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마샬과 페인은 결론에서 기독교 사역이 사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말한다: “기독교 사역은 단지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을 힘 입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다.” 이는 예수님이 지상 대명령으로 요구하신 단 하나의 사명 곧 “제자 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저자는 기독교 사역이 힘든 이유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사명에 지속적으로 충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매년 새로운 교회 사역 트렌드와 모델이 주목받고, 지극히 작은 규모에서 크게 교회를 성장시킨 이마다 자신만의 비결을 쏟아내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명령하신 단순한 일에 지속적으로 충성하기가 어렵다. 마샬과 페인은 지금까지 <격자와 덩굴>을 통해 주장한, 단순한 사명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속적으로 순종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10가지 명제로 요약했다.
1. 교회의 목표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사역의 목적은 교인 수를 늘리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성도를 소그룹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나 예산을 늘리는 것도 아니다. 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교회는 덩굴의 일, 즉 제자를 만드는 제자를 양육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얻는 것과 회심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것이 교회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지식과 경건과 역량에 있어서 충분히 훈련받아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건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는—제자로 삼는 제자로 양육하는—교회다.
2. 교회는 자연스럽게 제도주의로 기울어진다
교회를 올바른 목표에서 멀어지게 하는 두 가지 잘못된 길이 있다. 1) 제도주의와 2) 세속화다. 둘 다 교회의 관심을 덩굴이 아니라 격자로 옮긴다. 사람의 성장보다는 프로그램과 행사, 활동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복음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기보다는 구조와 조직을 생각하고 프로그램과 행사에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는 일에 헌신한다. 예수님께 항상 큰 무리가 따랐던 것을 기억하는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많은 이벤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는가? 그러나 예수님이 진실로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을 구별하신 것처럼, 교회도 그 일에 힘써야 한다.
3. 제자 삼기의 핵심은 기도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제자는 일차적으로 ‘배우는 사람’, ‘학생’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제자가 되고 제자로 성장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배워야 한다.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명령했다(벧후 3:18). 여기에 사람이 할 일과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 죄인을 제자로 거듭나게 하는 일과 영적으로 자라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심고, 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덩굴 사역의 본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기도하며 성경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모든 사역의 목표는 제자를 양육하는 것이다.
한때 ‘제자 훈련’이 교계에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철저한 훈련과 열정적인 전도 활동 등으로 눈에 보이는 열매를 거둔 경험을 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마샬과 페인이 말하는 ‘제자 훈련’은 특정 방식의 훈련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예: 네비게이토 방식, 릭 워렌 소그룹 방식, 가정 교회 방식 등). 오히려 두 저자는 모든 형태의 기독교 사역이 제자 삼기를 목표로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일 설교, 소그룹, 형제 혹은 자매 성경 공부, 그리스도인의 비공식적 교제 모임 등 모든 공식적/비공식적 사역을 통하여 결국엔 서로에게 말씀을 말과 삶으로 전달하고 서로가 말씀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자 양육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역의 운영, 조직, 관리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그 사역 안에서 개인과 함께하고 그들을 훈련하는 것이다.
5. 제자는 제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제자를 만드는 건 목사 또는 교사들의 책임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주님이 교회에 명령하신 ‘제자 삼기’에서 예외가 되는 제자는 없다. 마샬과 페인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 급진적인 도전에서 물러서고 싶어 한다고 경고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지적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모두 제자 삼기에 헌신할 것을 요구받았다. 비그리스도인에게 다가가는 일과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일에 모든 성도가 헌신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설교자로서 그 일을 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주일학교 교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웃과 대화하는 것, 동료 신자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는 일, 가족을 교회 행사에 초청하여 복음을 듣게 하는 일, 몇몇 성도와 자발적으로 함께 모여 성경 공부하는 일, 가정에서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 등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자 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충성스럽게 살 수 있다.
6. 제자가 자라야 할 부분은 신념, 인격, 역량이다.
