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그리스도인과 고난 Part III
본문 : 베드로전서 4:12-19
설교자 : 조정의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우리는 고난 중에 기억해야 할 6가지 명령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과거에 일본에서 큰 쓰나미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물에 휩쓸려 마을이 잠기고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 보셨을 것입니다. 유명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한 앵커가 유명한 목사를 초청하여 매우 강한 어조로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막아날 수 없는 분인가, 아니면 막아낼 수 있는데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제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시험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그것을 막을 힘이 없으셔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막을 힘은 있는데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지는 않으시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편지를 받고 있던 소아시아 성도들은 여러 시험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역시 ‘왜 우리가 이러한 고난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 의심과 염려가 생길 때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질병을 허락하셨지?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별로 고난이 없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왜 이런 고난이 주어졌는지를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의 그룹은 “하나님의 집”(17), “의인”(18), “우리”라고 언급하는 자들입니다.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신령한 돌로 세워진 “하나님”의 집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위에 세워진 각각의 지체들, 바로 교회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인하여 의롭게 여김을 받은 “의인”이었고, 베드로와 소아시아 성도를 포함한 “우리”였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 그룹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그룹은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17)입니다. 또한 “경건하지 아니한 자”“죄인”(18)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의인으로 칭함 받을 수 있는 복음을 거절한 자들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심판이 시작된다고 말하고,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의인이 이렇게 심판을 받는다면 믿지 않는 자들은 더 얼마나 큰 심판을 받겠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를 “불시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집 안에서 시작하여 밖으로 나가는 불을 생각하면, 집 안에서부터 시작된 불이 밖으로 나가 모든 것을 태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세상의 재판도 그 결과는 유죄, 또는 무죄입니다. 심판이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심판은 좋은 평결이거나 나쁜 평결이거나 승인, 징계, 정죄 등 다양합니다. 칼은 어떻습니까.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도구도 되지만 살리는 도구(의사의 메스)도 됩니다.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그림을 어디에서 얻었을까요. 17-18절은 구약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는 구절로, 에스겔 9장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증한 일이 일어났고 우상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은 탄식하는 자들에 대해 표를 하라고 하고 표 없는 자를 치라고 하십니다.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너희는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1-6).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성전 바로 앞에 있던 늙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을 보겠습니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 2-3). 여기서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 제사장을 먼저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 그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심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죄인들에 대한 심판이 언급됩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5).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악인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에 대한 심판으로 시작하셔서 악인에 대한 심판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은 잠언 말씀과 유사합니다.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잠 11:31). 베드로가 잠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도 심판하시는데 악인은 얼마나 심판하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의인에게는 그를 연단하기 위해, 거룩하게 하기 위해, 깨끗케 하기 위해서 고난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신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1-2). 열매 맺는 자들도 깨끗케 하시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 3:16-17). 성령과 불이 하는 작용은,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과 비그리스도인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고난은 주님의 도구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4-8).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고난이 있어야 하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왜 어려움이 주어지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런 것이 없다면, 즉 우리를 성화시킬 환경이 없다면 우리가 사생아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9-10). 이제 베드로가 한 말,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고난을 기대하고 기뻐하라는 명령이 이해되지 않으십니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욱 큰 고난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7). 이것이 우리가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이 당할 고난입니다. “창세로부터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하셨습니다. 그러한 무서운 고난 이후에는 영원한 불못입니다.

오늘 우리가 17-18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의인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사실과, 또한 죄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영원한 고난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중에 고난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일까요, 힘은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아서일까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깨끗케 하시기 위해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19). 악을 인하여 고난 받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당할 때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고난은 우리에게도 불신자들에게도 불입니다. 또는 칼과 같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믿는 자들은 공의로운 심판 앞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 앞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옷 입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을 주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 고난 중에 기억해야 할 명령 마지막은, 고난 중 ‘주님만 바라라’입니다.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19). 우리는 고난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고난 중에 감사하고 순종하며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미쁘신 창조주”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전능한 하나님이요 언약에 신실하신 헤세드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허락하신 일만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일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낙심시키거나 죄 짓게 하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참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원하시는 것을 이루고자 신실하게 일하실 것입니다. 금과 은을 연단하여 순수한 광물을 만드시는 것처럼 우리를 단련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사 26:9).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되기를 바라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소아시아 성도들의 고난은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소아시아 성도들 이후의 성도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삶을 돌이키며 어떤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주님을 위해 어떤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나와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배우자, 가족의 질병, 어려움, 연약함, 직장에서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진로에 대한 걱정 등이 고난이 될 것입니다. 자주 두통을 앓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왜 한 주님을 섬기겠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를까, 교회가 왜 하나가 되지 못할까로 낙심이 됩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들, 걱정들, 고난들로 인해 왜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하셨을까 의문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쓸데없는 것들을 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두려움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 고난에 대한 베드로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것이 바로 내 이기심을 드러내기 위해, 교만을 들추시기 위해,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교회의 어려움은 인내하게 하시고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을 염려거리나 하나님의 실수로 생각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시고 죄를 잘라내기 위해 예리한 칼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