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구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4장 6절)
우리는 지난 과에서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속성’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글자로 줄이면 ‘신성'(신의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전지하거나(모든 것을 아는 것) 전능하지 못합니다(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사람은 영원불변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러한 신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속성이지만 사람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속성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인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람에게는 각 속성의 완벽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오해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나누신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이 속성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창 1:26).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성품을 드러내는 것으로 세상에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롬 1:19). 세상에서 당신이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발견하는 감격스러운 사랑과 자비, 은혜와 공의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때로 인품이 뛰어난 사람에게 매료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자비를 베푼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합니다. 그를 사랑하며 닮기 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오늘 당신에게 소개할 분은 각 속성이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자비의 왕이며 사랑의 창조자이시고, 바다같이 넓은 은혜와 흰 눈처럼 정결한 거룩과 날카로운 칼처럼 정확한 공의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하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분께 충분히 매료될 수 있습니다.
1. 사랑(Love)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스바냐 3장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장 7-8절)
현대인들은 사랑을 이야기할 때 감정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배우자가 아닌 다른 애인과 만나면서 그것이 참사랑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모두 ‘동사'(verb)입니다. 감정으로만 느끼는 것(feel)이 아니라 신실하게 행하는 것(act)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고린도전서 13:4-7).
하나님은 죄를 오래 참아주시고 온유하게 진리를 전하십니다(예레미야 15:15; 시편 18:35; 로마서 9:22). 당장이라도 노아의 때처럼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으시지만 그리하지 않으십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처럼 권위를 남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피조물을 자기 유익을 위해 함부로 대하지도 않습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십니다. 무례하게 만물을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만의 유익을 위해 만물의 유익을 내팽개치시는 분도 아닙니다. 혹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계산하여 사랑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분에게서는 악한 생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의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를 기뻐하십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온전한(perfect)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발견됩니다. 그분은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확증되었습니다(로마서 5:8).
2. 분노(Wrath)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편 7편 11절)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을 환영하지만, ‘분노’의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당혹스러워합니다. 어떻게 완벽한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매일 분노하실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말합니다(출애굽기 34:6; 민수기 14:18; 시편 86:15; 103:8; 145:8; 이사야 48:9).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오래 참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때도 있습니다. 시편 7편 11절의 말씀을 보면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그분의 의로우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불의, 즉 의롭지 못한 것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분노는 그분의 사랑과 대립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봅시다. 사랑이 넘치는 한 판사가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괴롭히는 아주 악독한 불량배들로부터 당신이 돈을 뺏기고 매를 맞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빼앗긴 돈을 당신에게 채워주고 맞은 상처를 치료해 줍니다. 그런데 당신을 괴롭히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는 그 불량배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또 얻어맞고 온 당신의 상처를 감싸주고 빼앗긴 돈을 채워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량배를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이 판사는 사랑이 많은 판사입니까?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오히려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모든 불의에 대하여, 의롭지 못한 것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분노하십니다(골로새서 3:5-7; 로마서 1:18; 2:4-6). 우리는 이러한 분노를 사람에게서도 단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의에 대해 분노하여 항거하는 의인들을 우리는 기억하며 그들의 분노를 칭찬합니다.
3. 공의(Righteousness & Justice)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편 9편 8절)
공의와 정직은 공정성과 비편파성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하면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러한 공정함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와 권력에 따라 판결이 흐려집니다. 알라신을 숭배하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을 무참히 학대하는데, 그들의 판결은 거의 대부분 그것이 옳다는 것에 손을 들어줍니다. 일상 속에서도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결은 언제나 공정합니다(느헤미야 9:33; 시편 145:17).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입니다(디모데후서 4:8).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달리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외모나 재능에 따라 차별하지도 않으십니다(로마서 3:22). 때로는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결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지식과 지혜는 영원무궁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칼날같이 확실하고 분명한 판결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도서 12:14).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모든 일이 하나님의 최종 판결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4:5). 지금 공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언젠가 반드시 완벽한 공의로 판결을 내리실 것입니다.
