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만연해있다. 두 사상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긍정적이다. 다원주의는 “개인이나 여러 집단이 기본으로 삼는 원칙이나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상대주의는 “모든 진리나 가치 따위의 절대적 타당성을 부인하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얼마나 좋은 사상인가? ‘당신이 믿는 것, 당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서로 맞혀가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 겸손과 배려가 담겨있고 친절하고 관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딱 좋은 사상이다.

이것을 종교에 대입해보면, 다원주의와 상대주의 문화 속에서 종교는 개인이나 집단이 참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자기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충분히 공생할 수 있다. 불교나 천주교, 모르몬교 등 수많은 종교가 현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사상과 큰 문제 없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요 14:6). 기독교는 절대적인 신 하나님과 그분이 계시하신 절대적인 원칙과 목적을 믿고 따른다. 기독교가 믿는 진리와 가치는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믿는 자를 극단적 이슬람교도처럼 무력으로 핍박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죽이라는 내용도 성경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할 수 있거든…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명령한다(롬 12:18). 하지만 성경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절대적 진리를 외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동료들을 기다리면서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했다(행 17:16). 그래서 우상을 파괴하고 우상숭배 하는 자를 핍박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당신이 믿는 신도 옳습니다’라고 좋게좋게 넘어갔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다(행 17:17). “어떤 에피쿠르소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했는데, 바로 그들이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기본 골격을 만들어낸 철학자들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말하며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의 기준이 되신 하나님만 참 신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아무리 친절해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자신’을 포함하여)을 인정할 수 없다.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을 성경은 “우상 숭배 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며(εἰδωλολάτρης),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못 박는다(고전 6:9; 엡 5:5). 계시록에선 “우상 숭배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며 “성 밖” 곧 하나님 나라 밖에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계 21:8; 22:15).

첫째 질문: 우상 숭배는 왜 죄인가?
기독교 밖에서 하는 이 질문에는 불만이 조금은 섞여 있을 법하다. 왜 기독교만 유독 자기만 옳다고 말하는가? 자기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으면 죄라고 말하는가? 지옥에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엔 못 들어가도, 다른 종교가 약속하는 낙원, 파라다이스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 기독교인은 아무리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를 갖춰서 말한다 해도, 하나님 외의 신을 인정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인정할 수 없다.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관점에서 우상 숭배가 죄인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숭배의 대상이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포함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숭배를 받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숭배하는 것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숭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의 영광과 바꾸는 행위다. 그래서 죄가 되는 것이다(출 20:3; 신 4:35; 5:7; 사 44:6; 45:5).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18-23)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가 자식과 아무리 닮았다 해도 자식이 아닌 대상을 자식인 셈 치자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를 잃어버려 울면서 애타게 찾는 아이가 참 부모를 찾기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가까운 형제, 친척, 이웃을 만나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므로 그분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신을 찾거나 피조물로 신을 삼거나,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신격화하는 것은 아무리 마음에 평안을 주고 효과가 있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해도 참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를 창조하신 신이 정말 유일하신 참 하나님뿐이라면(사 37:16; 요 17:3), 그분이 피조물에게 요구하신 것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고 예배하는 것이라면(신 6:5), 그분이 강력하게 금지하신 것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라면(출 20:3), 우상 숭배는 분명 죄다.

상대주의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상대주의는 담고 있는 사상의 본질과 어긋나게 인정하지 못하는 가치와 진리가 있다. 상대주의는 절대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절대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배격한다. 왜냐하면, 상대주의가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상대주의는 절대주의를 품을 수 없다. 흥미롭지 않은가?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믿는다면 기독교의 진리도 상대적으로 하나의 타당한 진리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절대적인 진리는 상대주의를 소멸시키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주의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믿는 절대적 신념이다.

둘째 질문: 우상 숭배는 왜 천국에 못 들어갈 정도로 큰 죄인가?
만일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믿는다면, 두 번째 질문 역시 굉장히 쉽게 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 따르면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는 죄고,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천국이 과연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 관점에서 천국은 참으로 다양한 장소가 될 수 있다. 대부분 개인이나 집단의 기대와 환상을 반영하고 있는 곳으로 두 사상이 낳는 자기중심적 사상이 천국을 상상할 때 어김없이 나타난다. 천국은 자신에게 행복하고 좋은 곳이다. 자기를 위로해주고 격려하는 곳. 평안과 안락함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곳.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이 그 나라의 영원한 왕이시다. 물론 그 나라 백성은 다스림을 받기도 하고, 왕의 명령에 따라 왕과 함께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왕이 하나님이시며, 천군 천사와 함께 모든 피조물이 그 왕을 경배하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천국엔 하나님 숭배자만 있는 곳이고 그러므로 하나님 숭배자만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과 다른 것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요구된다. 예수님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집 하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눅 16:13).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지옥에 들어간다. 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법은 어떤 면에서 참 쉽다. 하나님만 섬기면 된다. 오직 하나님만.

셋째 질문: 하나님만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만 섬긴다는 건 말은 참 쉽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불교나 다른 종교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교회만 가면 하나님만 섬기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만 섬기는 일은 단지 종교활동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는 일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고전 10:31).

존 칼빈은 인간의 마음이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우리 마음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인정, 재물, 평안과 안락, 더 얻기 원하는 탐심,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개인의 행복과 인기 등 하나님이 차지해야 할 자리에 언제든 대체할 것을 찾는 시도를 하루에도 수없이 하며 우상 숭배의 장이 되고 있다.

‘이것만 있으면 돼’, ‘이게 없어서 문제야’, ‘어떻게 하면 더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하나님이면 돼’, ‘하나님을 더욱 얻을 수 없어 문제야’,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전자의 질문을 품을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날마다 우상을 찍어내는 마음을 가진 이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치료제가 필요하다. 그분이 직접 집도하시는 마음 수술을 받아야 한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새로운 마음을 얻은 자는 그분이 주신 새 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하나님은 오늘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후에 그들을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 절대적인 구원의 길로 다른 그 어떤 대상이나 방법, 원리나 가치로 대체할 수 없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그 나라 왕이신 하나님께 영접받지 못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3)

하나님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전제 군주 국가다. 그러므로 반역자, 역모자가 그 나라에 들어올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선하고 거룩하며 인자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왕이시다. 그 왕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왕이라 주장하는 사람과 귀신이 가득한 곳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보낸 아들이 전달한 평화조약에 굴복하고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계속해서 침략해 들어오고 있다(눅 16:16).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