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구절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도서 7장 20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장 10-12절)
세상에는 악과 슬픔, 고난, 전쟁, 미움이 존재합니다. 욕심과 시기, 교만이 존재합니다.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사람은 분노할 줄 알고 교묘하게 말하고 행동하여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데 능숙합니다. 미개한 짐승들에 비해 뛰어난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에서 우리는 짐승들에게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함을 봅니다. 세상에 죄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각각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입니다.
① 어떤 사람은 죄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끼치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나 시기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으므로 죄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뭔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가져오는 말과 행동만 죄라고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속에 가득 끓고 있는 것이 겉으로 표출되는 것은 시간문제고, 마음에 불타오르는 분노가 올바른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② 또 어떤 사람은 죄란 여러 가지 나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각각 사람마다 잘못된 습관을 지닐 수 있는데 그 습관에 따라 잘못된 말과 행동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개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을 때 사람은 많은 경우에 습관적으로 하기보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강렬한 욕망에 따라 죄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단지 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③ 또 다른 견해는 죄가 그릇된 생각이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모든 죄는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죄는 그저 잘못된 생각으로 벌어진 실수가 아닙니다. 내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 사람을 다치게 하고 나서 단순히 ‘판단 실수’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④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은 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단지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규칙을 깨는 것이 죄라고 여겨지는 것이지, 죄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이나 강간 같은 중범죄도 사회가 그것을 금해야 한다고 동의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이러한 죄에 대한 논의는 오직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죄책감이 없습니다. 개는 옆집 강아지 밥을 몰래 먹었다고 밤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웃집 고양이에게 집이 생겼다고 질투하는 고양이는 없습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양심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죄악 가운데 태어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편 5절)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시편 58편 3절)
1. 죄의 정의
이제 성경이 죄에 관해 뭐라고 말하는지 살펴봅시다. 일단 성경은 죄가 “제 갈 길로 간 것”이라고 말합니다(이사야 53:6). 또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4).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며(요한일서 3:4),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야고보서 4:17)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요한복음 16:9)도 죄입니다. “믿음에 따라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로마서 14:23). “하나님의 속성에 반하는 모든 것들”이 다 죄입니다(롬 3:23).
이 다양한 죄에 관한 성경의 설명을 잘 정리해주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로마서 1장입니다. 20-23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장 20-23절)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피조물 중 하나입니다. 만물이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미련한 마음에 생각이 허망해지고 어두워져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자기 자신이나 다른 피조물(짐승뿐만 아니라 돈, 명예, 쾌락 등도 포함)을 높이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죄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것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상실한 마음에 온갖 죄를 들여다 놓습니다.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나니,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상실한 마음이 남게 되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위에 언급한 온갖 더러운 죄가 맺히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예레미야 2장 13절)
결론적으로 성경이 정의하는 죄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에서 비롯된 모든 하나님의 속성에 반하는 마음과 태도와 행동을 말합니다.
2. 죄의 기원
죄는 태어나서 새롭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악설을 지지합니다. 성경은 죄가 사람의 악한 본성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로마서 7:18).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시편 51:5).
그렇다면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처음 죄는 하늘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천사였던 루시퍼(사탄 혹은 마귀라고도 부릅니다)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합니다(이사야 14:12-14). 그의 죄는 교만이었습니다(에스겔 28:15-17). 그는 이 죄로 인해 하늘에서 쫓겨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여러 귀신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합니다(계 12:4). 마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아담과 하와를 찾아갑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 사건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이 머물던 동산을 경작하게 하시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실과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하십니다(창세기 3:15-17).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를 두셨는데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두신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와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 3장 1절)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기준에 의심을 불어넣었습니다. 마귀는 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마치 부모님이 자녀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단 한 가지를 금했는데 누군가 와서 ‘너희 부모는 항상 하지 말라고만 하지?’라고 마음을 격동시키는 격입니다.
하와는 걸려들었습니다. 그녀도 이것에 불만입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세기 3:2-3). 보십시오. 하와는 하나님이 만지지도 말라고 하신 것처럼 답답해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말이죠. 또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에 의심을 갖습니다.
이제 마귀는 본색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세기 3:4-5)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정반대 이야기를 합니다.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싫어하신 거야…’
아담과 하와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기준이 있었습니다. 마귀는 그 기준을 무시하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말에 유혹되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장 6절)
이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기준 대신 자신의 욕심을 선택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기 원하여 자기 자신의 생각을 교만하게 드높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사람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고 싶어 했습니다.
3. 죄의 결과
창세기 3장 16-24절의 말씀은 그 죄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죄로 인해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영적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분리’를 말합니다. 육체의 죽음이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면,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영원히 단절(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단절된 것입니다. 그들이 머물던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창 3:22-24). 범죄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사람은 죄와 허물로 인해 죽었습니다(엡 2:1).
또 다른 죄의 저주는 모든 인류에게 찾아온 육체적 죽음이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창 3:19). 사람은 반드시 육체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로마서 6:23).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히브리서 9:27).
죄의 결과로 여자는 해산하는 수고와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창 3:16). 또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돕는 배필로서 질서 아래 순종하며 겸손히 섬기는 역할이 주어졌지만, 이제는 스스로 머리가 되기 원하고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리드하는 건전하고 겸손한 리더십이 아닌 강요와 압박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는 권위주의가 생겼습니다. 이 또한 죄의 저주였습니다. 오늘날 가정이 무너지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자들은 일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창 3:17-19). 물론, 일 자체가 죄의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동산을 경작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창 1:28-30; 2:15). 그러나 이제 일이 수고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땅에서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올라왔고 땀을 흘리며 많은 수고를 해야만 소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죄가 없다면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 죽음을 당한 사람은 육체적 죽음, 육체의 수고스런 노동, 가정의 불화뿐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세상 풍조를 따르고, 마귀를 따르며, 각각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대로 살면서 온갖 죄를 범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엡 2:1-3).
4. 결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누가복음 19:10).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십시오.
1. 당신은 언제나 이타적입니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합니까?
2. 당신은 언제나 시기와 탐심에서 자유롭습니까?
3.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다 행했습니까?
4. 당신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였습니까?
5. 당신은 언제나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까?
6. 당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였습니까?
7. 당신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완벽하였습니까?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Perfect)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장 48절)
만일 위의 질문 중 단 하나라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의 성경의 기준에 따라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 앞에서 당신은 죄인입니다. 물론 당신이 여러 가지 선한 일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위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열심히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준점을 보십시오.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말합니다(로마서 8:7).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분은 아닌 것을 그렇다고 슬쩍 넘어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정상참작하여 죄가 있는 것을 없는 셈 치자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그분은 공의롭지 못한 분으로 하나님이 아니게 됩니다. 그분은 과녁을 벗어난 것을 과녁에 맞춘 것으로 해주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공의로운 기준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결국 죄인이라는 결론입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장 10-12절)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구원의 첫 시작입니다.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기준 아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깨달을 때 당신은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죄의 결과로 죽음 이후에 우리에게 찾아온 것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