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항상 진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시며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성경은 그대로 가진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할 때 “모든 성경”은 당시 그리스도인이 사용하고 있던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쓴 편지를 “다른 성경과 같이” 분류하여 신약의 서신서도 성경의 일부라고 분명히 밝혔다(벧후 3:15-16).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약속하셨고(요 16:13),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4:26).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과 그 동역자에게 생각나게 하셔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와 장래 일어날 일을 기록한 요한계시록 모두 성경에 포함된다.
성경은 억지로 풀면 멸망에 이르는 책이다(벧후 3:16). 성경을 억지로 푸는 자들을 가리켜 베드로는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들이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데 지혜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온전치 못한 믿음과 어리석은 생각으로 진리를 왜곡하며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말한다. 신약학자 더글라스 무는 이들이 베드로가 편지에서 책망한 거짓 교사라 말하면서 “그들의 이단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울의 글을 ‘비뚤어지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2 Peter and Jude, NIVAC, 212p). 이것은 비단 1세기 기독교 안에서만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21세기 기독교 안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생각, 계획, 뜻, 비전, 꿈을 신적 권위를 빌어 지지하고 관철하고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많은 경우 확증을 위해 성경을 억지로 푼다. 그리고서는 “역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게 맞다”라고 한다.
1. 성경 해석의 원리: 관찰-해석-적용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그 안에 내주하여 성경을 조명하시고 알게 하실 때, 신자는 성경의 참 의미를 밝히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데 영적인 조력자,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일반 책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책처럼 일반적인 책 읽기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도록 성경을 주셨기 때문이다. 불신자가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경을 읽는 방식과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 책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진리를 거부하기 원하는 반항심과 어두워진 영적 지각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경학자는 성경 해석의 원리로 관찰-해석-적용을 제시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책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먼저 책의 내용을 눈으로 보고 읽는다. 그동안 우리 뇌는 읽은 내용의 의미를 문맥 안에서 자연스럽게 파악한다. 시를 읽으면 시의 장르에 맞게, 역사서를 읽으면 그 장르에 맞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문맥을 파악하고 그 문맥 안에서 객관적 사실과 주장을 찾아낸다. 또한 우리는 책을 통해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하는 수준과 범위는 각각 다르지만 읽기는 보통 삶의 변화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주장하려면, 반드시 이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의 원래 의미를 왜곡하여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경을 억지로 푸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얻을 수 없다. 성경은 기록된 의도대로 관찰-해석되어야 하고, 그렇게 적용된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하나님의 말씀이다.
2. 성경 해석의 원리에 따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필자는 요한복음 21장 말씀을 통해 소명을 확신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이 쉐퍼드 컨퍼런스 마지막 말씀 시간에 베드로의 소명을 다시 일으키신 예수님을 본문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줬을 때, ‘나도 평생 베드로처럼 주님 맡겨주신 양을 먹이고 돌보고 치는 삶을 살고 싶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신다면, 맡겨만주신다면 이 일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성령님께서 강력한 부르심으로 필자를 도전하고 격려하고 위로하셨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위의 소명 간증에서 성경의 객관적 진리가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됐다. 하지만 주목하라. 성경의 관찰과 해석 단계에서 이 말씀을 필자에게 쓰여진 것으로 관찰하고, 2013년부터 용인에 있는 유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이라고 절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본문은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합당한 해석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처음 부르신 그 장면 그대로 재연하시면서 세 번 그의 진심,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확인하게 하시고, 다시 제자의 소명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필자의 소명,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되는 시점은 관찰과 해석으로 명료해진 하나님의 의도된 뜻이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는 시점이다. 베드로를 불러 자기 증인으로 세우신 예수님께서, 오늘 나를 불러 그분을 위해 살라고 명하신다면, 평생 그분을 위해 살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필자의 소명은 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장로의 자격을 점검한 후 교회의 공식 권위를 통해 세웠다는 점에서, 또 지금까지 수고한 것을 통해 오직 은혜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종종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라고 주장할 때,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관찰과 해석 단계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뜻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성경은 오늘날 독자를 위해서 기록된 것이 맞지만, 관찰과 해석의 단계에서는 먼저 ‘성경이 객관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특별히 소명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주장할 때, 본문은 원래 의미에서 심히 왜곡된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이단 JMS 정명석은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를 읽고는(눅 2:11) 이것이 달밝골동네(정명석의 고향 월명동) 출신인 자신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베드로가 경고한 대로 거짓 교사인 그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고 뒤틀어 스스로 멸망에 이른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류를 참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멀리 해야 한다. 만일 성경의 관찰-해석-적용의 원리를 무시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단의 오류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3. 성경 해석의 원리를 무시하는 신성모독의 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잘못 이용하는 모든 사람을 이단 취급해서는 안 된다. 자라면서 배운 교회의 전통과 배경의 영향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하면서 잘못된 방식으로 성경을 오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표현 방식이 서툴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다. 하지만, 부지 중에 짓는 죄도 죄다. 성경을 왜곡하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을 왜곡하게 된다.
하나님은 한 입으로 두 말씀 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을 통해 분명하신 뜻을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의미로 조명하실 수 없다. 변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단 하나의 확실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거짓 교사의 속임수를 분별하고 대적할 수 있다. 나타나신 하나님의 뜻은 그와 다른 모든 주장을 무너뜨린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달한 선지자를 죽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말씀이 왜곡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말씀을 왜곡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통해 개인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할까? 일반적인 성경 해석의 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것으로는 그만큼의 확신과 감동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똑같은 성경 읽기라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것 같은 강력한 체험이 되어야 워치만 니가 구분한 ‘영적 계시’를 받은 것이 되니까. 영지주의가 추구한 ‘특별한 지식’을 얻는 것이 되니까. 한 차원 높은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실 때 차원을 구분하지 않으셨다. 성령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성경을 알게 하시고 살게 하시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성경 읽기를 통해 그렇게 하신다(존 파이퍼는 그래서 우리의 성경 읽기를 ‘초자연적 성경 읽기’라 부른다). 다음 칼럼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