4. 거룩(Holiness)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위기 11장 44절)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 6장 3절)
“거룩”은 기본적으로 ‘구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거룩하십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은 존재에 있어서가 아니라 도덕적 성품에서 구별을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해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그 내면의 중심까지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덕적 거룩함은 사람의 거룩함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그분 안에는 악의나 불의가 전혀 없습니다(시편 99:9; 이사야 57:15).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신 자”입니다(이사야 6:3; 요한계시록 4:8).
우리는 앞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그에 따른 공의로운 분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입니다. 그분은 불의와 악을 가까이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정하게 모든 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것이며, 매일 불의에 대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분의 공정한 판결 기준이 된다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의롭다는 판결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분과 같은 거룩함을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7:26; 요한계시록 15:4).
5. 은혜와 자비(Grace & Mercy)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편 86편 15절)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편 103편 8절)
은혜와 자비는 유사한 성품입니다. 은혜는 거저 값없이 베푸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로마서 4:4,5; 11:6). 자비는 불쌍히 여김을 말합니다. 동정과 연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대적하는 자들이나 궁핍한 자들에게 느끼는 사랑의 마음입니다(에베소서 2:4).
어떤 면에서 은혜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절대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차에 부딪히려고 하는 아이를 몸을 던져 구했다면 이는 은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에 부딪히려는 원수를 몸을 던져 구해냈다면 어떻습니까? 그 원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필요도 의무도 없는데도 왜 나 같은 원수를 위해 그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것인지 설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비는 반대로 베푸는 자의 사랑의 마음에 초점이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자를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더 풍성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단지 육체적, 물질적 궁핍만 불쌍히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질병을 앓는 자들도 불쌍히 보시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악한 죄인들은 불쌍히 보지 않습니다. 우리도 죄인이지만 우리가 볼 때 더 심각한 죄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자비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그분의 자비는 아무리 심각한 죄에 대해서도 모자라지 않고 풍성하게 넘칩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부요한 자비가 있기에 모든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에베소서 2:4).
6. 진리와 지혜(Truth & Wisdom)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시편 104편 24절)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시편 117편 2절)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거짓이 가득한 세상에서 진리를 외치는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바로 그러한 진실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나 불충실(반만 진실) 혹은 모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민수기 23:19; 요한일서 5:20).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요한복음 14:6). 그리고 그분은 진실을 말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신실하십니다(디모데후서 2:13; 요한계시록 19:11).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항상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진리만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를 가지셨습니다(로마서 11:33; 에베소서 3:10). 그분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이사야 40:28).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일관성 있게 계속해서 지혜로운 사람은 드뭅니다. 지혜가 부족한 삶의 영역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지혜는 무궁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 그분의 지혜는 영원 무궁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명령합니다(야고보서 1:5).
7. 선하심과 관대하심(Goodness & Generosity)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편 6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4편 8절)
종종 다른 사람에 대해서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 친절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 선함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선입니다. 그분의 선하심은 사람을 회개하게 합니다(로마서 2:4). 친절과 선 또는 자비로 충만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시편 119:68; 145:9).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로마서 8:28).
또한 하나님은 관대하십니다. 너그럽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루 양식이 없는 사람에게 한 끼 양식만 주는 분이 아닙니다. 하늘의 문을 열고 축복을 내리부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풍성히” 주시는 분입니다(말라기 3:10). 후하게 지혜를 내려 주십니다(야고보서 1:5). 아들을 선물로 주셨으니 이보다 더 후하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요한복음 3:16).
……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만일 당신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항상 사랑이 넘칩니다. 당신에게는 항상 진실만을 말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바라며,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며, 당신에게 언제나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할 때면 아주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며, 그 속에 아무런 악한 생각도 없고, 악한 말도 하지 않으며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당신의 인생 모델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불의에 대해 분명히 경고할 수 있는 담대함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의 친구가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런 친구와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오래 참아주시며, 당신의 모든 필요를 풍성하고 성실하게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은혜와 자비가 넘치시고, 지혜와 지식이 무궁한 분이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이 땅에 창조하셨고,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하기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을 갖고 싶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