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훈련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덩굴의 일이며, 그 일에 모든 성도가 모양과 분량은 다르지만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면 훈련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훈련이라고 할 때, 기대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많은 교회가 훈련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자 훈련의 본질이 기술과 능력 계발이 아니라 생각과 성품의 계발과 더욱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목회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명령했다(딤전 4:7). 연단 혹은 훈련의 목적은 분명하다. 경건에 이르는 성장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독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장성한 자”가 되는 과정엔 “지각” 곧 생각의 훈련이 요구되고 그 결과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또한 그 분별에 따라 행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디모데후서에서도 바울은 성경이 신자에게 주는 유익으로 ‘의로 교육’받는 것을 말하는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저자는 이것이 “올바른 행동 양식을 형성하기 위해 의도된 가르침이나 교육을 위한 일반적인 단어”라고 말한다. 바로 다음절인 17절에서 사도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면서, 말씀으로 교육하는 것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생각과 삶이 온전히 의롭게 변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술과 능력의 계발이 아니라 성품과 행위의 변화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지식이 아니라 본을 받는 것

우리는 보통 제자 훈련을 생각할 때,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을 떠올리기가 쉽다. 성경 교리 교육, 성경 연구, 전달하고 교육하는 훈련 등을 열심히 하면 제자가 양성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먼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목회서신의 저자인 사도 바울과 독자인 디모데 그리고 디도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그들의 깊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 사도는 끊임없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요구한다. 단순한 성경 교리를 이어받으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보고 듣고 같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따르라고 권하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보고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들을 이렇게 나열했다: “너는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딤후 3:10-11). 그리고 그것을 본받으라고 권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행하는 제자 훈련 또한 같은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디모데 역시 다른 이에게 삶의 본을 끼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디도도 마찬가지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딛 2:7-8). 바울은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 전달한 편지에서도 계속해서 제자 훈련의 핵심이 정보 중심적이기보다는 관계 중심적이며 믿음의 교훈을 받는 것을 넘어서 믿음의 본을 끼치고 따르는 것임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고, 바울에게 훈련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바울의 본을 좇는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자들은 또다시 다른 믿는 자의 본이 된다. 하나의 사슬처럼 이어지는 제자 훈련의 과정을 보라.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의 본을 보이는 것이다. 성경에 관한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바른 교훈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을 본받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희생적인 삶을 살고 고난을 감수하면서 육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살아가는 제자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본으로 보이며 따르도록 돕는 것이 제자 훈련의 본질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라는 말이 다소 교만하게 들릴 수도 있다. 완전한 본이신 그리스도를 다른 성도가 본받을 수 있도록,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을 통하여 완벽하게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요구는 누구도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완전히 성취된 거룩을 드러내는 데서가 아니라, 거룩을 향해 힘쓰는 데서 본을 보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완벽함을 성취한 자로서 본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그 과정에서 같은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성도들에게 영향을 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우리가 보여주는 본은 성숙함이다. 완전함이 아니다.

선생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것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본이 된다. 우리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본이 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제자 훈련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좋은 교사가 되기도 하고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제자 훈련이 자녀 양육과 닮은 점에 관하여 저자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저자는 훈련의 관계적 성경을 강조하면서 “훈련은 양육”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훈련은 종종 형식적인 가르침보다 스며듦에 의해 일어난다…그것은 가르쳐지는 만큼이나 ‘전염되듯이’ 습득된다. 훈련생들은 아이들이 부모를 닮아가듯이, 그들의 훈련자를 닮게 될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말했다.

부모는 자녀가 학업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긴 하지만, 과목별로 얼마나 성취하는지를 보고 자녀의 값을 매기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악한 세상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줄 아는 분별력과 의지를 갖기를 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더욱 친밀히 알아가고, 그 결과 하나님을 닮은 성품으로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부모가 자녀에게 간절히 바라는 그것이 제자 훈련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본을 끼치는 자는 그 본을 따르는 자가 단순히 성경 암송을 얼마나 잘하는지, 교회에서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안에서 성숙해 가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저자는 그래서 훈련자와 훈련생들이 서로의 삶을 안팎으로 들여다보고 관찰하면서 서로에 대하여 배우고 또 닮아간다고 말한다. 훈련자의 삶과 사역이 훈련받는 자의 본이 되고, 훈련받는 자의 삶과 사역이 훈련자에게 그가 얼마나 성숙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통찰의 도구가 된다.

기술이나 프로그램은 필요 없는가?

여기까지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나면, 형식적인 훈련 프로그램이 무의미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저자는 “형식적인 훈련 프로그램은 관계적 훈련과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훈련자가 관계적 접근에 헌신한다면, 훈련 프로그램은 개인적 훈련을 방해하기보다 강화한다. 사실, 형식적인 훈련 시간이나 프로그램은 훈련자가 훈련생과 관계 맺고, 참여하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훈련의 본질과 목표를 세 가지 C로 요약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목표를, 복음 중심적으로 그리고 관계 중심적으로, 어떻게 제자 훈련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저자가 다룰 이 책의 가장 실질적인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