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24):
심심풀이로 심리테스트를 하는 건 어때요?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몇 년에 걸쳐 만든 심리테스트”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몇 년간 임상을 걸쳐 성격 성향을 9가지로 나누어서 파악한 그림 테스트입니다. 9장의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하나 고르면 자기의 성격 성향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죠.


(youtube 캡쳐)

제가 선택한 그림은 첫 번째 그림이었는데, “민감하고 사색적인 성향”이라고 합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제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걸 매우 싫어하고 남과 잡담하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성향이 있지만 친구들을 매우 깊이 있게 사귀는데 이로 인해 내적 평화와 안정감을 얻습니다. 오랜 시간 혼자 있어도 좀처럼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는데, 뒤이어 등장한 다른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거기에도 제 성격과 유사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다른 그림을 택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하며 받아들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그림을 확신을 가지고 고른 것도 아닙니다. 여러 그림 중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시간에 쫓겨 성급히 고른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제 성격,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테스트 결과를 믿고 따를 수 있을까요?

‘어차피 심리테스트는 심심풀이로 하는 것 아니냐?’라고 묻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운세’를 심심풀이로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진지하게 믿고 따르는 정직한 크리스천은 과연 성경이 심리테스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테스트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1. 심리테스트, 믿을 수 있나?

만일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고전 2:11a, 우리말성경)

사람의 생각은 오직 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그 사람의 영, 자신의 속사람). 아무리 수년간 연구를 했고 임상 시험을 거쳤다 해도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심리테스트 제작자들은 헤아려본 적이 없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한 적도 없고 오랜 관찰과 경험으로 나의 성향을 파악한 것도 아닙니다. 수십 년 지기 친구에게 내 성격과 성향에 대한 조언을 들을 땐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겠지만, 나를 만난 적도 없는 심리학자가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관찰과 실험을 한 결과를 종합하여 9가지로 성격을 분류하고 임의로 선택한 그림에 따라 그중 하나가 내 성격이요 성향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성격, 성향뿐만이 아닙니다. 심리테스트로 알아보는 나의 업무 성향, 나의 최대 관심사, 치명적인 매력, 마음 속 두려움, 연애 스타일, 사랑의 유형, 운명의 상대, 나의 노후 준비 스타일, 올해의 운세까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 각자가 조용히 자기 마음속 깊이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알 수 있지, 몇 가지 보기 중에 골라서 맞춰야 할 내용이 아닙니다. 가령 나의 업무 성향은 내가 보통 어떻게 일하는지 잘 생각해보거나 직장 동료에게 물어 알 수 있지 몇 가지 그림이나 보기 중 하나를 골라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는 내용이지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론과 방식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닙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와서 “당신의 매력은 이거야”라고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그러나 심리학자가 다년간 연구했다고 하니 신뢰하는 것입니다. 나를 만난 적도 관찰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또 어떤 항목은 예언적이기까지 합니다. 운명의 상대, 노후 준비 스타일, 올해의 운세 등은 마음의 상태와 무관한 운명과 운수와 관련된 막연한 내용입니다. 아무리 오랜 연구를 한 심리학자라 해도 나의 운명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습니까? 모두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말입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심리테스트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병원이나 상담소에서 하는 심리검사(예로 MBTI)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서울시청소년상담지원센터 이한녕 상담팀장은 ‘이 검사들이 개인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도구가 되긴 어렵다’고 말하며 “전문가의 해석 아래 학생, 학부모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평소 행동 유형, 고민, 환경적 조건 등의 정보와 함께 이런 도구가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한녕 팀장은 또한 “60억 인구가 있다면 60억 성격 유형이 있다고 할 만큼 성격 유형은 다양하다”고 말합니다(참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298565.html).

쉽게 말해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인 아이의 심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 아이의 부모, 아이 본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평소 행동 유형에 관해 알아보며, 환경적 조건을 살펴보면서 지혜롭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명철한 사람이 길어내는 것이지(잠 20:5), 단순화 유형화한 심리검사 도구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심리테스트, 참고할 수 있나?

