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五餠二魚)
본문 : 누가복음 9장 10~17절(마 14:13-21; 막 6:30-44; 요 6:1-14)
설교자 : 조정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께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보이신 긍휼과 사랑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고 주님이 가지고 계셨던 창조주로서의 능력을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본문을 통해 발견한 그분의 아름다운 성품과 전능하심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막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달 후면 갈릴리 지역을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내려가십니다. 그곳에서 곧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갈릴리 사역을 정리하시는 시점입니다. 주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쫓겨나시고 본격적으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하셨고,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전파하시는 말씀을 확증하는 기적을 보이셨는데 병고침과 귀신 쫓음, 죽은 자를 살리는 일과 죄를 사하는 권세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가 누구인데 이런 권위있는 말씀을 전하고 이러한 이적을 행하는가 하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의 막바지에서 더욱 더 예수님께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등불처럼 낱낱이 보이셨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막으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더욱 집중하시며 그들에게도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능력과 권리를 주셔서 제자들이 가서 가르치고 병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을 곳곳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고 그 진리를 확증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 소식을 들은 헤롯이 동일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 본문은, 보냄을 받은 제자들이 모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동안의 기적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큰 기적입니다. 4복음서가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는 기적은 주님의 부활과 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그동안 하셨던 기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고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난 능력입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회개하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잃어버린 그들을 찾기 위해 위대한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긍휼과 그분의 능력에 집중하여 이 말씀을 보시길 바랍니다.

사건의 배경(10-14)

사도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옵니다. 여러 마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던 제자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봄 정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예수님께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막 6:30). 예수님의 능력으로 했던 일에 너무 흥분해서 그 일들을 신나서 고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잘했다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조언과 권면을 들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주님은 그들을 데리시고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십니다. 그들이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이는 오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의 북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마 14:13). 그곳은 벳새다라는 고을의 부근에 있는 한적한 빈 들(산)이었습니다. 벳새다는 가버나움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진 작은 마을로 베드로, 안드레, 빌립이 자란 마을이었습니다(요 1:44).

그런데 무리가 알고 따라왔습니다(11).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무리일까요? 다른 기록을 보면 여러 고을에서 나온 무리라고 말합니다. 갈릴리 부근에 있는 여러 마을들, 제자들이 방문했던 마을들,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곳에서 많은 이들이 나온 것입니다. 얼마나 큰 무리였을까요? 남자가 5천명이었고,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적어도 2만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맛보았거나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마을에서 보거나 듣고,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마 14:13, 막 6:33, 막 6:33).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갔고 무리들은 걸어서 갔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달려서 먼저 도착했습니다.

좀 쉬고 싶어 한적한 곳으로 갔는데 2만 명의 무리가 따라왔다면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좀 쉬고 싶다고 분노하거나 짜증을 냈을지 모릅니다. 정중하게 거절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들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고 섬기셨습니다.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막 6:34).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필요를 절감하시고 자기 일처럼 딱하게 여기셨습니다. 목자 잃은 양은 스스로 먹을 것을 찾지도 못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없으며 다 자란 털을 깎을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충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파하셨습니다. 날이 저물어 갈 때까지 그렇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을 보면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눅 6:20-49)을 전하셨을지 모릅니다. 회개하고 천국 백성이 되라!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내가 누구인지 보라, 믿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의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온 사실, 그분이 누구신지 보여주는 기적으로 병을 고치셨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영적인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날이 저물었습니다. 열 두 사도가 예수님께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그들이 너무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필요를 공급했지만 이제는 배가 고파온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빌립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으셨습니다. 빌립은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아도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떡이 부족하다고 계산합니다. 이것은 8개월치 임금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돈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빈 들은 이런 음식을 구할 수도 살 수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고 소망이 없으니 그들이 알아서 먹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13절에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에수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신 것은 “친히 어떻게 하실 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선포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하나도 해보자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계시니 주님께서 무리의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와 같은 기적을 보여준 적이 없으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주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붙들 기에 연약했습니다.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사오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돈도 사실 없어요)” 여기서 말하는 떡은 그렇게 큰 떡이 아닙니다. 시루떡이나 바게트 빵이 아닙니다. 비스킷 크기의 작은 빵입니다. 물고기도 연어나 참치가 아니라, 갈릴리 호수에서 잡히는 작은 물고기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이었습니다.

