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7):
인간의 문제행동이 죄의 결과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구원받고 나서도 문제 행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구원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까?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그 때는 피조물 세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창 1:31). 아담의 범죄로 인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고통을” 겪게 되었고(롬 8:22) 사람을 더럽히는 문제의 본질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 죄에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막 7:20-23).

부모의 양육방식이나 가정환경, 친구들과의 관계, 사건과 사고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개인의 삶에 문제를 가져오고 그에 대한 반응을 유발하지만, 외부 요인과 반응 사이에 일어나는 작용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죄인의 본성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습니다(히 4:15). 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외부적 요인이 문제행동을 낳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은 모든 문제를 일으킬만한(우리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외부요인 가운데서도 죄를 하나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질문의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만 분명히 하기 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문제행동은 치료가 필요한 육체의 질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을 포함한 모든 질병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인류가 겪고 있는 결과물이지만 개인에게 일어난 문제행동이 육체의 질병(뇌세포나 호르몬 문제 등)에 기인한다면 합당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죄 때문이니까 죄를 다루면 육체의 질병은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디모데에게 그의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합니다(딤전 5:23).

인간의 문제행동이 죄의 결과라면
그 문제행동을 구원받고 나서도 지속할 때 구원을 다시 점검해야 할까요?

먼저, 구원을 점검한다는 것은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건이 있었는지를 점검하거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된 적이 있었는가를 고심해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로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과거 태어난 기록을 들춰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증거를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합니다. 그레고리 빌이 이를 도식화하여 설명하였습니다(그레고리 빌, “신약성경신학”, 874~77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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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구원을 신뢰함으로 확신을 얻습니다. 날마다 흔들리는 감정과 의지는 바다의 물결처럼 우리의 확신을 뒤흔들 수 있지만 깊은 바닷속에 배를 단단히 고정하는 닻처럼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얻습니다(요일 5:9~15).

또한, 우리는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의 문제를 발견합니다. 이 또한 구원의 확신을 가져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이상 죄에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완전성화주의”는 성경의 진리에 어긋나는 이단적 가르침입니다(요일 1:8-10).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갖고 내가 싸우고 있는 죄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데도 삶이 따라오지 않을 때, 즉 구원의 확신을 가져오는 “선행” 혹은 “열매”의 측면에서 스스로 굉장히 의심스러울 때 우리는 구원을 의심해야 하는가? 점검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마 7:21).

그레고리 빌이 그린 삼각형이 의자라고 생각을 한다면 의자를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구원 약속을 신뢰, 성령을 통한 죄의 각성, 선행) 중 하나가 부실하면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가 계속해서 부실하고 의심을 받는다면 구원 자체에 대한 견고하고 확실한 확신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행”, “열매” 부분을 강조하면서 구원과 연결지어 말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 3:9)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눅 6:43)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2)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문제행동을 보일 때 구원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의 확신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순종하며 사는가에 달린 것은 아닙니다. 선행은 구원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확실한 구원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어야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 얻었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각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과 내면의 죄에 대한 성령의 탄식을 통해 우리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죄와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문제행동을 바라보면서 과연 내 안에 성령님이 살아계셔서 나를 변화시키고 계시는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가 원하시는 것을 맺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입은 신자는 실족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확신을 줍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간다는 확신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특히 반복되는 죄를 친구로 삼아 곁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하고 싸우는 것이 우리가 죄에 대하여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히 12:4).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그분이 영화롭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롬 8:30).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롬 8:26-27). 그래서 우리가 겪는 모든 외부요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실 선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됩니다(롬 8:28).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포된 우리는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