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구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도서 3장 11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장 27절)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으며 인간은 소멸된다’라고 말하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개인이 느끼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이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생활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또한 이를 확증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① ’죽음 이후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입니다. 인간은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존재’에서 ‘무존재’의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 그것은 이 땅에서의 삶이 종료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의 끝장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소멸을 믿는 사람도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갖습니다. 자신이 지금 죽음의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에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안타까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이 ‘소멸되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는 평안하세요’ ‘그곳에서는 행복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정말 소멸을 믿는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류는 그 어떤 사회, 문화, 배경 속에서도 죽음 그 이후의 삶을 인지해왔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있음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전도서 3:11).
② 동양의 유명한 사상인 환생은 ‘죽음 이후에 다른 형태로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고차원적 생물 혹은 저차원적 생물로 환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저차원적 생물체인 곤충들이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람이 되는가에 있습니다. 저는 제 주위의 동물들 중 허다하게 많은 동물들이 자기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보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착하게 살아서 다음 세상엔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을 본 적은 없습니다. 환생을 말하는 자들은 ‘전생’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전생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 그 이후 다시 이 세상에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입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바로 그 죄의 결실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 3:19). 이 저주를 피해 간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③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이생에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또한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진실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귀신’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범죄 한 천사’를 가리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귀신’이라고 말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어 의식을 가지고 축복의 장소인 하나님 앞으로 가든지(고린도후서 5:8)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고통의 장소로 가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요한계시록 20:10, 15). 중간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혼은 없습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④ 마지막으로 사후 세계는 인간의 지혜의 한계를 초월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죽어봐야 알지’라는 말을 어르신들은 종종 하십니다. 사실 이것이 죽음이 주는 공포입니다. 세상엔 죽은 이후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이 존재합니다. 삶에 대한 최종 평가가 이루어지며 ‘심판’ 또는 ‘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워합니다. 죽음 그 이후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활: 죽음은 끝이 아니다
부활은 ‘일어난다’ 혹은 ‘서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됩니다. 육체는 땅에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육체를 떠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부활이 있다고 말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다니엘 12:2)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 5:28-29)
…악인과 의인의 부활이 있으리라…(사도행전 24:15)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부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선인(의인)과 악인(죄인)이 맞이할 사후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의인은 생명을 악인은 심판을 맞이합니다.
악인의 죽음, 그 이후의 삶
누가복음 16장 19-31절을 보면 한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날마다 호화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 어떤 현실을 마주했는지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악인이 어떤 일을 받게 될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음은 이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악인의 영원 세계입니다.
1. 죽음 이후에 사람은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악인의 영혼은 잠자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다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4. 환생이나 이 땅에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5. 불신자들에게 고통의 끝이나 변화의 가능성이란 없습니다.
6. 정화는 없고 오직 영원한 형벌만 있을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악인이 당할 일들에 대해 “꺼지지 않는 불”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3:12, 18:8; 마가복음 9:44, 48). 또한 “세세토록 고통 당할 것”이라 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14:11). “바깥 어두움”에 처할 것이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2:13; 25:30).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3:42, 50; 24:51; 누가복음 13:28).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니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요한계시록 20장 12-15절)
‘영원한 형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영원하다는 것은 한 마디로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형벌’이라는 말은 징계나 훈계가 아니라 처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범죄 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리고 ‘죗값을 다 치렀다’고 말하며 다시 사회로 돌아옵니다. 때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무기징역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범수로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다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제도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형을 시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도 죗값을 다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토록 씻어지지 않는 죄가 있다면 어떨까요? 끝이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하나님 앞에서 악인으로 심판을 받는다면 영원토록 끝이 없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더 잘 되라고 받는 징계가 아닙니다. 죗값을 치를 수 있도록 훈계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끝없는 처벌입니다.
어떻게 영원히 처벌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가혹한 처벌을 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16). 그래서 죄인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에스겔 33장 11절).
예수님은 또한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누가복음 19:41). 영원한 처벌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엄한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분이고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이 풍성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주 엄격하고 공의로운 분이십니다(신명기 32:4; 느헤미야 9:33). 이미 인류는 한 차례, 여덟 명을 제외한 전 인류가 하나님의 엄격한 분노 아래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맛보았습니다. 그분은 엄격하십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종교가 이렇게 사람을 겁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지옥 가는 것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믿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무조건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담합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는 그 어떤 참혹한 지옥의 모습도 실제 지옥의 모습보다 더 심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공포심을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거짓된 것이지만, 심판에 대한 모든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더 강하게 이 무서운 심판에 대해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은 설교를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이런 면에서 특별합니다.
영원한 형벌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악인의 죽음, 그 이후 삶의 모습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제 발로 떠나버린 죄, 계속해서 돌아올 것을 요구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거절한 죄,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죄악 된 욕구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조금도 입지 못한 채,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된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선인(의인)의 부활
이제 의인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만날 때입니다. 악인의 부활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의인은 죽음 이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합니다(요한복음 14:3; 17:24).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연약한 육체를 가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몸을 가지고 삽니다(빌립보서 3:21).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35-44; 마태복음 28:9, 17; 누가복음 24:31, 39, 40). 더 이상 삶을 어렵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여러 가지 죽음, 슬픔, 부르짖음, 아픔 등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요한계시록 21:4). 천국은 무한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입니다(요한계시록 21:18-21). 그곳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을 높이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의인의 죽음, 그 이후 삶의 모습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며, 생명의 근원 되신 그분께 영원토록 생명과 그 풍성한 것을 받아 누리고, 세세토록 찬양과 경배를 영광의 왕께 돌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의인이 거할 그곳은 더러운 것이나 거룩하지 못한 것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한계시록 21:27). 하나님의 의의 기준 앞에서 조금이라도 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는 악인입니다. 그리고 악인이 처할 영원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는 거룩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어떤 판결을 받게 될 것 같습니까? 당신은 의인입니까? 악인입니까? 당신은 죽음 이후의 영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