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하는 자(헬: μοιχός)는 ‘배우자에게 신실하지 않은 자’(눅 18:11; 고전 6:9; 히 13:4) 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은 자’(약 4:4)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BDAG). 70인역에서는 잠언 6장 32절에 사용되었고(“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욥기 24장 15절에도 사용되었다(“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성경의 용례 외에도 이 단어는 ‘불법적인’ 그리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성적 관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간음이 부끄럽고 심각한 죄로 여겨진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대한민국 헌법 재판소는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간통죄를 즉시 폐지했다. ‘간음이 비도덕적 행위라고 해도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 국민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생활 영역에서 일어난 피해를 민법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해주지만, 형법으로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간음을 저지른 사람이 죄책감을 벗어버리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되어버렸다. 부부관계 밖에서 일어나는 성적인 관계, 간음에 대하여 “사랑하는 게 그렇게 큰 죄냐?”고 묻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첫째 질문: 간음은 왜 죄인가?
그러면 위의 질문에 대답을 찾아보자. 간음은 왜 죄가 될까? 먼저 부부관계에 있어서 간음은 실질적인 고통과 아픔을 주는 죄다. 남편이 아내를 배신하여 다른 대상과 성관계를 맺는 것,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성행위를 하는 것은 상대 배우자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다. 하나님의 기준인 성경의 원리를 살펴보지 않아도, 간음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은(마 7:12) 하나님을 모르고 성경을 무시하는 이들에게도 일반적으로 통하는 사회 통념이자 황금률이다. 배우자의 배신을 당할 때 느낄 고통과 배신감을 싫어한다면, 나 또한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마땅하다.
자 그러면 여기에 하나님을 초청해보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간음을 미워하신다면 간음이 죄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출 20:14, 십계명 중 제7계명), 간음하는 자는 관련된 대상과 함께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다(레 20:10). 신약 시대 예수님은 간음에 관한 오래된 구약의 율법을 폐지하셨을까? 그렇지 않다. 그분은 “무릇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부당한 이혼을 강하게 반대하시고 이후에 맺는 관계가 ‘간음’이라고 강력하게 책망하셨다(눅 16:18).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들은 결혼생활이 배우자와 나의 사적인 생활이라고 여기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간음은 둘만의 문제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이들은 절대 그렇게 취급할 수 없다. 결혼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두 사람이 언약을 맺은 짝의 관계이다(잠 2:17).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말 2:14).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결혼을 제정하신 분이며,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 앞에서 엄숙한 서약을 했다. 주례 없는 결혼을 해도 그 결혼의 주례는 하나님이 하셨으며, 하객이 없는 스몰 웨딩을 했어도 하나님은 그 결혼의 증인이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분을 업신여기며 멸시하지 않는 한, 결혼생활 가운데 일어난 간음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세운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선한 결혼, 하나님이 증인으로 지켜보시는 결혼생활 가운데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간음은 명백한 죄다.
둘째 질문: 간음은 왜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갈 정도로 큰 문제인가?
두 번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영적 간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남녀 사이에(부부 사이에) 일어난 범죄만 간음이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은 자’를 ‘간음한 자’라고 부른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과 함께 바알 및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간음하며”라고 책망했다(렘 7:9).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라고 말씀하셨다(렘 3:8). 하나님만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겼다(대상 5:25).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고 그 사람을 통해 자기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기 원하셨다(창 1:26-27).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신도 사람을 만드는 데 관여한 적이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서 사람에게 선한 것과 좋은 것을 주지 못한다. 사실 성경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상’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때론 그 우상이 돈, 재물, 쾌락, 안락, 자랑, 인기, 욕망 등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통해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며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주기 원하신다. 사람과 독점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숭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출 20:5; 34:14).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만 숭배하기는커녕 하나님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다 치우쳐 할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으며,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한 자가 되었다(시 14, 53). 그래서 하나님을 알되 감사하지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죄라고 말한 것을 행하면서 ‘그러면 좀 어때?’ ‘이게 그리 큰 문제야?’라고 말한다(롬 1).
하나님 대신 쾌락을 숭배하는 것, 하나님 대신 성적 욕망을 섬기는 것, 하나님 대신 자기가 원하는 정욕대로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서 맺은 관계를 쉽게 깨는 것. 세상은 그런 일에 관하여 일치하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큰 문제로 삼지 않겠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세상의 관점을 좇아 사는 일은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을 배역하고 배반하는 일이다. 영적 간음인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간음은 이전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일어난 영적 간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에게 신실한 사람은 절대로 남편이나 아내를 배반하고 간음을 행할 수 없다. 어쩌면 당신은 배우자를 배신한 적은 없지만 하나님을 배신한 적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의 집 곧 하나님의 나라에 왜 간음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는가? 간음한 남편이나 아내를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와 같다. 그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 부부의 친밀하고 정결한 관계는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신뢰가 깨졌을 때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신실하고 인자하고 고귀한 사랑의 크고 무궁함을 생각할 때, 그에 대한 반역은 더욱더 파괴적이고 심각한 죄다.
셋째 질문: 용서를 빌면 받아주실까?
간음한 자가 다시 배우자에게 받아들여지려면, 첫째, 죄를 범한 자의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둘째, 배우자가 용서하고 용납해야 한다. 끝까지 간음을 자랑스러워하고 잘못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떠넘기며 자기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부부관계를 다시 회복할 희망의 싹을 밟아버리는 사람이다. 자기 죄를 뼛속까지 깊이 뉘우치고 사죄하는 사람도 화목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상대 배우자의 진정한 용서와 사랑이 요구된다. 우리는 종종 이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낸 아름다운 부부를 본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 많은 분이다. 그분은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다른 말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섬기는 영적 간음을 범한 자라는 걸 아시면서도) 용서의 팔을 벌려 주셨다. 간음한 죄인이 스스로 결코 이룰 수 없는 하나님과의 화목은 하나님 쪽에서 먼저 내신 용서의 길로 가능해졌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길이다(요 14:6).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올 자가 없다. 반대로 그분을 통해서 누구든지 영적 간음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화목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간음한 자는 반드시 자기 죄를 뉘우쳐야 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살았던 것,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그분이 미워하시는 일을 자기가 섬기는 대상을 얻기 위해 행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거룩하고 신실하게 당신을 사랑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인지 깊이 헤아리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애통해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당신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 그분이 당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다시 화목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간음에 대한 죗값을 대신 치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나라에 들이시고 영원히 화목을 누리시는 이유는 당신 대신 죽음으로 당신의 영적 간음의 죗값을 치르신 그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도록 소원과 능력을 제공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다. 죄를 더 이상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죗값을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이제 하나님만 온전히 사랑하며 다른 우상을 멀리할 수 있다. 그들이 완벽해져서가 아니라 완벽하게 하나님만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의 정결하고 신실한 당신을 향한 사랑을 보시고 그 아들을 믿고 함께 한 당신을 ‘의롭다’, ‘신실하다’고 인정해주실 것이다.
만일 하나님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까지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착하게 살면, 그저 정직하게 살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 불리며 선량하게 산다면 그걸로 하나님을 배신한 영적 간음이 눈감아질까? 간음은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하고 선하고 악의가 없었고 순수하다고 포장해도 상대 배우자의 정숙하고 순결한 사랑을 짓밟은 죄의 심각성을 조금도 가볍게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사랑하며 산 사람이 그분이 먼저 내미신 용서와 화해의 손길인 예수 그리스도까지 거절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