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마샬과 토니 페인이 쓴 “The Trellis and the Vine”을 심층 리뷰 중이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2장에서 “사역의 사고 전환”을 일으킨다(“The Ministry Mind-Shift”). 한마디로 “교회 구조를 세우고 유지하는 일”보다는 “제자를 만드는 제자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것인데, 사역과 사람 중 사람을 먼저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아래 11가지 전환을 살펴보면, 저자가 무엇을 거듭 강조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서 사람을 세우는 것으로
- 행사를 운영하는 것에서 사람을 훈련하는 것으로
- 사람을 사용하는 것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 공백을 메우는 것에서 새로운 일꾼을 훈련하는 것으로
-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 안수 받은 사역에 집착하는 것에서 팀 사역을 세우는 것으로
- 교회 정치에 집중하는 것에서 사역 동역을 이루는 것으로
- 훈련 기관에 의존하는 것에서 지역 교회 훈련을 세우는 것으로
- 당장의 압박에 집중하는 것에서 장기적 확장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 관리에 몰두하는 것에서 실제 사역에 집중하는 것으로
-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것에서 복음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먼저, 주의할 점은 저자가 앞에 언급한 것들을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앞에 언급한 것들은 격자의 일이다. 뒤에 나오는 실제적인 성장(덩굴의 일)을 돕기 위한 구조물이라서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저자는 1장에서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 저자는 왜 이러한 전환을 계속해서 요구할까? 교회는 쉽게 격자의 일로 덩굴의 일을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회 프로그램, 행사, 사역, 정치, 훈련, 관리 등이 잘 되고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면 실제로 성도가 복음 안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훈련받고 있으며 함께 동역하고 있다고 착각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저자는 그래서 반복적으로 격자의 일에서 덩굴의 일로 사역의 사고 전환을 일으키라고 강력하게 권면한다. 덩굴의 일을 위하여 격자의 일을 무시하거나 제거하라는 말이 아니라 격자의 일을 언제까지나 궁극적으로 덩굴의 일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뒤에 제시한 덩굴의 일이 결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전환을 항상 가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고 가운데 금세 격자의 일이 교회의 목표로 둔갑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교회가 일이 먼저일 때
만일 우리가 이런 건강한 사역의 사고 전환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위에 저자가 제시한 11가지 항목을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먼저, 교회는 기존의 교회 프로그램을 유지, 개선할 생각을 먼저 가지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맞추려고 할 수 있다. 교회 행사, 가령 전도 집회, 성도 집회를 매년 하던 대로 계획하고 거기에 사람과 자원을 쏟아부으려고 할 수 있다(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필요한지, 유익이 되는지와 상관없이).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든 채워 넣으려고 할 수 있고, 몇몇 자리가 비워지면 ‘이 성도의 은사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 은사로 성도를 섬기며 성장하게 도울까?’가 아니라 그 빈자리를 채우는 소모품처럼 여길 수도 있다.
성도를 돕는 일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생겼을 때만 관심을 갖고, 그런 특이한 상황이 없는 성도는 알아서 잘하겠거니 수동적으로 내버려둘 수도 있다(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할 것인지에 관심을 두어야 하건만). 목회자에게 사역이 온통 내맡겨질 수도 있고, 목회자가 제자를 삼는 일의 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CEO처럼 경영하는 일에만 바쁠 수도 있다. 각종 회의와 업무에 시달리며 정작 양을 먹이고 돌보고 치는 일에는 시간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성도를 성경으로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은 더 이상 교회가 맡지 못하고 기관에 떠넘길 수도 있다. 여러 프로그램, 행사, 사역에 치이다 보니, 장기적으로 교회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시간을 두고 고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교회 내에서 잘 훈련된 자가 복음의 확장을 위하여 파송되는 일이 일어나기보다는 기존의 교회가 계속 성장하는 데만 몰두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초등부, 중고등부 등 교회학교가 체계적으로 잘 세워져 있다고 해서 일이 먼저인 교회라는 말이 아니다. 교회 여러 행사들이 있다고 해서 그렇다는 말도 아니다. 격자를 잘 관리하고 보수하는 일은 덩굴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면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격자를 잘 관리하면서도 결국 중요한 건 덩굴이 잘 자라는 것이라는 사고를 붙들 수 있을까?
