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구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4-15절)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태복음 20장 18-19절)

우리는 이전 시간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웠습니다. 오늘은 구원자 예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배울 계획입니다. 위에 나오는 핵심구절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 스스로 잘 알고 계셨음이 분명합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십자가 사건이 이미 예언된 사실 즉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방법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고린도전서 15:3-4절). 이 이상하고도 잔인한 구원의 방법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십자가를 택하신 것일까요?

십자가의 필요성: 하나님의 거룩하심

십자가가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1:16; 이사야 6:2-3). 하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출애굽기 34:7; 욥기 10:14).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함을 조금이라도 더럽힐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접근할 수조차 없습니다(요한계시록 21:27). 성경은 빛처럼 밝은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고 말합니다(요한일서 1:5).

거룩한 하나님이 죄인을 그냥 두고 보실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그 죄를 벌하셔야 합니다(로마서 2:3, 12). 창세기 3장에 따르면 그 죄의 저주, 죄의 결과는 바로 죽음이었습니다(히브리서 9:22). 성경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로마서 6:23). 우리가 살펴보았듯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로마서 3:19). 그러니 모든 사람은 각각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죄를 눈감아주거나 대충 다루신다면 그분은 더이상 의로운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심각한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판사를 손가락질합니다. 범죄자 만큼이나 의롭지 못한 판사를 미워합니다. 모든 사람을 가볍게 처벌하거나 그 죄를 묻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의롭지 못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위의 내용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궁금해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냉정하게 심판한다면 모든 사람이 다 사망에 이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공정하게 찾으시면서도 죄인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온전하게 만나는 방법이 있을까요?

십자가의 필요성: 대속의 원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구약시대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인인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양이나 소를 잡아서 그 피를 바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출애굽기 12:3-17). 그렇게 짐승을 바치는 장소 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바로 성막이었는데, 죄인이 자기 대신 죽을 짐승을 데리고 성막으로(후에 성전에서 이 일을 하게 됩니다) 나아오면 그곳에서 일하는 제사장의 인도에 따라 죄인이 그 짐승을 죽이게 됩니다. 그 짐승을 죽이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짐승의 머리에 올려두는데 이는 죄인이 범한 모든 죄가 그 짐승에게 옮겨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제사는 일시적 효과만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죄를 범하게 되면 또 다른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질 때마다 제물(레위기 5:10)을 가지고 성막으로 나왔습니다.

구약시대 제사는 대속의 원리를 보여주기 위한 모형입니다.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모형은 실제의 모습을 반영하여 보여 주긴 하지만 실제는 아닙니다. 실체가 가진 특징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구약시대 죄인을 위해 죽은 어린양이나 소들이 가리키는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친 것입니다(요한복음 1:29). ‘대속’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다른 자의 자리를 대신 하여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죄 때문에 사망이라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죄를 대신 지고 심판의 자리에 앉으신 분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에는 이 내용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시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9장 11-1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실 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장 4-6절)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베드로전서 2장 24-25절)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도덕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선포한 성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과 꿈을 불어넣어 준 민족의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와 민족을 억압했던 제국의 미움을 받아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원수를 사랑하셨던 도덕적인 본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사도행전 2:23).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권능과 지혜를 사용하여 원하셨다면 죽지 않으실 수도 있었습니다(마태복음 26:53-54). 아무도 그분의 생명을 억지로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이 원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0:17-18).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무죄한 자로서 죄인인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대신 죄가 되신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21). 당신이 달려야 할 그곳에, 당신이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신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장 8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요한일서 3장 1절)

완벽한 대속 제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대속 제물로서 완벽하신 분이셨습니다. 인류를 대신할 제물은 사람이어야만 했고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죽어야만 했습니다(히브리서 9:22; 9:12-14; 10:5).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대속 제물은 또한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히브리서 4:15; 베드로전서 1:19; 요한복음 8:29, 46). 다시 말해 죄인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죽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 되십니다(사도행전 4:12).

또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씻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신성이 충만하게 거하시는 하나님으로서 그 능력으로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히브리서 1:1-3; 9:14; 골로새서 2:8-9; 고린도후서 5:19). 그분의 제사는 하나님의 공의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제사였습니다(히브리서 10:14; 요한일서 2:2).

예수님의 제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멸망시키고 사망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디모데전서 2:4). 죄인을 위해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 그것은 사랑입니다(로마서 8:32; 에베소서 5:25; 요한계시록 1:5).

완벽히 이루어진 대속: 다 이루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임무를 다 마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요 17: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고(요한일서 4:14),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누가복음 19:10).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 “예수” 그분은 진정 그 임무를 완수하셨습니다.

1. 먼저 그분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로마서 8:3-4). 율법이 제시하는 완벽한 의의 기준을 완전히 만족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족시킬 수 없는 그 기준을 대신 만족시켜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3:39).

2. 그분은 모든 정죄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로마서 8:1). 결코 우리에게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다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3. 모든 죄인을 다 구원하기에 충분하셨으며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드렸습니다(히브리서 10:2; 요한일서 2:2). 단번에 십자가에서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대속의 확증: 부활의 증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끝이었다면 우리는 그분이 자기 죄 때문에 죽었는지 아니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는지 모를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으로 모든 죄가 씻겨진 것인지 확인해볼 수 없습니다. 혹시 그분은 우리 죄를 반쯤 해결하다가 돌아가신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그러한 의문과 의심을 단번에 해결해 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사도행전 2:24, 32; 3:15, 26; 10:40).

이것은 먼저 성경의 예언에 따른 부활이었습니다. 미리 계획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4).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2:39-40; 16:21; 누가복음 18:31-33). 날짜까지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7:63).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군대가 있었는데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마태복음 27:63-66).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권능으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로마서 1:3-4; 에베소서 1:19-20).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로써 기쁘게 받으신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한 아들을 높이 올리셨고(빌립보서 2:9-11), 그분의 의로움이 선포되었으며 그 의로움을 우리가 입게 되었습니다(로마서 4:25).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라는 사형 틀 위에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냈습니다. 온전히 의로운 삶으로 흠 없는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는 의로운 생명의 부활로 우리에게 동일한 새 생명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우리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장 12절)

당신은 이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분이 당신의 모든 죄를 대신 지셨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계십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자로 인정하기 원하십니까?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다시 태어나고 싶으십니까? 이 예수를 믿으십시오. 다음 시간에는 ‘중생'(거듭남, 다시 태어남)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