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씨라면, 씨를 심으면 열매를 맺듯이 반드시 영적 성장이 일어난다. 물론, 성장은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다. 바울은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고백했다(고전 3:6). 또한 골로새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로새서 1:3-6)
영적 성장은 미시적인 측면과 거시적인 측면이 있다. 개인의 영적 성장과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을 대적하던 죄인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자라나면서 하나님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된다. 육신적인 인격과 성품을 벗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인격과 성품을 갖추게 된다. 또한 복음은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의 입술과 삶의 증언을 통해서 언어와 문화와 국경을 넘어 땅끝까지 미친다. <격자와 덩굴>의 저자인 콜린 마샬과 토니 페인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 성장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세 가지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복음의 성장이 일어나는 곳은 교회의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다. 복음은 격자를 계발하고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덩굴의 성장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교회의 규모나 체계나 프로그램, 시설 및 구조가 발전했다고 해서 복음의 성장이 일어났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둘째, 복음의 성장은 교회의 성장보다 우선되는 목표다. 물론 복음은 교회를 영적으로 성장시킨다. 그러나 지역 교회 성장을 목표로 삼으면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사명을 자칫 간과할 수 있다. 복음이 성장하는 곳, 그곳이 다른 지역의 다른 교회이거나 다른 나라의 선교지라고 할지라도, 우리 자원을 기쁨으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복음의 성장을 꾀한다면 사람을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 봐야 한다. 교회가 잘 돌아가게 하는 나사나 톱니바퀴의 일부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성장의 각 단계에 있는 개인들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 관한 교회의 관심은 교회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복음 안에서 진보하고 성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복음의 성장 단계

마샬과 페인은 한 사람의 삶에서 복음이 성장하는 네 가지 기본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1) 전도, 2) 양육, 3) 성장, 4) 훈련.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단계가 전도라면, 뿌려진 복음의 교리 위에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을 양육이라고 할 수 있다. 교리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여러 성도들의 돌봄과 기도가 필요한 부분이다. 성장은 천로역정의 주인공인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끝없는 여정을 걷는 것처럼,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면서, 주변 성도들의 도움을 받고, 매일 대하는 하나님 말씀으로 인격과 삶이 자라고,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면서 연단을 받는 총체적 과정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훈련 단계에 관하여 저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확신, 성품, 능력 안에서 성장하여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도는 비신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양육은 새 신자, 성장은 모든 그리스도인, 훈련은 잠재적인 덩굴 일꾼으로 성도를 준비시키는 단계다. 어찌 보면 성장과 훈련은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능력으로 성장하면서 동시에 복음의 일꾼을 훈련하는 일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두 가지를 반드시 유념하라고 권면했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이 덩굴 일꾼으로 훈련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확히 같은 방식이나 같은 분량으로 사역하도록 은사를 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똑같이 덩굴 일꾼으로 훈련받고 성장하더라도 은사에 따라 어떤 사람은 설교자와 교사, 또 다른 사람은 성경 공부 인도자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신자는 비신자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 진리로 그들을 이끄는 일에 뛰어날 수도 있다. 덩굴 사역은 교회 프로그램과 여러 직분과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덩굴 사역에서 각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찾아서 섬길 수 있다.
2) 덩굴 일꾼으로 훈련하는 것은 단순히 특별한 기술과 능력을 전수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제자가 되는 것이다. 건전한 교리와 경건한 삶이 제자 훈련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설교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달변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이 선포한 말씀대로 사는 본이 되는 자로 양육하는 것이다. 몇 가지 성경 공부 시간에 참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사는가다.
훈련은 사람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제자 훈련이 단순히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앞서 강조한 것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기능과 역할을 모두에게 주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각 성도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들이 개별적으로 말씀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각 성도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저자는 각각 복음의 성장 과정 중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 일곱 사람의 예시를 든다(편의상 한국 사람의 이름으로 바꿨다).