사람이 먼저가 된다면
저자는 먼저 1)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라고 말한다. 프로그램이 있고 거기에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각 성도가 어떤 은사를 받았고 어떻게 성장하는 것이 좋을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은(수십 년 해온 것이더라도) 더 이상 의미 있는 목적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날 때, 과감히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2) 복음 집회라는 행사를 잡아놓고 불신자가 거기에 맞춰 복음을 수용하도록 강요하지 말고, 성도를 훈련시켜 그들이 자연스럽게 친밀한 관계 속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큰 유익이 없어 보이는 특별 이벤트를 계속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여하는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장기적인 길을 모색하라는 말이다. 3) 각종 교회 사역에서 자원 봉사하는 성도들이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정말 그 일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목회자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안식이 필요하다.
4) 사역의 빈자리가 생겼을 때, 그 빈자리를 메꿀 사람을 성급히 찾기보다는, 그 일에 은사가 있고 그 일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고 다른 성도에게 유익이 될 만한 이를 찾는 것이 좋다. 5) 반응적 사역(문제가 있을 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사역(문제가 없어도 성도가 성장하도록 돕는 것)에 힘써야 한다. 물론 소수의 목회자가 이 일을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6) 목회자가 아니라 팀이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7) 교회 정치 구조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역에 힘써야 한다. 저자는 목회자가 불필요하다거나 교회에 질서나 권위가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함께 동역하는 일꾼으로 여겨야 하고, 성도도 자신을 일방적으로 목회적 도움을 얻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교회를 섬기는 동역자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8) 이런 생각의 전환은 가르치는 일은 무조건 목회자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게 한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은사에 따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여러 가르침의 장에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의 팀 사역 혹은 동역에 관한 부분은 책의 중반에 가서 저자가 더 자세히 설명한다. 9) 사람이 먼저가 된다면 교회는 당장 눈앞에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사역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역을 할 것이고, 10) 목회자는 수많은 회의와 프로그램, 일정 등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일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기보다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수 있다. 11) 교회는 어떻게 내부적으로 성장할 것인가만 고민하지 않고 잘 훈련된 성도를 내보내서 복음의 확장이 이루어지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먼저인 사역,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저자는 이 대목에서 목회자가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좋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꿈속에 살고 있군요. 이들의 상상 속에서는 제가 교회의 모든 성도와 개인적으로 만나서 그들을 훈련하고 멘토링해야 합니다. 제 일정표를 본 적이 있나요? 제가 어떤 압박 속에 있는지 알기나 하나요? 이것이 사고 전환이라면, 제게는 차라리 두뇌 폭발처럼 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규모가 작은 교회만이 사람이 먼저인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목회자와 몇몇 동역자가 아니라 훨씬 많은 일꾼을 세워서 일 중심적인 사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교회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작은 교회도 얼마든지 일 중심적인 사고로 돌아갈 수 있고, 큰 교회에서도 성도가 충분히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 이는 또한 일꾼 부족만의 문제도 아니다. 다수의 일꾼이 쉴 틈 없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분열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 문제는 일꾼이 적다고 사라지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격자의 일이 목표가 되는 게 아니라 덩굴의 일이 목표가 되도록 사고 전환을 계속해서 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저자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사고 전환이 교회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전에, 먼저는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장의 정의는 우리가 내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시고, 실제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도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1)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 지, 2) 그것을 어떻게 누구를 통해 이루고 계시는지, 3) 그리고 그것이 제자도와 사역하고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중요한 성경적 기초를 다음 칼럼부터 하나씩 세워보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