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ve Solas 다섯 솔라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 개혁자들의 다섯 솔라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시리즈를 통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를 통해 성경이 우리의 최종 권위가 되어야 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솔라’는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는 표현이고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했던 ‘오직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인간이 나가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장들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과 그들이 하던 일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였습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말씀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히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7:23-25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만이 오직 유일한 중보자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못 박아 말합니다.
딤전 2:4-5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뭐, 그런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게…’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당연한 진리가 당시의 교회에서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리신 영원한 제사는 성례라는 이름으로 반복되었습니다. 그 성례를 집행하는 성직자들이 사실상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위대한 성인들의 ‘여분의 공적’을 통해 연옥에 있는 영혼이나 산 사람들이 당해야 하는 형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면죄부(면벌부 혹은 대사부)’라는 것을 발행하여 판매하였습니다. 위대한 성인들 또한 중보자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우리에 대해 더 잘 말해줄 수 있는 공동 중보자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당시 교회는 “예수는 중보자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부족’했고 그래서 다른 중보자들, 눈에 보이거나 혹은 더 좋은 중보자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 특별히 면죄부를 마르틴 루터는 비성경적이라 생각하고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그것에 대해 논쟁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그 당시 교회, 가톨릭 얘기지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얘기 아닌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와도 상관이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다시 한번 ‘오직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강하게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오직 그리스도’라는 진리가 무너진 모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오직 그리스도는 아니다.’는 생각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고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간의 ‘차이’는 서로 ‘다름’이지 누군가가 ‘틀림’은 아니기에 그 차이는 존중을 받아야 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좋은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가치관은 아닙니다. 최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성경’이 최종적인 권위라면, 이런 좋은 가치관도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다원주의적 가치관은 기본적으로는 성경의 지지를 받는 좋은 가치관이지만, ‘다름’과 ‘틀림’을 나누는 기준은 사회 질서,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 다원주의적 가치관이 잘못 적용되어 종교다원주의로 이어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배타적인 태도라고 생각하고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결국은 누구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든 (하나님, 하느님, 부처님, 알라, 천지신명 등등) 신실하게 그 신을 섬기고 최선을 다해 살면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안가고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 나는 다만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갈 수 있지만 예수님께 가는 길은 많다.”고 모호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탄절에 스님을 초대해서 강론을 듣게 하는 목사는 ‘대인배’로 사람들의 추앙을 받습니다.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다.”를 외치며 다른 종교와의 화합을 추구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밖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를 바꾸거나 축소하거나 감추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는 당연히 배타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지만 진리는 당연히 배타성을 지닙니다.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을 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맞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복음에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는 놀라운 유연성을 보여줍니다.
고전 9:20-22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을 얻기 위해 바울은 여러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복음 자체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지역에서 전해지던 ‘그리스도+무엇’의 복음에 대해 ‘다른 복음’이라고 하면서 그런 복음은 없다고 강력하게 말했습니다(갈 1:6~9). ‘다른’ 복음은 ‘틀린’ 복음이고 그런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복음을 전하면 누구라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편협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기준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 두었기 때문에(갈 1:10), ‘그것도 괜찮다.’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다른 해석의 여지를 두지 않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도 다른 사도들과 함께 담대하게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을 진리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구원자(중보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모두가 모든 면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오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배타적이지 말아야 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진리로서 선포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좀 다른 측면에서 어떻게 ‘오직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삶 속에서 무너져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