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저는 “품위 있는 예배”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사도 바울이 명령한 것처럼 함께 “모일 때에” 회중 예배 속에서 요구되는 알맞은 행동 양식이 있으며 모든 성도는 예배의 모든 방편(기도, 성경낭독, 찬양, 설교, 만찬 등)에 조화롭고 은혜로우며 합당한 태도와 자세, 행동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 칼럼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명하였습니다.
어떤 교회는 회중 예배 시간에 모든 연령층이 참여하도록 격려합니다. 갓난아기부터 시작하여 부친님, 모친님까지 빠짐없이 한 장소에서 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한다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각 연령층에 맞게 예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줍니다. 성인층을 위한 회중 예배시간에 주일학교 학생들과 어린 아기들을 위한 독립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그들로 그들 연령 수준에 맞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합니다. 무엇이 더 옳고 좋은 것인지에 대한 견해의 차는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양극단에 빠져서 한쪽만 무조건 이상적이고 옳다고 말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연령층이 함께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사실 예배 시간에 드려지는 찬송과 성경 낭독, 기도와 설교가 모두 성인에게 맞춰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일학교 찬송을 부르거나 재미있는 구연동화 같은 설교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예배의 방편들이 성인의 수준에 맞춰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에 앉아 있는 아기들 혹은 아이들이 불쌍하고 가여운 처지에 있다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세계적인 명소와 박물관을 구경시켜줍니다. 아이들이 다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가치 있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온 성도가 영광의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안타까운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져야 합니다.
구약성경 신명기는 모세가 언약의 백성 제2세대에게 전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부모들에게 이런 명령을 주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6-9)
한 마디로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명한 말씀은 바로 그 전에 나오는데, 바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5절)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요약하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모든 장소(집, 길)와 모든 시간(누울 때, 일어날 때)을 활용하여 자녀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서 나갈 때(문설주), 집으로 들어갈 때(바깥 문)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부모의 모든 삶을 통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손목과 미간에 붙여 표로 삼는 것은 나 스스로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으로 자녀들에게 강론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것을 회중 예배 속에 적용해볼까요? 모든 연령층이 함께 예배하는 그 시간에 우리는 본이 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시간에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태도와 자세가 자녀들에게 강력하게 강론되는 메시지가 됩니다. 우리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 저는 이 칼럼에서 자녀에 대한 본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바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본을 보이는가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고전 14:22-25). 우리의 회중 예배는 그 시간에 함께 하고 있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본이 되는 예배여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조용히 입을 열지 않게 하려고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배하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게만 규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배 시작 전에 혹은 주일 전날, 더 나아가 매일의 삶 가운데 아이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길이며, 아빠, 엄마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집에서나 길에서나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잘 때, 일어날 때 가르쳐야 합니다. 이 귀한 가치가 있는 본이 되는 예배의 삶을 우리의 손목과 미간에 붙여 표로 삼읍시다!
모든 연령층이 함께 모이는 경우 사실 이렇게 아이를 교훈하고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품위와 질서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진행되는 온전히 성인에게 맞춰진 예배의 방편들에 알맞게 행동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기도시간에 아이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 시간에 아이의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진행되는 예배의 흐름에 조화롭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아이를 가르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아이가 어릴수록 더 어렵습니다.
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공적으로 말하지 않으며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라고 가르칩니다(고전 14:34). 바울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거나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라고 충격적인 선포를 했던 사람입니다(갈 3:28). 바울은 지금 회중 예배 속에서 여자가 어떻게 품위 있게 예배에 합당하고 조화롭게 참여할 수 있는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잠잠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적극적인 예배 참여를 품위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들 역시 진행되고 있는 예배의 여러 방편 속에서 그에 합당한 태도와 행동 양식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에는 조용하게, 큰 목소리로 찬양하는 시간에는 소리를 내어, 경청하는 설교시간에는 잘 듣는 것으로 예배에 적극적으로 품위 있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섬김이요 동시에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훈육입니다.
우리는 극장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중간에 일어나서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핸드폰은 진동으로 하고 불빛도 환하게 비추지 못하게 합니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가지 않게 하려고 미리 화장실을 보냅니다. 극장에 읽을 책을 잔뜩 가져오거나 낙서할 종이를 가져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즐거웠는지 어떤 장면이 인상 깊었는지 물어보면서 아이가 느낀 점을 나누도록 돕습니다. 부모가 이 영화를 통해 아이가 큰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동과 교훈을 얻기 원한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회중 예배시간에 아이와 함께 앉아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입니까? 아이가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의 모습(부모 자신을 포함하여)을 통해 아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원하십니까? 그 시간 성도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함께 경험하여 아이가 자신의 생애에 하나님을 절대로 떠나고 싶지 않다고 결단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죄와 사망의 저주 아래 태어나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내 아이에게 매주 회중 예배를 통해 구원의 하나님께서 은혜와 진리를 비춰주신다면 그 빛을 조금이라도 내 아이에게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비치게 하기 위해 당신은 극장에서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모든 연령층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 제시한 극장의 예시에서 부모는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습니다. 또한, 회중 예배가 아이를 훈육하는 장소는 아닙니다. 훈육은 평소에 되어있지 않으면 주일 아침 한 시간 동안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특별히 갓난 아기나 아주 어린 아이는 부모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성인에게 맞춰진 예배의 방편들에 조화롭게 참여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아이들을 위한 예배의 방편들을 독립적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그렇게 하는 이유와 타당성에 대해 성경적인 근거로 설명하기 원합니다. 이번 칼럼을 마치면서 저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현재 우리가 모든 연령층이 함께 하는 예배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형식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전연령이 함께 예배를 드리든지 연령별로 나눠 드리든지 우리는 “본이 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모세가 부모에게 명한 것처럼 아이에게 내가 현재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주 우리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당신의 손목과 미간에 이것을 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이의 진로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선수학습을 준비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입에 넣어 빨기만 하는데도 그 아기를 위한 책을 사줍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신은 어떻게 “본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모든 부모는 하나님 앞에서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나보다 더 나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 간절히 구하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여 그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