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인 문제로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제 : 자녀를 위한 최선
본문 : 창세기 22장 1~19절
설교자 : 이병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면 혼자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면, 또 한 번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부부의 삶이 이제는 그 자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태어났을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태어나면 여러분의 관심사, 생활방식, 살림살이, 삶의 모든 것들이 자녀를 중심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는 저희 집에 아이들의 물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중에는 내 물건을 둘 자리가 없어지겠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자녀는 가정의 축복이자, 정말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자라가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틈만 나면 카메라를 누르며, 사진으로, 영상으로 추억을 담아둡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아이의 사진을 공유합니다. 우리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어요.’ 마치 그 아이가 세상 처음으로 걸음마를 개발한 것처럼… 우리 아이가 벌써 엄마라고 말했어요.’ 아무리 들어봐도 ‘엄마’하는 소리는 아닌데… 이게 부모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랬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십대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집안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이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진을 찍는다면 어떨까요? 우리 아이가 이어폰을 끼고 인상을 쓰고 있어요.’ ‘우리 아이가 방에 들어가 문 닫고 나오질 않아요.’

어찌되었든 부모의 인생에 있어서 자녀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부모의 삶이 자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삶에는 적지 않은 위험요소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생에서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그 한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자녀가 가정의 최우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서 삽니다. 자녀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녀 양육에서 실패를 경험합니다. 자녀를 가정의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자녀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를 망치는 일입니다. 그럼 무엇이 자녀를 위한 최선일까요?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그 비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지금 돌볼 자녀가 없기 때문에 오늘 설교는 나랑 별로 관련이 없겠다하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돌볼 자녀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아주 중요한 믿음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누구도 예외 없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청년들과 학생들도 잘 들어야 합니다. 자녀양육은 미리부터 잘 듣고 아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집에 가서 들은 말씀을 가지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아주 유익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오늘 본문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10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것도 오랜 기다림 끝에,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럼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보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으며 이삭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냅니다. 함께 양을 돌보며, 제사를 드리며, 이삭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칩니다. 또한 이삭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을 지키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는지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 명령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다. 마치 새벽 3시에 다급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도 같습니다. 그 시끄러운 소리는 단잠을 깨우며 평화로운 일상을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

번제는 제물의 전부를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명령은 하나뿐인 아들을 자신이 직접 죽이고, 그 몸을 불로 태우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내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이라니요!’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이럴 거면 주지를 말지, 줬다가 다시 뺏는 건 뭡니까! 이건 아니잖아요!’

사실 이 명령은 너무도 혼란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본문의 저자는 독자에게 그 목적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1)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미워하십니다. 거짓 신을 섬기던 나라들이 이러한 일을 하기도 했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악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맛있게 과자를 먹고 있을 때, 어른들이 하나만 달라고 이야기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아이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아브라함은 이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인생의 가장 큰 적이 되신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일입니다.

