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교회와 교단을 선택한다. 하지만 필자는 부모님이 섬기던 교회에 나면서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교회에서 세운 다음 세대 목회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필자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열렬히 사랑하는 유평교회는 1965년, 미국에서 파송된 맥카피 선교사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청년 몇 사람을 중심으로 30여 호의 아주 작은 마을 유평에 세워졌다. 1966년과 1983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7년에 건축을 이어가면서, 계속해서 처음 이곳에 뿌려진 복음의 결실을 갈수록 풍성하게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까지 맛보고 있다.

자라면서 학교에서 만난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유평교회가 조금은 특별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200여 개가 넘는 교회와 매우 친밀하게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하는 교회 이야기를 듣거나 그 교회에 직접 방문하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특별히 미션스쿨이었던 고등학교 때 경험한 채플과 종교 수업을 통해서, 유평교회는 대한민국의 주류 기독교와는 분명 다르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평교회에 복음의 씨를 뿌린 맥카피 선교사는 당시 가난하고 힘들었던 한국 사회에 복음과 함께 구제하는 일로도 상당한 수고를 했다. 병원, 학교 등(필자는 선교사가 세운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했다) 여러 기관을 세워 당시 대통령에게 표창을 받기도 했고, 유평교회가 그 결실로 드러났듯 복음을 시골 마을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전파했다. 맥카피 선교사는 기독교형제단(Christian Brethren)이라는 교단에서 파송된 선교사였고, 그래서 유평교회는 자연스럽게 기독교형제단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교회로 시작됐다.

1980년대부터 수십 년간 교회를 돌아보고 가르친 원로 목회자들이 각각 미국과 호주 기독교형제단 소속 대학교와 교회에서 체계적인 교리 및 신앙 교육을 받고 돌아와 성도를 성실하게 가르친 결과 기독교형제단의 교리가 더 정교한 틀을 갖춰 전 성도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다음 세대 목회자로 세워지기 위하여 필자는 존 맥아더 목사가 총장으로 있는 마스터스 신학대학원(미국 LA)에서 M.Div와 Th.M 교육을 받았는데, 그동안 자라면서 교회에서 배우고 훈련받은 교리와 신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며 굉장히 놀랐고 또 감사했다. 신학교 교수 중 한 사람이 기독교형제단 교회를 섬기는 성도이기도 했고, 교회론의 주 교재가 기독교형제단 소속 목사인 알렉산더 스트라우크가 쓴 책이기도 했다(“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인도자들”, 전도출판사, 2011).

5년 동안 교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또 그곳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다양한 교단 출신 예비 목회자들과 교제하면서, 우리가 진리 안에서 하나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물론, 비본질적인 교리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지만, 우리는 본질적인 교리에서 분명 일치되었고 그 기준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고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비본질적인 교리에 관하여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고, 범사에는 사랑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진리에 있어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 보수적인 특징을 강하게 갖고 있지만, 동시에 적과 친구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도 얻었다. R. C. 스프로울과 같은 개혁주의 대표자와 세대주의를 지지하는 존 맥아더가 서로 친밀한 사랑을 나누며 강단에서 함께 가르치고 또 토론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분명히 다른 형태의 교회론과 종말론을 가진 존 파이퍼와 존 맥아더가 오랜 세월 서로를 ‘절친’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본을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하나님은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교회에게서 그 촛대를 옮기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깊은 뿌리에 교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자기들이 만든 전통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진리이신 예수님을 대적했다. 그들이 만든 전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박해하거나 내쫓았다. 5년 간의 체계적인 교리 교육을 통하여 배운 것을 한마디로 말해 보라고 했을 때, 필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참 적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답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우리를 마중 나온 원로 목회자 앞에서 처음으로 그 대답을 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10년의 목회 경험이 쌓인 지금도 필자는 진실로 겸손하기 원한다. 본질적인 진리에 관하여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담대하게 그 진리를 붙들고 선포하기를 원한다. 비본질적인 교리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부지런히 연구하여 확신을 가지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다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친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기 원한다. 그들은 원수가 아니라 형제다. 언제나 진리를 말할 때는 “오직 사랑 안에서” 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진리로 누군가를 해치거나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유익을 끼치고 구원에 이르도록 돕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앞서 필자는 자라면서 체득하고 배운 기독교형제단 교리와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교리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론, 기독론, 죄론, 인간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서 거의 대부분 교리적 일치를 보였다. 아마도 초기 기독교형제단의 교리적 특징이 개혁주의와 많이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소하게 발견되는 다른 점이 있다면 교리적 체계성이나 전문성이 보완될 필요가 있는 지점이었다. 특히 교회론과 종말론은 미국과 한국 기독교의 주류와 많이 다를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모든 교리를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과 절대적 권위 아래 정립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존 맥아더 목사는 교회론과 종말론의 가르침을 기독교형제단에게서 많이 가져왔다. 그것이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가장 부합하는 교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맥아더 목사는 강단에서 신학교를 졸업할 때 대부분의 교리를 정립했지만 교회론은 어디에서도 도움을 얻을 자원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기독교형제단에서 나온 책자를 통해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그 시작이 기독교형제단에 있다). 그래서 필자가 이질감을 거의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고, 바로 이 지점이 이질감을 많이 느끼게 한 조국에 기독교형제단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칼럼 시리즈를 통하여 단지 기독교형제단의 독특한 교리나 실천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기독교형제단이 시작됐을 때, 그들은 각각 자유교회, 침례교회 등 다양한 교단 소속 성도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한 형제자매로 교회의 지체가 되어 한 떡과 잔을 가지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매우 친화적이고 개방적인 특징(그리고 성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포용력을 가지고 기독교형제단이 전수하려는 고귀한 유산을 나누기 원한다.

