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μαλακός, 헬: 말라코스)은 무엇인가? 한글 성경은 ‘탐색’(개역, 개역개정)을 다양하게 번역했다: “여성화된 남자”(킹제임스흠정역),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새번역), “남창”(우리말성경). 영어 성경은 “effeminate”(NASB, “여자 같은”, “여성적인”), “men who practice homosexuality”(ESV, “동성애를 하는 남자”), “men who have sex with men”(NIV, “남자와 성관계하는 남자”), “male prostitutes”(NLT, “남창”) 등으로 번역했다. 특히 ESV와 NIV는 “탐색”에 이어 나오는 “남색”(ἀρσενοκοίτης)을 같이 묶어 동성애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파트너와 소극적인 파트너 둘을 모두 가리키도록 번역했다. 원래 헬라어 원어는 ‘부드러운’, ‘순종적인’이란 뜻이 있지만(마 11:8; 눅 7:25), 그리스-로마 시대 이미 이 단어는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실바, NIDNTTE, 3:216p).
그러므로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다음 칼럼까지,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동성애 하는 자가, ‘여성적인’ 역할을 하거나 남성적인 역할을 하거나 상관없이 모두 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라고 확정하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기 원한다(생물학적인 남성 간의 동성애 그리고 여성 간의 동성애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다). 특별히 이번 칼럼에선 “왜 탐색하는 것이 죄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 다음 칼럼에서는 “남색은 왜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갈 정도로 큰 문제인가?”에 대한 대답을 살펴보자.
첫째 질문: 탐색은(동성애는) 왜 죄인가?
오늘날 동성애자는 ‘성소수자’라고 불린다. ‘소수자’라는 말이 가리키듯 동성애자는 사회 전체 구성원 가운데 소수이다. 그들의 성적 지향성이 대중이 볼 때는 일반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고, 특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다수의 시민이 동성애자의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성적 취향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려고 노력하지만, 퀴어축제 등의 노골적인 활동과 적나라한 표현으로 동성애 사상을 대중에게 강요하려 할 때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한다. 쉽게 말해 ‘당신이 하는 것은 괜찮아, 하지만 우리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고 말한다.
동성애 사상을 소개하는 것이 왜 피해가 된다고 생각할까? 먼저, 어린 자녀가 자기 성정체성을 스스로 정립하기 전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조심스럽게 건전하고 균형 잡힌 성교육을 제공하려 하는데, 왜곡되고 편향된 포르노그래피에 노출되면 정신건강에도 해롭고 잘못된 성 관념을 가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퀴어축제와 같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의 동성애 홍보에 어린 자녀가 노출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사회적 약자(소수이기 때문에 다수에게 받는 차별과 억압을 받는 약자)라서 보호가 필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며 강요해서 생기는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 전체가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군인이 성전환 수술을 하고 와서 인권을 주장하며 그대로 군 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할 때, 다수는 불편하고 힘들어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목욕탕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현재까지 생물학적으로(유전적으로) 타고난 동성애가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그때그때 자신이 느끼는 대로 성이 이리저리 바뀔 수 있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기적으로 자기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단지 혼란만 주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부대비용을 다수가 제공하는 건 어떤가?
또 다른 피해는 인구 소멸의 문제이다.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소멸 국가 1호’(2100년에는 지금의 절반, 2300년에는 사실상 소멸)가 될 것이란 전망이 있다. 부부가 자녀를 낳아 사회를 존속하게 하는 것이 순리이다.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남성과 여성이 작용한다. 하지만 그것에 역행하여 자녀를 일부러 낳지 않을 때, 사회 자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입양이나 인공수정, 대리모 등을 통해 종족 보존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부부관계를 통해서 사회가 존속되는 것보다는 인구 소멸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동성애가 보편화 될수록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탐색은(동성애는) 하나님 앞에서 왜 죄인가?
그러면 이제 하나님을 논의 안에 초청하자. 지금까지는 동성애가 관계 속에서, 사회 가운데 미치는 피해 측면에서 살펴봤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왜 동성애가 죄인지 생각해보기 원한다. 동성애가 정상 혹은 순리가 아니라 역리(롬 1:26)라고 말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그리고 왜 창조하셨는지 살펴볼 때 아주 명백하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드셨다(창 1:26). 하나님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를 만들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7). 두 사람에게 명령하신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창 1:28). 그들이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생물학적으로 다르게 만드셔서, 각자 자신의 성 역할을 다할 때 번성하여 자손을 땅에 충만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남자에게서 여자를 창조하셨고(창 2:21-22),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 여기서 “배필”이란 히브리어 원어의 어원에는 ‘반대의’(opposite)라는 의미가 있는데, 남자를 보완하는(남자는 여자를 보완하는) 대상으로 여러 가지 남자가 갖지 않은 성품이나 특징(성적 특징 포함)을 지닌 존재로 여자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범죄하기 전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는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모든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 모델이 되었다(창 2:24).
무엇이 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죄 없던 세상에 그 행위를 가져다 놓을 때, 그것이 정상적으로 하나님 앞에 선하게 작동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동성애는 에덴동산에 머물 수 없는 죄다. 동성애자는 하나님의 명령,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계속해서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에 어긋난 행위다.
범죄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셨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충만하게 하는 임무에 실패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임무를 맡기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허물과 죄가 있는 상태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하고 거룩하신 뜻이 무엇인지 율법을 통해 알려주시고, 제사를 통해 죄와 허물을 씻고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이 밝히 말씀하신 선하고 거룩하신 뜻에 따르면 동성애가 죄인가 하는 점이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레 18:29)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신 22:5)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싫어하시는 죄라는 말이다. 동성애를 행하는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신약의 목소리가 구약시대부터 울려 퍼진다. 구약을 기록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신약 성경에 동일한 기준을 제시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성령께선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26-27, 32)
그리고 동성애를 가증한 일이라 규정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가운데 그런 일 행한 자를 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성령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신약 성경에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성애는 단지 개인의 성적 지향 선택이며 똑같은 사람으로서 인권을 보장하고 삶의 방식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수긍한다면, 타인과 사회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율해가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말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분이 계시하신 선하고 거룩하신 뜻을 무시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그분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선악 간에 심판하실 이시며,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성경을 통해 밝히 보이셨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로 동성애를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하신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을 이용하여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파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미를 변형,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여러 가지 논리로 동성애를 수용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그분이 의도하신 뜻대로 해석하고 믿는다면, 절대로 동성애를 누구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누구든지 그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그분의 말씀을 업신여겨야 할 것이다.
동성애가 죄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성애를 유지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약물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순리가 아니라 역리에 따른 불필요한 비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지만, 동성애가 죄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려야만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하면서까지 내 욕구를 채우기 원하는 것, 그 삐딱하고 완악한 마음은 교만이나 여타 다른 죄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철저히 반역적이다. 그래서 동성애는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