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06. 그의 이름, 전능하신 하나님

두 번째로 제시된 “한 아기”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신을 뜻하는 히브리어 엘이 사용되었다. “한 아기”가 예수의 인성을 선포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논쟁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그분의 신성을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선지자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사내 아기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7:14). 마태는 이 예언을 인용하면서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밝힌다(마 1:23). 처녀 마리아에게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가 곧 우리와 함께 계신(“임마누”) “엘”, 하나님이시다. 그것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영어성경으로 “전능하다”는 Mighty가 사용되었는데 “힘센”, “강력한”의 뜻을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얼만큼 강력하신가? 얼마나 전능하신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답한다.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3)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셨고 그 만물의 소유하신다(고전 8:6; 골 1:16).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셨고 그 본체가 드러난 형상이다(요 1:14).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골 1:17). 지금 만물이 정상궤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운행되는 것은 모두 그분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죄 사함의 권세가 그분께 있다(마 9:6).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12:2).

예수님은 아무런 힘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완벽한 인성을 입으셨지만 동시에 그분은 완벽한 신성을 가진 분이셨다. 다만 그것이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였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고 자기를 비우셔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사람들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자기를 낮추셨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7).

“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모순처럼 보이는 이 사실은 기독교 교리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오묘하며 놀라운 진리 중 하나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보고 당연히 사람의 아들이라 여겼지만(마 13:55-56) 예수님은 종종 완벽한 인성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셨다.

온갖 병자들을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셨다.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 중 많은 이들이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다(눅 13:17).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으셨다. 귀신들은 나가면서 고백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 4:41). 죄 사하는 권세를 중풍 병자를 고치시면서 보여주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냐”고 반문했지만 그분은 전능하심으로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다(눅 5:21-26). 한 회당장의 열두 살짜리 딸이 죽었을 때 “달리다굼”이라 말씀하시며 아이를 살리셨다(막 5:41). 죽은 지 사흘이 된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셨을 때 죽은자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삶을 얻었다(요 11:43-44).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는 권능이 그분의 손에 있었다(신 32:39).

 

우리에게 주신 한 아들, 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유는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주는가?

하나님은 절대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이 원하시면 하지 못 하는 일이 없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우리는 어떻게 한 인간이 모든 인류의 역사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어떻게 첫 사람 아담과 하와부터 오늘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의 삶에 반전을 가져올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전쟁과 싸움, 갈등과 이기심, 부패와 타락, 고통과 질병, 죽음… 모든 죄의 결과물에서 인류를 완전히 놓아줄 수 있는 사람, 죽고 망하는 영원한 운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든 반전이 가능하다.

그분은 8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생물을 물로 심판하시는 권세가 있다. 말씀 하나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다를 둘로 가르기도 하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기도 하시며 죽은 나귀 턱뼈로 수천 명을 이기게 하시고 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주셔서 살아있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

이 놀라운 권능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나에게 그 권능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다(만물을 그분이 붙들고 계시고 우리의 호흡과 생명을 허락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는 능력에서 더 분명하게 우리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만물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을 보면서도 그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지독한 죄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꿔주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 안에 두셔서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고 지키고 행할 수 있게 하셨다.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맺으셨다.

이 일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아기가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사람으로 물과 피를 쏟으며 모든 인류의 죄값을 십자가 위에서 치르셨다. 죄인이 죄인을 위해 죽을 수 없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죄가 전혀 없으시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이 모든 인류의 죄 값을 다 치를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실 수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 죄가 가득한 이 세상에 완벽한 반전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광스럽고 완벽한 공의와 정의가 세워진 나라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2-1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것인가?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가? 오직 이분께 당신의 영원한 삶을 주관할 권세가 있다. 당신은 이분을 거절할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생명 있는 삶, 생명 없는 삶. 인생은 이렇게 두 갈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원래는 두 갈래 길이 아니었다. 오직 생명 없는 삶 하나뿐이었다. 하나님을 거역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 생명 없는 삶이었다. 자기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파멸의 운명을 모두가 타고났다. 어떻게 우리에게 생명 있는 삶이 주어진 것인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이 된 것인가? 그 길을 내신 분이 누구신가? 그 길을 창조하실 수 있는 권능이 누구에게 있는가?

정답은 하나뿐이다. 사람으로 이 땅에 나신 한 아기, 동시에 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셨다. 당신은 그 예수를 믿고 따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