위의 표를 보면 지우는 비그리스도인으로 복음에 관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경은 같은 비그리스도인이면서도 복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지우는 여러 질문에 답변을 해주면서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경은 들려지는 복음이 잘 심겨서 믿음을 낳게 해달라고 구하면서 신실하게 복음을 전달하면 좋다. 철호는 새 신자로서 믿음의 기초를 배우며 여러 성도의 돌봄을 받고 있다. 소영과 재민은 둘 다 양육을 넘어 성장의 단계에 이르렀는데, 재민은 견고하게 잘 자라고 있는 반면, 소영은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소영은 비그리스도인 남편과 힘들게 살고 있고 십 대 자녀를 거의 혼자 키운다.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에는 하나님께 분노하고 원망하면서 정기 집회와 성경 공부에 불참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녀에겐 도움이 필요하다. 여러 성도가 곁에 와서 그녀를 돌보고 함께 기도하며 격려하고 문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편, 재민이 믿음 안에서 견고하다고 해서 항상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성장의 단계에 있는 모든 성도는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자를 훈련할 수 있는 성도로 훈련받고 있는 성도가 경숙, 덕호로 둘이 있는데, 경숙은 복음을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배우는 일반적인 훈련을 받고 있고, 덕호는 성경 공부 교사로서 다른 교사들과 함께 어떻게 성경을 정확하게 배우고 가르칠 것인지 특별한 훈련을 받고 있다.
어쩌면 도표와 분석이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과 운영을 중심에 두는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이 예시를 든 것은 우리가 각 성도를 이렇게 개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교회를 사역 목록의 집합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복음으로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사역은 격자가 아니라 덩굴에 관한 것이고,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의사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한다:
각 환자를 개별적으로 보고 그들의 질병을 진단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든다. 대신, 나는 모든 환자들을 매주 함께 모이게 하고, 그들에게 모두 같은 약을 주겠다. 매주 약을 조금씩 바꿀 것이고, 적어도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관리하기 쉽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어리석은 방침인가? 저자는 “큰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보다 효율적인 사역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개별적인 사람 중심의 사역도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바울도 그 두 가지를 강조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위의 도표에서 제자 훈련의 목적은 모든 성도를 오른쪽으로 한 칸씩 이동시키는 것이다. 지우는 복음에 대한 반항심을 불식시키고 귀 기울여 듣도록 애써야 하고, 하경은 거듭나서 새 신자로 양육 받기를 꾀해야 한다. 철호는 갓난아기에서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신자가 되고, 소영은 지금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견고하게 서기를 바라며, 재민은 계속해서 굳게 자라나면서 다른 이를 훈련할 수 있는 자로 세워지고, 덕호는 주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맡은 특별한 영역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길 원해야 한다. 물론, 이 일은 사람의 소원과 의지와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신다.

결론
저자는 다음과 같이 7장을 마무리한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더 많은 복음 성장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점점 더 많은 성숙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덩굴 일꾼으로 훈련하는 것이다—즉, 더 많은 사람들이 전도, 양육 또는 그리스도인의 성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하며 말씀을 말하도록 준비하고, 자원을 공급받고, 격려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소수의 목사와 장로가 나머지 모든 성도를 훈련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곳도 있겠지만, 금세 한계에 부딪힌다. 현실은 목회자에게 개인 전도가 완전히 떠맡기고, 개별적인 전도가 불가능해지면서 다수를 모아놓고 일방적인 복음 선포만 하게 될 위험이 있다. 게다가 교회 운영, 행사 기획 및 진행, 각종 회의 등으로 목회자가 제자 훈련에 쏟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말씀과 기도에 오로지 힘쓰기 위하여 구제를 다른 일꾼에게 맡긴 초대교회의 본에서 먼 그림이다(행 6:4). 기억하자! 더 많은 성도가 제자 훈련에 힘쓰는 교회가 복음 성장이 많이 일어나는, 열매가 풍성한 교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