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舊正)을 맞아 성도들이 가족, 친척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많이 이동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다른 가족이 오는 것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그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 혹은 친척이 꼭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혼자만 신앙을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장 연장자가 되시는 분을(할아버지, 할머니) 중심으로 모여 가족끼리 예를 다하여 인사를 나누고(큰절) 음식을 먹으며 서로 교제하는 방식으로 명절을 보냅니다. 그 구심점이 되시는 분이 돌아가신 경우, 제사상을 차려서 예를 다하는 것이 한국의 유교적 전통에 따른 모습입니다.
신자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옛 전통에 따른 예의를 다하여 큰절을 올리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물론 현대식 인사법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는 특별한 때에 특별한 이유로 큰절을 하여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예의를 표하기 때문입니다. 큰절이라는 형식이 주는 어색함이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예의있게 인사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신자는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것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떠올립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출 22:20)
출애굽기의 이 명령은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에 기초한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사 44:6, 8; 45:5, 21). 이 언약의 계명을 기초로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우상을 멀리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을 처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가르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우상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이렇듯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 모두가 정죄하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제사는 우상을 숭배하는 일일까요? “제사”라는 말이 나오고 그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조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사의 의미’에 대해 국립민속박물관의 전통의례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고 그 근본에 보답하고자 하는 공경의 의식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조상이 계신 듯이 정성을 다하여,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고 후손에게 효성과 공경의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두 가지 요소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1) 먼저 성경적으로 올바른 부분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차례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출 20:12; 신 5:16; 마 19:19; 엡 6:2). 다음으로는 2) 부모로부터 복을 받는 것입니다. 두번째 부분이 토속종교(기복적인)와 융합되어 현재 우리가 드리는 제사의 미신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귀신이 되어 다시 찾아오고, 그 부모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복해준다는 사상은 원래 유교적 관점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복의 근원, 출처를 돌아가신 부모에게 둔다는 면에서 유사합니다.
신자가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바로 후자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복의 근원으로 두는 것입니다. 복과 화의 근원, 축복과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신 30:15; 애 3:38). 하나님의 자리에 조상을 두는 행위는 분명한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는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벧전 4:5; 계 20:12). 세상을 떠난 자는 복과 화를 가져올 자가 아니라 복과 화를 주시는 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대상입니다(수 24:20). 우리는 유일하신 재판관이요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예배하며, 그분께 심판을 받을 대상을 그분처럼 높이고 예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의 요소를 간과하지 맙시다. 믿지 않는 가족들이 신자가 제사상에 절하는 것을 거부할 때 느끼는 불쾌감은 조상을 하나님처럼 예배하지 않아서이기 보다는 부모님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물론 드물게 조상께 예배하는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그리스도인들이 제사를 멸시하면서 믿지 않는 가족이 제사를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제사드리는 날에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보면서 세상사람들이 한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우리는 하나님 믿어서 그런거 싫어해요”라고 말하면서 무례하게 행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예의나 존경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대로 성경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이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만 예배하겠다는 순종의 마음만큼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믿지 않는 다른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렇습니다. 전자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것만 좋은 간증이 아닙니다. 후자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것도 좋은 간증입니다.
그러니 이 두가지 요소를 잘 생각해보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아닌 조상에게 드려지는 예배에 내 신앙의 양심과 그것을 보고 있는 믿지 않는 가족들,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미칠 간증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대상을 복과 화의 주관자로 예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재판에 따라 정해진 곳에 계신 조상들을 섬기는 것의 의미는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말씀에 따라 하나님만 예배하는 길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핍박과 고난이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소망을 가지십시오. 절하지 않아서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후에 남은 가족들에게 미칠 기쁨으로 바꾸어주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좋은 간증을 보이는 것입니다. 절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하며 그것이 무례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선행으로 보여야 합니다. ‘이 사람은 절만 안하지, 우리보다 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이 남은 가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강력한 간증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만 섬기려는 훌륭한 자세는 참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만 예배하기 위해 조상에게 절하지 않는 것 역시 아름다운 순종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가족들,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들(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돌아가신 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헌신과 사랑을 간과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제사상에 절하지 않은 것을 대단한 업적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교만하게 높은 마음을 품으면서 남은 가족들에게는 무례하게 행하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상에 절하는 믿지 않는 가족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사랑하라”입니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좋은 간증으로 믿지 않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부모님을 기억하고 예의를 다하는 모습으로 남겨진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세리와 죄인을 만나주신 주님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들의 잔치에 참여하셨던 주님, 그들의 장례와 혼인 예식에 함께 하셨던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잃어버린 자와 함께 계셨고, 섬기는 자로 계셨습니다. 제사상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가족들을 섬기시렵니까? 어떻게 사랑을 보여주실 것입니까? 그 고민을 품고 올 설 연휴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보내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