심리학자나 전문상담가들도 심리검사(심리테스트)를 맹신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하나의 예상 자료일 뿐 확실한 근거가 있는 자료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고만 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참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반신반의하라는 것일까요? 재미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우연히 맞으면 신기해하라는 것일까요? ‘참고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살펴서 생각하다” 혹은 “살펴서 도움이 될 만한 재료로 삼다”입니다. 내 성격, 잠재성, 적성, 특징에 관한 예상 자료를 어떻게 참고할 수 있을까요? 확신할 수 없는 내용 중 무엇을 도움이 될 만한 재료로 삼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심리검사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검사 결과 대부분을 도움이 될 만한 재료로 삼습니다. 마치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그동안 몰랐던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 것처럼, 자신의 성향과 특징에 따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법을 찾아낸 것처럼 심리 검사 결과를 참고합니다.

아이가 그린 몇 장의 그림 때문에 부모의 자녀 양육 방식을 고쳐야 하고, 문제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자녀가 적어 낸 답을 통해 자녀의 특징과 성향이 결정됩니다. 종종 TV에서 심리 검사 전문가가 해석하는 아이의 심리, 자녀의 심리 검사 결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를 보는데, 이는 참고와 맹신의 구분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때로는 개인의 도덕적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도 자신의 심리상태를 심리 검사를 통해 입증하고 그 책임에서 멀어지려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고-맹신을 넘어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확실하게 믿을 수 없는 심리 검사 결과를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는지 불명확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맹신하기 쉽고 때론 악용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20세기가 돼서야 창조된 ‘심리검사(psychological test)’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3. 심리테스트, 무엇을 대체하는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 마음을 살피고 시험해 달라고 구합니다. 자기 마음속 악한 행위가 있다면 그것을 고쳐주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의 마음, 성격, 성향, 적성, 특정 유형, 삶의 방식, 미래의 방향까지 정확히 들여다보고 다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인생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시 139:16).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대하 6:30)

하나님 한 분만이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아십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아십니다. 그 동기와 계획을 아시고, 그 결과와 운명을 아십니다.

왜 20세기에 사람이 만들어낸 ‘심리 검사’가 오늘날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릴까요? 사람들이 참고만 하라고 말하면서 맹신하고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오직 하나님만 정확하게 아시는 것을 하나님 아닌 곳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리 검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무신론자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심리 검사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을 심리 검사로 대체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를 시험해 달라’라고 구하면서 누구보다도 나의 마음을 잘 아는 내 영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살펴보려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만든 심리 검사 도구로 나 자신을 분별하고 남이 말해주는 나의 마음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나와 성정이 같은 사람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해석을 들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가진 사람을 도와주려는 사람의 의도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 검사 도구 그 배후에 있는 반성경적(무신론적) 이론과 가설을 생각해보면, 심리 검사는 단순히 참고할 수 있는 객관적인 분석 도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관찰하는 방법은 객관적일지 모르나 그 해석은 다분히 철학적입니다. 사람이 정립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해석이지요.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신 이가 말씀하신 ‘사람 마음에 관한 해석’과 그 창조주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심리 검사의 해석 중 우리는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요?

무엇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를 떠나 사람이 정립한 해석을 찾아야 할까요? 어쩌면 심리 검사는 하나님 고유의 영역을 대체하려고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특히 그것을 찾는 이가 인생의 의미와 살아갈 방법을 그것을 통해 모색한다면 말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 마음의 검사를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psychological) 시험(test)하시는 분은 내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살아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 8:26). 그분 앞에 나아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고 바른길로 인도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리테스트로는 우리의 자질, 장래, 운세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지혜의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마음을 헤아리고 분별해야 합니다. 자녀나 배우자의 문제는 하나님의 기준 아래 함께 나누는 친밀한 교제와 대화를 통해 알아낼 일이지 몇 가지 그림과 보기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정신적 문제나 신체적 문제는 전문가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분명하지 않은 이론과 검사 도구를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 그 검사 결과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순종을 멀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아이의 심각한 문제를 훈육하기 위해 체벌을 하려고 하는데 심리 검사 결과 아이는 오히려 따뜻한 관심과 포용이 필요한 심리 상태이니 무조건 덮어주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또 우리 마음은 그런 검사 결과를 쉽게 신봉하거나 오용할 수 있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을 변함없이 신뢰할 수 있는 견고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고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는 일에 충분한 그 말씀을 다른 것으로, 특히 심리 검사로 대체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