마샬과 페인이 강조한 세 가지 덕목, 1) 신념(이해와 지식), 2) 인격(경건함과 삶의 방식), 3) 역량(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필요한 능력과 경험)은 모두 중요하다. 제자가 자라야 할 부분이 이 세 가지에 제한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세 가지에 미치지 못하는 반쪽짜리 성장을 성장으로 보기가 얼마나 쉬운가? 가령 우리는 성경 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성숙한 제자로 분별할 때가 많다. 그/그녀의 인격이 형편없는데도 말이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양육하는 효과적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의 은사/역량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제자가 성장할 때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성장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분량만큼, 다시 말해 신념과 인격과 역량의 분량에 따라 제자 삼는 일을 맡겨야 한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장로), 집사 등으로 섬기고, 또 어떤 사람은 교사로 섬기며, 어떤 사람은 다른 일로 섬길 수 있는 것이다.
7. 제자의 계층은 하나 뿐이다.
제자 삼는 교회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고 직분이 다르지만, 계층은 하나다. 누가 더 높고 더 낮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목사(장로, 감독)에게 순종할 것을 성경은 요구한다. 그러나 이는 목사가 더 높은 계층에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성경은 아내에게 명령한다.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그러나 이는 남편이 아내의 상사나 주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룬 가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남편이 맡은 역할이 인도와 보호와 책임이라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존중과 지지와 돕는 역할을 감당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계층과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역할이 다를 뿐, 서로 각자의 역할로 한 몸인 교회를 세워 맡겨주신 제자 삼기의 역할에 한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8. 제자 삼기는 우리의 주일 예배와 교회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기존의 정기 집회, 교회 모든 사역, 오래 지속해온 전통과 관례, 행사와 프로그램에 관한 대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은 제자 삼기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물이 되는가? 교회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제자 삼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덩굴의 일이 더 건강하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현재 갖추어진 격자를 어떻게 옮기고 뜯어내고 고쳐야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9. 제자 훈련의 시작은 작은 규모로, 사역자들을 늘려가며 성장한다.
보통 제자 훈련에 힘쓰려고 할 때, 교회는 최대한 많은 성도를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통해 단기간 속성으로 키워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성장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마샬과 페인은 훈련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이고 관계적이라고 말한다. 기술이 아니라 인격과 삶을 나눠야 하고 본을 보이고 뒤따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훈련은 반드시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해야 하고, 유망한 후보자 몇 사람을 선택하여 동역자 및 사역자로 길러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면 그들이 다른 충성된 제자를 길러낼 수 있고, 그렇게 점점 교회는 제자 삼기가 가능한 제자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10. 다음 세대 목사, 교사, 전도자들을 도전하고 모집해야 한다.
10장과 11장에서 두 저자는 소규모 동역자들을 키우는 일을 결국엔 목사, 교사 등이 전담해야 하고, 그 과정 중에서 신념과 인격과 역량이 있는 사람을 다음 세대 목사, 교사, 전도자로 세워야 한다고 권했다. 이들을 알아보고 양육하고 훈련하고 도전하는 일을 해야만 교회의 다음 세대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 삼는 교회로서 역할을 이어받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엔 말씀이고, 우선은 사람이다.
마샬과 페인은 12장의 남은 부분을 통하여 ‘사람 중심의 사역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여섯 단계’의 계획을 제안한다. 다음 칼럼에서 그 내용을 살펴보기를 원한다. 마지막 장인 12장에서 두 저자가 요약한 이 책, <격자와 덩굴>의 내용을 다시 한번 리뷰하면서, 교회 사역의 핵심이 무엇인지 재조명하게 됐다. 교회 사역은 격자가 아니라 덩굴의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제자를 양육하는 것이 교회 맡겨진 단 하나의 사명이다. 프로그램, 행사, 이벤트, 조직과 운영, 여러 회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성도 개개인을 말씀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다. 현재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역을 재검토하고, 제자 삼는 일에 함께 동역할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길러지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교회의 조직과 체계가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충분한 말씀이 공급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로 섬기고 있는지 평가해 보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 교회에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우리 주님께서, 제자 삼기에 지속적으로 충성하려는 모든 교회를 친히 지키시고 모든 필요한 능력을 더하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