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는 시간상으로 여호수아가 죽은 후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지 않을 것을 염려하며 그들에게 다른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신신당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의 시작에서 우리는 불길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의 전쟁을 계속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들과 언약을 맺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분명 그들이 섬겨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출 34:12-13 “[12]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13]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삿 2:2-3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안타깝게도 여호수아의 염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가 됩니다.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후 사사기의 기록은 어떻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 하나님은 그에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기록합니다. 그 속에는 분명히 반복되는 그리고 점점 악화되어가는 패턴이 있습니다. 이 패턴은 ‘죄악의 소용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사기 2장 11~23절을 통해 먼저 이 패턴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2:11[footnote]삿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footnote]). 하나님을 버리고 그 땅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2:13[footnote]삿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footnote]).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셨었고(신 31:16[footnote]신 31: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footnote]), 모세도 자신의 죽음 직전에 경고한 내용입니다(신 31:27[footnote]신 31: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footnote]).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그들의 우상 숭배를 알고 있었기에 직접 그리고 매우 도전적으로 그들에서 ‘섬길 자를 택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수 24:15[footnote]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footnote]). 백성들의 머뭇거림에 여호수아는 언약을 맺고 큰 돌을 세워 약속의 징표로 삼기도 했습니다(수 24:25-27[footnote]수 24:25-27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footnote]). 경건한 인도자들의 경고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악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진노입니다(2:14[footnote]삿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footnote]).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악에 대해 진노하시고 그들을 다른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왜 이런 일이 생길까?’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그 언약에 따라서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결과로 이러한 일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서 율법의 말씀을 듣고 한 목소리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출 24:3). 그리고 그 안에는 그들의 순종에 대한 복과(레 26:3-13; 신 28:1-14) 불순종에 대한 화(저주)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레 26:14-45; 신 28:15-68). 그들이 불순종의 결과로 당하게 되는 화는 그들이 지금 불순종 가운데 있다는 경고등의 역할도 했습니다. 그저 화를 당하고 끝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기를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레 26:23, 27, 40-45).
다음 단계는 이스라엘의 괴로움입니다(2:15[footnote]삿 2: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footnote]).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로 그들은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심하여 견딜 수 없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할 사사를 일으키십니다(2:16[footnote]삿 2: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footnote]). 사사는 기본적으로 ‘다스리는 사람’, ‘재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실제로 사사들은 그보다 더 많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특별히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을 보면 군사 지도자의 역할이 많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사와 함께하시며 특별히 역사하셔서 그 백성을 대적의 손에서 구하십니다(2:18[footnote]삿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footnote]). 하지만 사사들이 모두 경건하며 우리가 따를 좋은 본보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분명한 약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의 경우 아내를 많이 두었고(8:30[footnote]삿 8: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footnote])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는데 후에 사람들은 에봇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8:27[footnote]삿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footnote]). 삼손의 경우는 더욱 죄악된 모습이 많았는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하신 이방 여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사들은 분명 특별한 목적으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일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했던 일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는 분명 모세와 여호수아같이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던 지도자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도 죄와 가까이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이 죽고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떠나 전보다 더 악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2:19[footnote]삿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footnote]). 사사기의 처음에 언급된 이 죄의 악순환은 사사시대 내내 반복됩니다.
특별히 17장부터 기록된 미가와 그 집 제사장의 이야기, 레위 사람과 첩의 이야기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이스라엘 내부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이 보여준 성적인 타락의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암흑의 시대입니다. 사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기보다 그들이 쫓아낸 가나안 사람들의 모습을 더욱 닮아있습니다. 참으로 비극입니다.
사사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딱 하나를 말하자면 저는 사사기의 마지막 말씀에서 교훈을 찾고 싶습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모든 비극적인 일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기준에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갔기에 그들은 더욱더 하나님과는 멀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세상이 그런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 안에서 기뻐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찬양하는 자들이 실제로는 주 밖에서도 기뻐하고 주님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을 채우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라고 찬양하면서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냥 그래 보이는 것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은 우리의 고백과는 다르게 우리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어리석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도 함께해야 합니다. 이미 실패한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면 똑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에게 옳게 보이는 내 소견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내 삶에 설 곳이 없습니다. 내 발에 등이 되어야 할 그분의 말씀은 내 발에 밟혀서 꺼진 등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사기가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실패한 길을 우리가 따르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 더욱 그분께 가까이가고 그분을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