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22):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질문이 조금 공격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돼서 그렇습니다. 왜 이 질문을 하는지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

질문(20)에서 우리는 “심리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대답을 찾아보았습니다. 1) 철학적 성격을 지닌 심리학 이론이 성경과 상충하기 때문에 포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2) 현대 심리학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그 전제와 해석이 비성경적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3) 객관적인 관찰 결과나 설문 결과를 통해 충분히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의 문제를 성경이 충분히 다룬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질문(21)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ADHD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ADHD는 검사실 결과로 나타난 ‘뇌 장애’이기 보다는 드러나는 기질의 특징을 통해 진단하는 만큼 1) 기질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 신체적 영역만 다룰 것이 아니라 영적(마음) 영역도 다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3) 의학적 치료를 전면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 한계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선 두 질문과 그 대답을 생각해보면, 저는 심리학이 주는 유익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철학(무신론)과 그 철학에 기초한 실험의 전제, 해석을 경계합니다. 특별히 심리학이 성경이 진단하는 사람의 영적 문제를 부정할 때, 심리치료가 성경이 제시하는 해결책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종교로 치부할 때,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1. 고통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저는 먼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문제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것이 육체의 질병에서 기인한다면 약물치료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은 육체와 마음을 억지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가 육체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육체의 문제가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때로 모든 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없는 육체의 통증이 있듯, 마음 혹은 정신적 질병을 검사를 통해 알아내기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호르몬 문제, 가족관계에서 오는 고통,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개인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감정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는 실질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은 주변 사람에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그 고통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정신이 약한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편견과 오해를 거두고,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오늘날 과거보다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중에는 자기 절제나 인내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정신적 문제로 진단하여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심리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게으르고 무책임한(정신이 해이한) 사람이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는 호소하는 고통의 실체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를 만나시면서 한 번도 그들에게 “너희 죄 때문에 이런 병을 앓고 있으면서 억울한 척하지 마라, 핑계 대지 마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저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의 비참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셨습니다(요 11:35). 그들을 치유하기 원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마음의 병을 가진 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며 그들이 치유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심리치료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심리치료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한계를 말할까요?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가 환자를 다루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필요한 약물을 고르고 처방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환자에게 문제를 가져오는 외부요인을 찾아내거나 환자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심리치료의 한계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심리치료의 한계는 심리학 자체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바로 성경이 진단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영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신적 질병과 영적 질병(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교회에서 죄를 다루고 심리치료사는 정신적 문제만 다루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경우엔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뇌 장애’나 육체적 질병에 기인한 정신적 문제의 경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그것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요인에 의한 정신적 문제(분노, 두려움, 조급함, 게으름, 우울증)에 영적인 문제가 완벽하게 제외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과 개인의 기질이 남들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아낼 수 있지만, 그렇게 생긴 분노라고 하여 하나님과 이웃에게 표출된 죄악 된 행동 양식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리치료사는 분노의 원인을 외부 환경에서 찾고 동시에 환자 본인의 기질을 문제로 삼을 것입니다. 환경을 개선하고 개인의 태도를 개선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과 인간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내 감정을 쏟아내는 것으로 내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 상대방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그의 평안을 모조리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수평적 인간관계에서 분노를 해결하려면 수직적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마땅한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이해한다면 그 안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에게 부어진 은혜와 사랑이 나의 분노를 모두 잠재울 만큼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심리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지 않습니다. 피상담자의 주권을 말합니다. 심리치료는 창조주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내 삶의 창조자는 나입니다. 심리치료는 나의 분노를 잠재울 위대한 사랑의 주를 말하지 않습니다. 심리치료사가 제시하는 나의 분노와 싸우게 하는 치료제는 예수님에 비해 너무나 연약합니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심리학에 근거한 심리치료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를 일으키는 영적 영역에 대해 침묵하고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3. 참된 치료자를 인정합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우리는 크리스천의 시각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서, 하나님만이 참된 치료자 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참 쉽게 이 사실을 지나칩니다. 당연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참된 치료자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질병을 고쳐주지 않으신다 해도(그런 경우를 적지 않게 봅니다)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모두가 완벽한 치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생명수나무 잎사귀들이 만국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계 22:2).

에드워드 웰쉬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 무엇도(사단이나 질병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 일을 진행 해 가는 동안 이 사실을 기억하고 새 힘을 얻자.(뇌 책임인가, 내 책임인가, 212p)

심리치료가 마음의 질병을 고치는 좋은 도구가 되고, 심리치료사가 나를 평안과 기쁨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당신에게 진정한 치유를 가져다주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신약에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참된 치료자 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롬 5:8). 그분이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이 한계가 있는 심리학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와 평안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마음의 질병에서 나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실 수 있는 참된 치료자이십니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필요한 심리치료를 받더라도 그것에 완전히 의존하지 말고 생로병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창조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을 가장 많이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치유를 기대하며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