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구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 8절)

전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고 하나님 은혜로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을 참으로 겸손하게 만들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찬양하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면 내가 할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구원을 가져다주시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계속해서 살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바꿔주시는 것일까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합당한 태도가 정말 수동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당신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그 합당한 태도에 관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 믿으라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에베소서 2:8). 예수님도 병든 자를 고쳐주시면서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구원했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9:22; 마가복음 5:34; 10:52; 누가복음 7:50; 8:48; 17:19; 18:42). 베드로는 “영혼의 구원”이 “믿음의 결국” 즉 믿음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베드로전서 1:9).

“믿음”이 구원을 받는 수단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러 번 “믿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가복음 1:15; 11:22, 24; 요한복음 10:38; 12:36; 14:1, 11). 사도들 역시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믿음이 “구원의 수단”이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구원하시지만, 믿음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구원을 받는 수단이자 통로이지, 구원의 조건이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할 때 굉장히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만일 “믿음”이 구원의 선행 조건이자 근거라면, 결국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진지하게 열심히 잘 믿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열심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으며, 결국엔 우리의 “믿음”이라는 “행위”로 구원을 취득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믿음”이 수단이자 통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가르치고(에베소서 2:8),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운 구원의 수단이라면 우리는 그 “믿음”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 “믿음”의 대상이자 수여자이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뿐입니다(로마서 3:27; 고린도전서 1:31).

바른 믿음은 바른 대상에게 둔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바른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관한 바른 내용에 기초합니다. 곧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바른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

결국 “믿음”이란 내가 믿고 따르던 대상,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여러 가지 생각을 버리고, 죄로 인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철저한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권위 아래 겸손히 굴복하여 과거에 따르던 대상에게서 돌이켜 말씀이 약속하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낮추라

자신을 낮추는 것을 두글자로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9-14절에는 예수님의 비유가 있는데, 거기에 종교적으로 많은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과 반대로 많은 사람에게 죄인이라 손가락질받은 세리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은 유대인 앞에서 가르치고 본이 되는 삶을 사는 지도자였고, 세리는 유대인을 배신한 매국노였습니다. 그 두 사람은 성전에 기도하러 각각 올라왔는데,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바리새인: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누가복음 18장 11-12절)

세리: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18장 13절)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앞이 아닌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한쪽에 서서 위와 같이 기도합니다. 기도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바리새인은 자신이 볼 때 흉악한 죄인들 특히 세리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잘 드리고 있다고 자기 행위를 내세웁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흉악범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적어도 이런저런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어디까지나 그 판단 기준은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해서 내린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자기가 행하는 의로운 일이 자기를 구원할 만큼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보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세리의 기도를 보십시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세리라고 자기보다 흉악한 범죄자를 찾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자기 행위를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나보다 더 못된 세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성전에 올라와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충분히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다른 사람에게 향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 향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가슴을 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죄로 인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한 상태를 철저히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8장 14절)

참된 믿음은 이러한 “낮아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과 자기를 비교하며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사람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겸손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인지 말할 때 그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 기준 앞에 자신을 낮추어 세리처럼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자신의 무능력함을 철저히 바라볼 수 있도록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십시오. 오직 주 앞에서 낮추는 자를 주께서 높이실 것입니다(야고보서 4:10).

3. 회개하라

회개는 가던 길을 돌이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종으로 살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3:2; 4: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것이었습니다(누가복음 5:32). 사도들이 선포한 메시지 역시 “회개하고 돌이키라”였습니다(사도행전 2:38; 3:19).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자기 죄의 심각성을 본 사람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되었는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죄에 종노릇 하며 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로마서 6장 2절)

그래서 믿음은 참된 회개의 열매입니다. 당신이 정말 죄의 길에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여전히 나 자신을 위한 삶,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에게 행여 복음에 관한 바른 지식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참으로 믿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장 21절)

4. 영접하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 그것을 성경은 또 다른 말로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어떤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믿는 것이란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무엇을 했는지 그 분명한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믿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상을 향한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참이라고 믿고 받아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상에 대해 믿음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의 기록과 예수님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5:39).

물론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눈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으로 영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합니다. 소아시아에서 예수님을 본 적도 없던 이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편지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베드로전서 1장 8-9절)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그것이 참된 믿음의 증거입니다. 참된 믿음은 본 적도 없고 지금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만물과 말씀으로 성령이 분명히 보여주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10:15; 요한일서 5:6).

5. 행하라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참된 믿음의 증거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이 공식을 야고보는 아주 분명하게 이렇게 정리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장 17절)

믿음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수단 혹은 통로라고 말할 때, “행함”이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은 참입니다. 앞에서부터 설명했던 믿음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나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 자기를 낮추어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분의 의로운 삶과 십자가 공로로 값없이 내어주신 영원한 생명을 받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전과 완전히 다른 삶, 즉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삶의 변화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보증으로 성령을 각 사람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성령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 안에서 충만한 능력으로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19-26)

만일 당신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성령의 열매를 당신 삶을 통해 맺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으로 사는 당신에게 성령으로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에 합당한 순종, 믿음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지금까지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구원을 오직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시는 측면과 사람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측면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 역시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며,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의 구원을 값없이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아무도 자기의 믿음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모든 죄인에게 자기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고 요구합니다. 죄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명령합니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거룩하게 되어 영화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알고 행하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성경의 요구를 요약하자면, 성경은 죄인에게 “믿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은혜로 당신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당신은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믿으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