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영광에 매여 있어 현실을 모른다는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예전의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말입니다. 2017년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과거의 영광’을 생각나게 하는 해입니다. 바로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 논제(반박문)’이 도화선이 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영광스러운 과거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그들이 주장했던 혹은 그들의 주장에 내재되어 있던 ‘다섯 솔라(Five Solas)’라 불리는 근본정신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혹은 내재된 분명하고 핵심적인 개념인데, 당시 잊혀졌거나 왜곡되었거나 의미가 퇴색된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 강조한 것입니다. 다섯 솔라는 아래와 같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을 시작하면서 종교 개혁의 근본정신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정신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과 삶에 있어 성경이 유일한 최종 권위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유일한 최종 권위’입니다. ‘최종 권위’는 우리가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최종 결정권이 누구 혹은 무엇에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로 그 최종 권위이자 유일무이한 권위라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당시의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완전히 부인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오고 개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성경과 ‘동등한’ 다른 권위도 인정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교도권(magisterium)이라고 하는, 교황과 의회가 결정한 교회의 전통(가르침)이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실제적으로는 성경의 권위가 다른 ‘보이는 권위’ 아래 놓여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성경의 권위를 겉으로 부인하지는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교회의 전통 등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도 성경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교회의 전통도 오랜 기간 성령의 조명 아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불완전한 인간이 그러한 전통을 이어가면서 본질은 퇴색되고 변질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통 자체도 때로는 다시 성경으로 검증받고 재정립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통 자체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고 말한다면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믿음과 삶에서 최종 권위는 성경이고, ‘오직 성경’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의 핵심 사상이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진리의 기초입니다.
‘오직 성경’은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신을 종교개혁의 후손들이라고 하는 우리는 ‘오직 성경’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러 면에서 이 정신과 멀어지고 당시 개혁이 필요했던 교회의 모습과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성경 자체와 멀어졌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라틴어로만 읽게 했는데, 문제는 당시 라틴어는 이미 일반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틴어를 배운 자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그림으로 보거나 사제들이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당시의 일반 언어로 번역하는 일들이 종교 개혁을 전후로 일어나게 됩니다. 왈데시안(왈도파)은 이미 12세기에 신약 라틴 성경을 불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습니다. 14세기에는 잘 알려진 위클리프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의 위협 아래서도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을 맹목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이 정말 그런지 스스로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이 일은 교회의 인도자들이나 성경 학자들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도들보다 우리는 성경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보다 우리 삶에 더 가까이 또 깊이 들어와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내 손이 닿을 곳에 있는 스마트폰이 그렇습니다. TV가 그렇습니다. 그런 매체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들이 그렇습니다. 성경 한 권을 손에 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던 과거 성도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좋은 환경에 있지만, 성경은 여전히 우리에게서 멀리 있습니다.
항상 성경을 손에 들고 있고 읽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갖고 내 시간과 노력을 사용하는 만큼 성경을 읽고 배우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성경에서 내가 멀어져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무언가 나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무언가는 내 삶의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성경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맘에 드는 저자들의 책을 읽는 것으로 성경 읽는 것을 완전히 대체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고 권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책이 성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와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면서 “누가 그러는데 걔는 이렇다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저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을 마치 자신이 아는 사람처럼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내가 아는 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내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가까이하고 읽고 배워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전통을 먼저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통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권위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 성경으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성경’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 정상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성경에 근거한 분별이나 판단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대한 과거의 해석이 지금에 와서는 성경과 같은 권위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성경이고 무엇이 전통인지도 구별하지 못하여 ‘성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왜 토를 다느냐’는 식의 말을 쉽게 합니다. 비슷하게, 목사님의 말이 때로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기도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달하는 한에서 권위가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도 말씀의 의미를 잘 반영하는 한에서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해”,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지 다른 무엇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왜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하고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치는지 성경으로 분별하고 성경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건전하고 올바른 성경해석에 근거하여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고칠 수 있는 겸손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충분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를 통해서 좀 더 자세하게 나누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여 성경 읽기를 계획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혹은 반복된 실패로 인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조금은 두려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성경을 펴 보십시오. 그 성경이 여러분의 손에 들어오기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귀한 말씀을 당신이 이해할 수 있게 당신 가까이 두셨습니다. 그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