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구절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이사야 40장 18절)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라 조금만 잘못해도 큰 벌을 내리는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과 나의 행복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는 존재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붙들 수 있고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는 책,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기 11:7). 바로 이 성경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스스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과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가지고 계신 속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속성입니다(이것을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이라 부릅니다).

1. 자존하심(Self-Existent)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애굽기 3장 14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자존한다는 것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존재하며, 누군가에 의해 존재하게 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자존함’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모든 물체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됩니다. 모든 생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탄생한 원인이 있고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말은 그들이 무언가에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밤 잠을 자야 합니다. 매 끼니에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호흡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합니다. 의존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 어떤 것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고 그 만물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고 말합니다. 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브리서 1: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입니다. 모든 의존적인 만물들이,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 자족하심(Self-Sufficient)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사도행전 17장 24-25절)

‘자족하심’과 ‘자존하심’은 긴밀하게 연결된 속성입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며 그 어떤 것에도 의존적이지 않으신다는 말은 곧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만족을 찾기 위해 평생을 허비한다’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관계에서도 사람은 배우자가 필요하고 가족이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아무런 부족함이나, 충분하지 못한 구석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이 부분을 많이 오해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필요하다.’ ‘하나님도 사람이 필요해서 만드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때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이러이러한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께 이렇게 하겠다’고 흥정 혹은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족하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아무런 부족함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영원하심(Eternal)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편 90편 2절)

두 가지 면에서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첫째, 존재에 있어서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적이 없으시고 시작된 적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계속해서 계셨던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소멸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영원까지 계속해서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외의 모든 만물은 그렇지 않아서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이사야 44:6).

둘째, 하나님의 속성이 영원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쇠퇴합니다. 육체의 능력과 기력도 점점 쇠합니다. 재능도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도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들, 그리고 다음에 살펴볼 그분의 성품들 모든 것이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4. 무한하심(Infinite)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편 147편 5절)

하나님의 속성은 단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속성은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암기력이 뛰어나도 한계는 존재합니다. 아무리 빠른 육상선수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령 100m를 2초에 뛸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지혜와 지식의 한계가 있고 재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영원하며 무한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을 구속하거나 제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도 모든 만물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작은 곤충이나 식물을 평생 연구해도 그것의 오묘함과 복잡함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신체기관에 대한 공부 역시 끝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위대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씀으로 지으신 분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지혜와 능력에 한계가 없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태양과 지구도 그분의 말씀 한 마디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얼마나 위대하고 초월적인 존재입니까? 욥의 친구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됩니다.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기 11:7)

5. 전능하심(All-Powerful)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기 42장 2절)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못 하시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는 능력이 있으셨습니다(창세기 1:1).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를 사하기도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으며, 바다를 잠잠케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못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반(反)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지신 속성에 반대되는 것들을 하지 못하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일관성 있게 능력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운 당신의 계획에 따라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커다란 지진이나 재앙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이 힘없이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러한 대재앙들은 인간이 무기력하고 힘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하며 위대한 분이신지도 말해줍니다. 그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이사야 40:15-17).

6. 전지하심(All-Knowing)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편 147편 4-5절)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이사야 46장 10절)

전지하심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별들의 수를 세시고 그것을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현재 발견한 별의 수만 해도 1에 22개의 ‘0’을 붙인 수라고 합니다. 8개의 ‘0’을 붙이면 1억이라고 하니 엄청난 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먹고 자면서 8시간씩 숫자만 세면 60년이 걸려야 1억을 셀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22개의 ‘0’이 붙으면 얼마나 많은 숫자입니까. 그 많은 별을 이름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지각과 지혜는 무궁합니다.

또 성경은 그분의 지혜와 지식에 한계가 없음을 다른 말로 설명합니다. 이사야 말씀을 보십시오. 그분은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리고 시작 전부터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아십니다.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일을 이전에 벌써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잘 예견하고 추측하여 맞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분이 아시는 것에 오류가 있거나 한계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는 것에 있어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30).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하나님도 이것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은밀히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모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이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셔서 혹은 너무 먼 존재라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당신의 머리카락의 수도 세십니다. 쉽게 떨어지는 머리카락 한 가닥도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당신도 때로 잘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마음도 하나님은 정확히 아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예레미야 17:10).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욥기 34:21).

정리

여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속성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 다른 피조물이 필요하지 않은 자족하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며, 하나님에게 철저히 의존합니다(요 1:3; 고전 8:6; 골 1:16-17).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그분의 모든 성품이 무한하고, 선하고 의로운 뜻에 따라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 과거와 미래, 작은 세포부터 거대한 우주까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관계가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이 생존하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무한한 하나님께서 그 영원무궁한 성품으로 당신에게 변함없이 자신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모든 능력과 지혜를 가진 그분이 당신의 속과 겉을 아시고, 시작과 끝을 아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더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