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6):
#1. 고후 3:18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에서 현재 삶에서 그리스도처럼 변화하는 것인가요? 천국에서 주를 볼 때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것 아닌가요?

#2. 요한일서 1장 6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세요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그(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는 것이 현재의 삶에서인지 아니면 천국에서인지’가 오늘의 질문입니다. 섣불리 답하기 전에 먼저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18절이 어떤 이야기 흐름 속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경에서는 고린도후서 3장에 대한 소제목으로 “새 언약의 일꾼들”이라 적어놓았습니다. 3장이 말하려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본문을 쭉 읽어보면 옛 언약의 일꾼과 새 언약의 일꾼을 계속해서 비교합니다.

옛 언약의 일꾼 새 언약의 일꾼(6절)
먹, 돌판(3절) 영, 마음판(3절)
율법의 조문(6절) 영(6절)
죽이는 것(6절) 살리는 것(6절)
율법의 조문의 직분(7절) 영의 직분(8절)
정죄의 직분(9절) 의의 직분(9절)
없어질 것(11절) 길이 있을 것(11절)

둘 다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그들이 전달한 내용의 차이가(옛 언약, 새 언약) 크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계속해서 둘을 비교하면서 설명합니다. 두 언약의 공통점은 둘 다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점입니다(8-11절).

옛 언약은 율법의 조문으로 돌판에 기록되었고 죄를 알려주는 목적이 있으며 결국 죄 때문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것으로 마음 판에 새겨지며 영혼을 살리는 영속적인 것입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언약을 전달하는 일꾼들이 일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12절에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들이 일하는 자세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바울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사도, 교사 등) 즉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그들은 담대히 선포합니다.

반면 옛 언약 일꾼의 대표주자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 있던 “없어질 영광”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얼굴에 수건을 씁니다(출 34:33-35).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13절)

모세가 수건을 쓴 것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각각 새 언약에 대한 비교의 대상으로 사용됩니다.

첫째, 옛 언약도 일시적으로 있다 사라질 영광이었지만 너무 영광스러워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면 영속적인 새 언약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냐?(7-11절).

둘째, 옛 언약은 사라질 것이므로 그것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가렸지만 새 언약은 영원한 것이므로 수건으로 가릴 필요 없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12, 14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어떤 의미에서 수건을 그들 마음에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완고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합니다(14절). 오직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주께 돌아갈 때 그 수건이 벗겨져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16-17절). 일시적인 영광이 아닌 그 영광이 가리키는 바 영속적인 영광의 구주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18절 본문을 읽어봅시다. 새 언약의 일꾼인 “우리”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새 언약의 일꾼은 수건을 쓸 필요가 없기에 벗어버리고 새 언약의 주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게 합니다. 주의 영이 그렇게 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을 때 그 얼굴에 영광의 광채가 났던 것처럼(일시적)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새 언약의 일꾼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그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합니다.

4장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복음”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는 수단이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본문 속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새 언약의 일꾼들에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은 새 언약의 모든 백성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기록한 대로 그 완성은 “그때”에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고전 13:12).

 

 #2.

요한일서 1장 6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논리적인 구조가 잘 들어맞는 문장입니다. 한 눈에 들어오도록 바꿔보겠습니다.

만일(if)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말하고(say)
어둠 가운데 행한다(walk in the darkness)

그렇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lie)
진리를 행하지(do not practice the truth) 아니함이다

먼저, 이 문장은 조건문입니다. 그래서 “만일”로 시작합니다.

주어는 “우리”고 전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어둠에 행하는 것입니다. 어둠에 행한다는 것은 죄를 범한다와 같은 말입니다(8-10절 참조).

만일 말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지만 행동은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고, 실제로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빛이시기 때문에(5절), 어둠 가운데 행하면서 그분과 사귈 수 없습니다. 그분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오직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7절에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행함을 강조한 나머지 죄에서 완전히 멀어진 행함만이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7절에 따라나오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는 미래형이지만 실제 헬라어는 현재형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와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사귐은 오직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지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빛 가운데 행하기 때문에” 사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에 빛 가운데 행할 수 있고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사귐이 가능해졌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면 요한의 의도가 명확해집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