유평교회의 목표는 언제나 특정 교단의 교리와 실천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기독교형제단 교회를 세우거나 다른 주류 기독교 교단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전통을 무조건 지켜내려고 독단성과 폐쇄성을 교만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성경으로 전통을 재검증하려는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교회의 목표가 이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기독교형제단의 유산 중에서 그 목표를 이루는 일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개혁주의 전통이나 청교도 신앙에서 정말 많은 유익을 얻는 것처럼, 기독교형제단의 전통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다. 서로의 전통에서 유익을 얻을 것이 있다는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상대방의 전통이 성경적인 전통에 더욱 가깝기 때문에 기존의 전통을 점검하고 보완하여 더욱 성경에 부합하는 전통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유평교회는 앞으로 다룰 여러 가지 기독교형제단의 성경적인 전통을 지켜나갈 것이며, 다른 교단의 교회와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자매에게 이를 통하여 많은 유익을 끼치기를 소원한다.

기본 원칙: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종교개혁의 강령이라 불리는 다섯 솔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오직 성경’이다. 이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은 이유는, 이후에 나오는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의 정확한 의미와 적용을 결정짓는 것이 “오직 성경”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는 “오직 성경”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의 5대 강령이라 불리는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구속,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은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영광을 드높인다는 점에서 교리적으로 멋들어지기 때문에 많은 신자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특별히 구원론에 있어서 개혁주의는 과감하면서도 예리하게 성경 여러 본문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종합한다. 그 해석에 있어서 타협불가한 원칙이 있다.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 권위가 담긴 오류가 없는 말씀이라는 원칙이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 개혁주의 이어서 복음주의가 지켜온 전통은 한결 같았다.

17세기 후반 계몽주의를 기점으로 인간의 이성이 절대 권위를 쥐고 성경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게 되면서, 사상의 중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이 들어섰고(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 신학에도 ‘자유’가 주어졌다. 무오한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자유, 성경의 절대 권위로부터 자유다. 그래서 참으로 안타깝게도 성경은 단순히 인간의 책이라 믿는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과 인간의 콜라보 작품 정도로 여기면서 성경의 핵심 내용은 신비롭고 권위 있지만, 디테일은 오류가 많다고 보기도 한다. 그들은 ‘오직 성경’을 대놓고 부정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영역만 인정하고 나머지를 알 수 없다고 선언할 뿐이다. 비극적인 것은 총체적인 성경의 진리는 나머지를 내주면 전부를 내주게 된다는 점이다. 창조를 부정하면 구원에 문제가 생긴다. 성 정체성을 왜곡하면 부부관계와 그 관계가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망치게 된다. 이런 위기를 느꼈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1978년 시카고에서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선언”을 했고, 제임스 패커, 프란시스 쉐퍼, 존 맥아더, R. C. 스프로울, 노먼 가이슬러 등이 함께 작성했다.

성경의 일점일획이 무오하고(실제로 오류가 없다) 무류하며(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절대 권위가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의 해석 또한 기록된 방식대로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을 문자적-역사적 해석이라고 한다. 성령께서 의도하신 성경 본문의 의미를 본문 내부 문맥(문학적 특징)과 외부 문맥(역사, 문화, 사회적 특징)을 고려하여 파악하는 해석의 원칙이다. 종교개혁과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가 교리를 정립하는 기본 원칙이 “오직 성경”이라고 할 때, 성경에 관한 믿음과 해석의 원칙이 바로 이와 같다. 기독교형제단은 이 기본 원칙을 모든 교리에 적용한다. 구원론뿐만 아니라 교회론과 종말론까지. 역사학자들은 그래서 기독교형제단이 “오직 성경”에 헌신한 무리라고 평가한다. 이는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복음주의가 헌신적으로 지켜내려는 기본 원칙과 같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교회론에 실제로 적용되는지 다음 칼럼에 이어서 살펴보자. 가장 먼저, 교회란 무엇인지 기독교형제단이 주장하는 성경적인 전통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