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군림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으로서 나라를 거느려 다스림”, “어떤 분야에서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군림이라는 말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은 ‘군림’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군림하거나 군림 당하는 삶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고, 특별히 군림하는 자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실이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 안에서 군림했던 사람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왕 다윗만 봐도 그의 간음, 살인 때문에 백성이 감당해야 했던 일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비참했는지 모른다. 이후 솔로몬과 분열 왕국의 왕들을 보라. 좋은 일도 했지만, 그들의 군림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끼어 있다.

세상에 세워진 권세 중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아니한 권세가 어디 있을까?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통령, 총리, 왕 중에서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나? 그래서 ‘군림’은 마냥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일 수 없다. 새로운 군림을 기대하며 투표를 해도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면 금세 또 다른 군림을 기대하게 된다.

절대적인 권력과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하는 일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절대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부패, 불완전함이 절대 권력을 통해 군림 당하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군림을 기대하면서도, 군림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완벽한 군림은 없을까? 부패함이 없는, 부정적인 면이 조금도 들어설 수 없는 군림. 절대 권력을 가진 절대 부패하지 않는 권세는 없을까? 선지자 이사야는 그런 군림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군림을 가져올 권세, 왕이 나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분이 바로 한 아기, 한 아들, 그 어깨에 정사를 멘 자이시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시다. 그렇다. 이천여 년 전에 베들레헴에 한 아기로 나신 분은 완벽한 군림을 영원히 실현하기 위해 오신 왕이시다.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선지자 이사야는 이 왕이 다윗의 왕좌에 앉아 그의 나라에 군림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왕 다윗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연속이다.

내가 네(솔로몬)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하리라(대하 7: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

오직 이스라엘만 다스리는 왕이신가? 아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부른 찬송을 보라.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0-32)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좌를 이어 영원히 다스릴 왕이 되셔서 군림하실 것이다. 그의 군림의 혜택은 자기 백성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방 만민에게 이를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마 1:1).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1) 예수님은 절대 부패하지 않는가? 2) 예수님은 절대 권력을 가지셨는가?

1) 예수님은 절대 부패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분은 한 아기, 한 아들, 곧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 땅에 나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데,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히 4:15).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 다른 말로 하면 연약함, 부족함, 불완전함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굳게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 나라의 견고함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도록 마침표를 찍는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의 열심이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맹세하며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사 14:24). 쉽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군림이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달려있다.

왕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에 절대 부패하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열심이 그 나라를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굳게 세우시기 때문에 그 나라는 절대 부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하나님처럼 완벽한 군림이 마침내 그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

2) 예수님은 절대 권력을 가지셨는가?

그렇다. 그분의 지혜에 한계가 없다. 그분은 기묘자시다.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모사를 가진 분이시다. 그분의 능력에 한계가 없다. 그분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다. 모든 만물이 그분의 말씀으로 붙들려 있다. 그분이 돌보지 않고 먹이지 않고 가꾸지 않는 것은 없다. 그분이 심판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한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을 왜 가만히 지켜보시는가?” 다시 말하면, “왜 제대로 군림하지 못하시는가?”라는 질문이다.

두 가지 질문으로 대답할 수 있다.

첫째, “당신은 예수님의 절대 군림을 대비했는가?”

만일 당신이 원하는대로 지금 당장 그분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신은 선한 사람인가? 그 나라 백성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확신하는가? 죄가 조금도 없는 예수께서 그 기준으로 자기 백성을 선별하신다면, 당신은 그 나라 밖으로 내쳐져 영원한 정의와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예수님의 군림이 아직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죄인에 대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사실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분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이 그 나라 백성이 되는 길을 제시하러 오셨다.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요 3:17).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요 3:16).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그러므로 당신은 “왜 제대로 된 군림이 온전히 실현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 이전에 당신이 그 절대 군림을 준비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나라가 실현되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며 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당신은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둘째, “당신은 예수님의 절대 군림에 복종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전히 실현되는 날은 미래에 있지만, 한편으로 그 나라는 그 나라 백성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눅 17:21). 예수 그리스도의 법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관한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7:21).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나라 법대로 즉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생각해보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7-9)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으로 태어나신 이유는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죽고, 백성을 의롭게 하기 위해 다시 살아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를 왕으로 영접한 이들은 그 왕이 온전히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살아도 그 왕을 위해 살고, 죽어도 그 왕을 위해 죽는다. 절대 군림이 백성의 삶에 이미 실현됐다.

그러므로 당신은 “왜 왕의 군림이 아직인가?”라고 묻지 말고 왕의 절대 군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당신의 삶 속에 왕이 군림하시도록 계속해서 당신의 지체를 그분께 내어주어야 한다(롬 6:13).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난 귀인이 열 므나를 열 명의 종에게 맡겼다. 대부분의 종이 한 므나로 열 혹은 다섯을 남기면서 주인의 명령에 충성스럽게 순종했다. 그러나 한 종은 오히려 주인을 나무란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악한 왕이라고 말한다.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온 그 왕을 기다리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산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훈하신다. 절대 군림이 실현될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왕의 명령에 충성스럽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한 그 나라가 더뎌 보이고, 지금 현실 속에서 왕권이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셨다면, 당신은 절대로 그분의 군림을 거절할 수 없다.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 언제 그 나라가 온전히 임하든지 그 나라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왕을 사랑하고 그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당신 안에 이미 시작된 왕의 군림에 절대복종하라.

크리스마스는 한 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방인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다(마 2:1). 그리고 그 아기는 자라 백성에게 하나님의 모사와 전능하신 기적을 보여주었고, 때가 이르렀을 때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란 죄패가 있었다(마 27:37).

백성들은 우둔하여 몰랐지만, 유대인의 왕 예수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왕이었다. 백성을 자기 나라로 인도할 정사를 어깨에 멘 왕이었다. 다윗의 자손으로 그 왕위를 영원토록 이어받을 왕, 하나님의 모사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다스리실 왕, 절대 권력을 가지고 정의와 공의로 무궁한 나라를 굳게 세울 평강의 왕. 하나님이 열심이 그 나라를 세우실 것이고 온전한 그 나라가 영원무궁토록 세워질 것이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림을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거절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