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유지’에 있어 먼저 명확히 할 것이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것과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말과 ‘구약의 성도’는 동일어가 아닙니다. 관계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 모든 ‘자연인’의 관계는 동일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깨어졌습니다(롬 3:23).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죄로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두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우선, 여전히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에 있었던 자들에게 있어 율법은 그들의 죄를 드러내고 약속의 메시아에게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롬 3:20; 갈 3:24).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에게 있어 율법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관계에 있어 핵심은 ‘거룩’이었습니다. 거룩과 거룩하지 않음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백성이 함께 하는 방법은 두 가지만 존재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게 되든지, 거룩하지 않은 백성이 거룩하게 되든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이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즉, 거룩하게 ‘되신’ 분이 아니라 본래부터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 속성은 바뀌지도 않고 바뀔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옵션은 하나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백성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기 말씀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레 11:44, 45; 19:2; 20:26; 21:8). 하나님께서 ‘거룩’을 말씀하실 때, 그 기준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레위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준을 말씀해주십니다. 희생 제사(1-7장), 정한 것과 부정한 것(11-15장), 그리고 절기(16, 23장)에 관한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기준을 드러내십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죄를 범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지만, 동시에 그들이 죄를 범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희생 제사의 규례를 주셨습니다. 우선을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혹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율법의 모든 조항을 단지 겉으로 지키는 것만이 율법의 올바른 정신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순전하고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삼상 16:7). 그래서 레위기 26장 41절은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을 언급합니다. 율법책을 기록한 모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강조했고, “마음의 할례”를 받을 것을 명했습니다(신 10:16).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행위였고 증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레위기의 율법은 그저 법률이나 규례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 사랑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구약의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했는지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밧세바의 일로 범죄한 후,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날 것을 염려합니다(11절). 스스로 범죄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3-4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지만, 무작정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지 않습니다(15절). 하나님은 마음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시고(6절), 상한 심령(15절)을 원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19절). 이것이 바로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원하셨던 것입니다.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율법과 구약의 성도들에 대해서 쉽게 오해를 합니다. 그들은 뭔가 엄하기만 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아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에 매여서 사랑이라고는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 같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성도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더 알고 더욱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어 하고 그 뜻에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이 그들에게 그저 무거운 짐이었을까요? 시편 119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의 율법에 대한 태도가 어떤지 보시기 바랍니다. 몇 가지 표현만 인용하겠습니다.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16절)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20절)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7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97절)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27절)

율법은 구약의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새언약의 백성으로서 구약의 율법 아래에 있지는 않지만 그때의 성도들과 동일한 원리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저 ‘짐’으로만 느껴지신다면, 혹 정반대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신다면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가 올바른지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선 자는 그분의 말씀을 그저 짐으로 느끼거나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에 있어서도 구약의 성도들과 동일한 원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혹 죄를 범했을 때 그분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해결해야 합니다. 바로 죄를 죄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요일 1:5-2:3). 말씀을 배우고 순종함으로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 우리 모두가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