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을 해석할 때 우리는 구약성경을 인용한 부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친절하게 지금 구약을 인용하고 있다는 힌트를 제시합니다.
예를 들면,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마 2:15)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마 3:3)
하지만 때로는 그 힌트가 없이 구약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2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10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은 시편 34편(70인역의 33편) 12~16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한글성경만으로는 쉽게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작은 힌트가 있다면
인용된 구약성경의 내용이 안으로 들여쓰기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인용된 첫 구절 “생명을 사랑하고…” 앞에 작게 기록된 부호 “ㄱ”을 찾아가보면
”시편 34:12이하”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성경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인용된 사실만 확인하고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누군가가 무엇을 인용하면 제대로 인용했는지,
혹은 무슨 문맥 속에서 인용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을 사용할 때
우리는 구약에 가서 본문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 34편 12~16절을 가져오겠습니다.
비교를 위해서 표로 정리해볼까요?
베드로전서 3:10-12절 |
시편 34편 12~16절 |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지어다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
거의 비슷한 내용이지만 약간의 차이점들이 보입니다.
신약시대에 사용된 구약성서가 LXX 혹은 Septuagint라 불리는 70인역 성경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글로 번역된 70인역을 찾기가 어렵네요.
12What man is there that desires life, loving to see good days?
13 Keep thy tongue from evil, and thy lips from speaking guile.
14 Turn away from evil, and do good; seek peace, and pursue it.
15 The eyes of the Lord are over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prayer:
16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em that do evil,
to destroy their memorial from the earth.
The righteous cried, and the Lord hearkened to them
Lancelot Charles Lee Brenton, The Septuagint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English Translation (London: Samuel Bagster and Sons, 1870), Ps 33:12–16
자세히 살펴보면 70인역(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주전 3세기경의 번역본)과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약간의 표현의 차이나 단어의 순서의 차이를 보이지만
의미상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을 찾아가서 확인하는 과정은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첫째,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의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진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구약의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미를 더하거나 뺄 수 없는 거룩한 진리였습니다.
둘째, 인용한 구약의 배경을 통해 저자의 의도가 더 풍성하게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시 34:1).
적진의 중심부 그것도 원수 앞에서 죽기 직전의 위기에 놓였던 다윗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권능으로 놓임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참된 복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사도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벧전 3:9)고 명령하고
그 목적에 대하여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인용한 이 말씀은 과거 다윗을 악인의 입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인용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 본문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만들어줍니다.
사실 베드로전서만 봐서는 9절의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가 오직
영적인 측면에 국한된다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베드로가 서신서에서 계속 강조한 부분이 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용된 시편의 본래 말씀은
“연수를 사랑하여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이 궁극적으로는 영적 구원이라는 미래에 완성될 것이지만,
현재 누리는 여러 가지 축복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축복은 다윗이 노래한 것처럼 생명을 보존하시고
위기에서 지켜주시는 것도 포함되며
영육간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좋은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호의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넷째, 때로 신약의 저자는 구약을 완전히 다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저자의 의도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는데(눅 4:18~19)
그 글은 이사야 61:1절이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라는 부분을
인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서신서에서 우리는 저자가 과거형 동사를 현재형으로 인용하거나
반대로 현재형을 과거형으로 인용하는 등
약간의 의도적인 변화를 주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도 저자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용된 본문을 찾아서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의 구약성경 사용에 대해 설명을 돕는 주석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영문으로는 한 권의 책인데, 한글판으로 번역되면서 여러 권으로 나누어진 책입니다.
그레고리 빌이 쓴 “신약의 구약사용 핸드북”
: http://mall.godpeople.com/?G=9788960923102
영문: http://www.amazon.com/Handbook-New-Testament-Use-Interpretation/dp/0801038960/ref=sr_1_1?ie=UTF8&qid=1437725334&sr=8-1&keywords=handbook+on+the+new+testament+use+of+the+old+testament&pebp=1437725121604&perid=08RNM635ABSWWKFY9V70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세트
:http://mall.godpeople.com/?G=1315288737-1
영문(이게 더 저렴하죠): http://www.amazon.com/Commentary-New-Testament-Use-Old/dp/0801026938/ref=sr_1_1?ie=UTF8&qid=1437725209&sr=8-1&keywords=old+testament+new+testa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