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제목의 칼럼 시리즈를 시작하려 한다. 시리즈 제목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가?” 반대로 하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는가?”이다.

복음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강조하지만,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마 7:21). 앞으로 살펴볼 본문인 고린도전서 6장 9-11절에서 사도 바울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이런)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라고 못 박았다(10절). 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를 “불의한 자”라고 한 단어로(“unrighteous”) 밝혔고, 그 불의한 자의 구체적인 대상의 목록을 ‘①음행하는 자’, ‘②우상숭배 하는 자’, ‘③간음하는 자’, ‘④탐색하는 자’, ‘⑤남색 하는 자’, ‘⑥도적’, ‘⑦탐욕을 부리는 자’, ‘⑧술 취하는 자’, ‘⑨모욕하는 자’, ‘⑩속여 빼앗는 자’라고 소개했다.

아주 간혹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구분하여 천국 입장은 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 유산이나 상을 받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어지는 11절을 보면 그렇게 해석하기 무척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형제들을 책망했다. 세상과 천사를 판단할 자인 형제가 같은 형제를 고발하고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그 일을 행하는 걸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불의한 일인지 알지 못하느냐고 꾸짖는다(6절).

9-11절 말씀은 고린도 교회 안에 서로 세상 법정까지 가서 송사하는 형제들과 그들을 중재하는 일에 실패한 교회의 불의를 향한 바울의 강력한 훈계 아래 주어진 말씀이다.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냐”고 묻는다(9절). 1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령 안에서 죄 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입고 거룩함을 얻기 전에 그들도 불의한 자였다(“such were some of you”, 과거형). 하지만 복음을 맛본 고린도 성도들은 더는 불의한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며(19절),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20절).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는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죄 씻음을 받지 못한 자,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자다.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다.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한 마디로 “불의한 자”라 불렀고, 그 구체적인 대상을 하나의 명단으로 제공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자의 여러 명단들

고린도전서 6장 9-11절에만 이런 명단이 나오는 건 아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 또 다른 명단을 제시한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의 명단이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오(갈 5:19-21)

이 목록도 완벽한 목록은 아니다. 육체의 일을 나열하면서 마지막에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는 표현으로 육체에 속한 여러 가지 일을 모두 포함한다(얼마나 더 추가될지 과연 셀 수 있을까?).

에베소서에선 더 간략한 명단이 나와 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 5:5)

혹자는 마지막 표현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만,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해석하고 싶겠지만, 8절에 바울이 강력하게 권고한 것을 보면 어둠이었던 성도가 주 안에서 빛이 되었으니 마땅히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는 명령을 할 때 바울이 그렇게 느슨하고 모호한 기준을 염두에 뒀을 리 만무하다. 바울의 표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엄중한 경고의 표현이다.

로마서엔 하나님께서 사형 판결을 내릴 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29-32)

로마서 명단에 언급된 죄 중엔 구약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형 판결을 부과한 죄가 있다(예: 살인). 하지만 “모든 불의”,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무정한 자” 등 구약시대 율법보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죄를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말은 바울이 제공한 이 명단 역시 땅에서 목숨이 끊어지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끊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죄(그리고 죄인)의 명단임을 알 수 있다.

위에 있는 여러 명단에 들어 있는 자들 혹은 그런 행위를 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자다. 다른 말로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명단에 들어간 자에게 닥칠 심각한 결과, 지옥

종종 우리는 명단을 확인할 때가 있다. 가볍게는 예약한 식당이나 병원에 자기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중요한 시험에 합격 여부를 확인할 땐 더욱 진지하게 긴장하며 명단을 찾아본다. 회사에서 해고된 사람의 명단을 공개할 땐 거기에 자기 이름이 제발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간절히 그 명단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본다. 큰 사고가 나서 사망자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 그 명단에 있는지 확인하는 마음은 얼마나 무섭고 떨리겠는가?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자의 명단”만큼 심각하고 무서운 명단은 없다. 식당 예약에 실패하면 다른 식당에 가면 그만이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된다. 해고되면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무엇으로도 보상이 안 된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 부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형제들보다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제발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다. 이 땅에서 슬픔은 곧 익숙해지지만,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 것 곧 지옥의 고통은 더 크고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다(눅 16:27-28).