남자가 오천명인 엄청난 무리인데 어린 아이가 먹을 적은 양을 가지고 어떻게 이들을 먹일 수 있을까요?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하셨습니다. 식당에 가서도 테이블마다 앉는데 그렇게 하면 음식을 전달할 때 용이합니다. 이는 사람 수를 셀 수 있는 근거도 됩니다. 봄이었기에 빈 들에 “푸른 잔디”(마 14:19; 막 6:39; 요 6:10)가 있었고 그 옆으로 갈릴리 호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저녁이었습니다. 어쩌면 날이 저물어 가는 시간대였기에 붉은 노을이 물든 하늘 아래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앉혀놨고 분위기도 좋은데 음식은 비스킷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2마리뿐입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의 작은 음식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감사드리셨습니다. 음식에 어떤 주문을 걸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 음식을 무리에게 전달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손에서 음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계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와 유사한 기적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한다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인데 그들을 위해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에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 11:23)”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모아 내리게 하셨습니다.

왕하 4장을 보면 엘리사에게 한 사람이 와서 보리떡 이십 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주었습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이것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환이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고 엘리사는 대답합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먹고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열왕기하 4:42-44).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가 경험한 하나님, 엘리사가 경험한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이겠다’고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 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수많은 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는 음식을 만드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주님이 어떤 일을 원하시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또 주님이 어떤 일을 명하시면, 그 일이 반드시 성취된다. 그는 어둠에서 빛을, 무질서에서 질서를, 약함에서 강함을, 슬픔에서 기쁨을,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내실 수 있다”- J.C.라일

주님의 공급하심은 풍부하고 완벽합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 음식을 아주 조금씩 나눠 먹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2만 명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를 먹고 배부를 수 있을까요? 그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먹고 배불러서 음식이 남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완전히 만족시킬 만큼 풍성하게 공급하셨던 것입니다.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저는 어릴 때 이것을 보며 궁금해 했습니다. 왜 남았을까요? 바구니에는 여러 크기가 있는데 누가복음에 쓰인 단어는 보통 우리가 매는 배낭 크기의 바구니를 말합니다. 한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양식 정도를 담기에 합당한 크기였을 것입니다. 바로 열두 명의 제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팠고 사역을 했고 음식을 나눠주는 일로 기진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까지 정확하게 공급한 뒤에 기적이 멈췄습니다. 정확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완벽한 공급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제자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수많은 무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질병을 고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용할 양식도 충분히 공급하셨던 창조주 공급자 하나님이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이것을 경험하면서 알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저는 뭐가 없습니다,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힘듭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급되지 않는 것들에 근심하고 걱정하며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이러한 이적을 행하시는 분이라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예수님은 빌립에게 질문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할 계획을 가지고 계시면서 ‘결혼 어떻게 할 꺼니, 직장 어떻게 할 꺼니?’라고 묻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이 계시잖아요, 주님이 공급하시겠다는 약속만 있으면 저는 충분합니다, 저는 주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면 됩니다, 주님만 있으면 됩니다. 주님은 저의 필요를 모두 아시고 풍성히 정확하게 주시는 분 아닙니까? 그런 능력있는 분 아닙니까?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든 간에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이런 고백을 하는 자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구역모임을 위한 질문들

1. 예수님은 각각 이들의 어떤 필요를 돌보셨나요?

a. 사도들(10절)

b. 무리들(11절)

c. 사도들과 무리들(14-17절)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13절)

3. 오천 명을 오십 명씩 앉히면 몇 그룹이 생길까요?(14절)

4.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은 그 분이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나요?(20절 참고)

5.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섬기는 주가 이런 분이시라면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당신의 태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