이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삭을 바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삭은 100세에 얻은 저의 하나뿐인, 유일한 아들입니다. 차라리 저를 데리고 가십시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왜 이런 명령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시험을 하십니다. 이 시험은 악으로 유혹하는 시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믿음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주 사용하시는 시험문제가 바로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무엇을 선택할까요?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도 준비합니다. 그리고 길을 나섭니다. 정말 발이 떨어지지 않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여행길이 어땠을까요?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을까요? 목적지까지 삼일이 걸리는데, 도착하면 사랑하는 자녀의 목숨이 끝이 나는 여행입니다. 길을 가면서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얼마나 돌아가고 싶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선택을 바꿀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여전히 혼란스러워 마음이 무거웠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그래서 5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5) 아브라함은 이것을 “예배”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불과 칼을 챙겨서 걸어갑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있는데 제물이 없는 겁니다.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드려왔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7)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삼일 동안 미루고 미뤘던 바로 그 문제입니다. 이어서 창세기의 저자는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여러 동사를 연이어 사용하면서 긴장감 있게 묘사합니다. 마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9-10)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이르렀고, 제단을 쌓았고, 나무를 놓았고, 이삭을 나무 위에 놓았고, 칼을 잡았고, 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계속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하는 것처럼 꾸물거리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기거나, 딴청을 피우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거나, 괜히 길게 기도하면서 시간을 끌지 않습니다. 혹은 이삭의 귀에 대고 자신을 밀고 도망가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아들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들이댑니다. 그 예리한 칼날이 이삭의 목에 깊이 박히려고 할 때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급히 부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아브라함은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자녀를 예배하기보다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여기서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자녀의 죽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경외해야 할까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것들, 정말 별것도 아닌 것들을 다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돼지 머리를 잘라두고 절을 합니다. 이사할 수 있는 날짜를 따지고,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합니다. 재수를 따집니다. 복이 달아날까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도 잘못된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나쁜 일을 함께 합니다. 대학생들은 학점이 안 좋게 나올까봐 두려워서 부정행위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떨어질까 두려워서 주일에도 교회가 아니라 학원을 보냅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믿음에 어울리지 않는 일,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합니다. 어떨 때는 경제적인 안정이 깨질까 두려워서 헌금을 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혼동하며 삽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자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가 최고로 아끼는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보다 하나님을 우선시 했을 때, 자녀에게 손해가 되는 건 아닐까요? 그것이 자녀에게 어려움이 되거나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먼저 예배했을 때 그것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17-18)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순종 때문에, 너의 하나뿐인 아들보다 나를 예배하였기 때문에,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복을 베풀리라. 세상 모든 민족이 너의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이 부모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 교훈을 명심하십시오. 그래서 실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자녀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자녀를 위한 최선입니다.여러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자녀를 위한답시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우선시하고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자녀를 두는 것은 자녀를 망치는 일입니다. 본인에게도 자녀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에 우리 자녀들을 예배하도록 권합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녀를 최우선으로 두고 자녀에게 투자하라.’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빠는 자녀를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고, 엄마는 자녀를 따라다니면서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입니다. 그리고 자녀는 엄마가 만든 틀 안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하는 기계입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말합니다. ‘다른 건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공부만 해. 넌 공부만하면 돼.’ 세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의 자녀는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고, 결국 당신의 자녀는 인생의 낙오자가 될 거야!’

세상의 그릇된 가치와 거짓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자녀를 섬길 것인지 선택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시험 때문에, 교회 오는 것을 두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 때 여러분은 자녀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많은 학생들이 학원과 예배가 함께 걸려있으면 학원을 선택합니다.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우선되어야 할까요?

여러분이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 원합니다. 학원에 보내고 싶은데 재정적인 한계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지출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 선택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지금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 여러분은 자녀의 죄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혹시 자녀가 말씀을 어기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게 귀찮아서, 혹은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혹은 내가 너무 바빠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습니까?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지는 않습니까?

구약 사무엘서를 보면 엘리라는 제사장이 나옵니다. 그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은 죄를 범하며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엘리는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녀들의 죄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엘리가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29-30) 결국 엘리의 아들들은 비참하게 죽었고 엘리의 집안은 몰락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자녀의 죄악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방치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바른 길을 가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도록, 말씀에서 벗어난 어긋난 길을 가지 않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사랑과 희생으로, 진심어린 설득과 책망으로, 많은 기도와 눈물로, 먼저 본을 보임으로써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매를 대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게 진짜 사랑하는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자신을 파괴하는 위험한 곳으로 가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붙들고 그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는 물론, 내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버릇없이 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정말 기도하며 사랑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약 자녀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를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자녀가 소중하면 할수록 그 자녀보다 하나님을 먼저 예배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내 계획과 내 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다 좋은데, 이런 질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 확신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몰랐겠지만, 그리고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하나님이 무언가를 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수풀이 걸린 양을 이삭을 대신해서 바치면서 그 지역 이름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확신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자녀보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확신이 돈보다 성공보다 자녀보다 하나님을 먼저 예배하도록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확신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2장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양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줍니다. 어린양을 준비하셔서 이삭을 살게 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준비하셔서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준비하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신뢰하고 자녀보다 하나님을 먼저 예배한다면, 그로 인해서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자녀를 떠받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뒤로 하고 자녀를 우상처럼 섬기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응석을 받아주며, 자녀의 죄를 용납하고, 자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한 곳에서 하나님만을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모두가 더 좋은 부모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역모임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명령을 하십니까?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과정에서 본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해보세요.

3. 당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은 당신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나누어보십시오. 당신이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6.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입니까?

7.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은 무엇입니까?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삶에서 경험한 것이 있다면 간증으로 나누어 보세요.

8.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다음의 빈 칸을 채워보세요.

“예배”는 하나님을 ( )하는 것이고, 그것은 [ ]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 ]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