어떤 사람은 지옥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심지어 기독교인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질 음침하고 무서운 범죄를 생각해보라. 어떤 범죄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부패와 비리로 아무런 처벌 없이 지나가거나 아무도 모르게 이뤄지는 범행도 있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너무 불합리하고 공의롭지 못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흉악한 범죄자가 말도 안 되는 형량을 선고받았다는 인터넷 기사에 어떤 댓글이 달리는지 본 적이 있는가? 모두가 더 나은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는다. 만일 당신이 모든 지혜가 있어 범죄를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속속들이 알고 또 모든 능력이 있어 합당한 보응을 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경은 전지(모든 것을 아시고) 전능하신(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에 대하여 정의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람마다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11-15).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정의롭고 공의로우시다. 그래서 모든 불의에 대하여 조금도 가볍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예외가 없는 처벌을 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혹은 이 세상을 떠나서라도 참으로 죄를 죄질에 맞게 심판하는 재판관을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간절히 기대한다. 지옥은 그래서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한다. 위에 나오는 여러 명단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롭고 정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을 확증한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 지옥이라는 심판의 장소에서 죄질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다.

명단에 누가 들어 있는가? 혹시 나도 포함되어 있는가?

당신은 어쩌면 기독교의 이 진리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만일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는 명단이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장기를 팔아먹는 자, 연약한 여성을 억지로 성노예로 만들어 착취하는 자, 어마어마한 사기로 수많은 사람의 재산을 갈취하여 피해자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린 자, 연쇄살인범…이런 식으로 나와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당신은 그런 “불의한 자”를 영원히 지옥에 넣어 심판하는 하나님께 박수를 보내며 그분의 공의와 정의를 찬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불의한 자”의 명단, 특별히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고린도전서 6장 9-11절에 나오는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에 못 들어온다고 말씀하신 자들의 명단이다.

①음행하는 자
②우상숭배 하는 자
③간음하는 자
④탐색하는 자
⑤남색하는 자
⑥도적
⑦탐욕을 부리는 자
⑧술 취하는 자
⑨모욕하는 자
⑩속여 빼앗는 자

우리는 앞으로 이 ‘불의한 자’의 명단에 들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도달하기 원하는 목표는 첫째, 거룩하고 공의로운 재판관이 왜 이것을 불의로 보는지 제대로 알고 그것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이다. 둘째, 만일 당신이 각각의 불의에 조금이라도 해당이 된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피할 길 찾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칼럼 시리즈의 마무리 부분에서 “불의”에 반대되는 “의” 곧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어떻게 당신에게 구원의 소망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하기 원한다.

또한 어쩌면 당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 만일 전지전능한 하니님이 계시다면 이 땅의 불의를 왜 그냥 두고 보시는가?(나중에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용서를 받는 게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공의롭고 정의로운 일이라 말할 수 있는가?
  • 그리스도인이 저 목록에 있는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는가?
  •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은 현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칼럼 시리즈를 이어 나가며 이와 같은 질문에 조금이나마 성경을 통해 답을 찾게 되기를 원한다.

죄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 영원히 멸망시키는 악성 종양과 같다. 복음은 죄라는 악성 종양을 말끔히 제거하는 하나님의 은사 곧 은혜로운 선물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탄은 세상 사람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악성 종양이 있는지 검진할 때 수많은 검사를 한다. 몸 구석구석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암세포를 샅샅이 뒤져 살피는 것이다. 어떤 환자도 검사를 설렁설렁 대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최대한 정밀하게 검사하고 분석하여 정확한 결과를 얻기를 기대한다. 자, 당신은 이제 양날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사를 받게 될 것이다. 결과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마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와도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완벽한 치료제를 가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