 그들은 첫 성 여리고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성의 전투는 달랐습니다. 아이 성은 그들이 볼 때 상대적으로 정복하기 쉬운 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가 있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패배의 원인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이 성을 얕봤거나 인간의 힘으로 전략을 세워 전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7:11) 불순종이 이유였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믿음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순종함으로(7:15, 25-26; 8:30-35; 11:12, 15, 23; 14:5; 15:13)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갑니다(10:40; 11:16, 23; 12:1). 그리고 마침내 여호수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수 21:44-45)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백성들이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는지를 상기시키고(24:1-13), 결론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명합니다(24:14).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우상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님을 여호수아는 강력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꼭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의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 다른 무엇이 와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어떤 우상은 가끔 그 자리에 앉아있고, 어떤 우상은 자주 그 자리에 앉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생활의 필요조차도 하나님보다 먼저 올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 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호수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루시는데 있어 사람들의 믿음과 순종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걱정은 마시고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