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자녀인가, 마귀의 자녀인가?

본문 : 요한일서 3장 4절~10절

설교자 : 조 정 의

 

코로나 19 바이러스 검사를 통해 매일 확진자 수가 보도되고 있다. 검사의 정확도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일단 이 검사에 따라 모든 국민이 음성과 양성, 비 확진자와 확진자로 구분된다. 코로나 말고도 많은 사망자를 낳는 질병이 존재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망자(300만)와 환자를 낳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누구도 감염되길 원하지 않는다. 검사했을 때 양성이 나오는 건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을 통해 모든 독자를 검사하려 한다. 이 검사의 정확도는 100%다. 검사 결과 누구든지 둘 중 하나의 상태로 드러난다.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마귀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땅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영원히 복된 삶을 산다. 마귀의 자녀라면 이 땅에서 마귀의 이용과 학대를 받고 지옥에서 마귀와 더불어 영원히 고통받는 삶을 산다. 이 얼마나 중요한 검사인가? 음성/양성이 아니라 천국/지옥으로 나뉘는 검사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요한일서 3장 4-10절 말씀을 통해 당신의 영혼을 검사할 때,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유심히 확인해 보라. 천하보다 귀한 당신의 영혼이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한 곳에서 어떤 삶을 누구와 사는지 온통 그 결과에 달려 있다. 

1. 검사 기준: 죄를 짓는다(4-6)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를 구분하는 검사 기준은 바로 죄다. 4절에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4절)

“자마다”라는 표현은 “누구든지” 이 검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걸 말한다(“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은”, 우리말 성경). 죄(하마르티아)는 ‘표적을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롬 3:23). 무엇이든지 생각으로나 마음으로나 행위로나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신 것을 추구하거나,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하신 것을 추구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다.

요한이 여기서 죄를 “불법”이라 정의한 것에 주목하라. 불법은 기본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70인역 200번 이상 등장). 불법은 원어로 아노미아인데, 여기에서 무질서를 가리키는 아노미 현상이 나왔다. 그러므로 요한이 말한 불법은 단순히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를 거부하는 무법, 그래서 무질서와 혼란으로 빠지는 걸 의미한다. 법과 그 법의 제정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이 죄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거부하고 무질서와 혼돈 상태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바울은 로마서 1장에 잘 묘사하고 있다. 죄는 단순히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연약함, 부족함, 실수도 아니다. 과거의 나쁜 습관을 반복한 것도 아니다. 죄는 하나님과 그분의 법에 대한 적극적 반역이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죄를 짓는 자 곧 죄인이다(롬 3:23).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그를 믿는 자의 죄를 없애셨고 그들의 신분을 바꿔주셨다(5-6절).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5절)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다. 강력한 표현으로 단순히 죄를 짓지 않으셨다는 게 아니라 죄 자체가 그 안에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라고 소개한다(고후 5:21). 예수님 가까이에서 동행한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다고 증언했다(벧전 2:22).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 곧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는 우리 죄를 없애려고 이다. 요한의 독자는 이 사실을 알았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천사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명하면서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예언했고(마 1:21). 아버지 뜻대로 그 일을 하시려고 세례 요한에게 나왔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불렀다(요 1:29). 

구약시대 죄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흠 없는 희생양이 죽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보배로운 피를 흘려 그를 믿는 자의 죗값을 모두 치르셨고(벧전 1:19)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가져온 화목 제물이 되셨다(요일 2:2).

그 결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죄가 조금도 없으신 예수님을 믿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다(새 신분).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죄에 마땅히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옳은가?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6절)

“자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아니한다. 이것이 요한이 세운 검사 기준이다. 요한이 얼마나 단호하게 말하는지 주목하라.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다(고후 4:6). 그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요 17:3). 하나님 안에 거하며 믿는 날부터 영원히, 거룩하신(죄 없으신) 하나님과 사귐을 이 땅과 천국에서 누린다. 그런데 누구든지 범죄하는 자는 그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 영광을 본적도 없고, 인격적 앎을 얻은 적도 없다. 기준은 아주 명확하다. 9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이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까?

2. 검사 적용: 죄와 싸운다(7-10)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도 요한의 이 검사 기준 앞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내적 갈등, 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과 너무 거리감이 있는 기준이기 때문이다(롬 7:18-25). 그래서 역사적으로 요한의 이 기준은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되어 적용됐다.

1) 살인처럼 극악한 죄만 해당(가톨릭: 대죄, 소죄) –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도 간음, 지옥 형벌(마 5:28)

2) 신자는 하나님 보실 때 무죄 – 죄를 자백하라고 요구(요일 1:9), 형제가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요일 5:16)

3) 신자의 옛 본성이 죄를 짓는 것이지 새 본성은 범죄하지 않는다 – 옛 본성에 따라 죄를 행한 주체는 결국 나

4) 요한의 이상적인 기대 – 본문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5) 그리스도 안에 살면 짓지 않는다(조건) – 들락거리는 관계?

6) 의지적, 고의적 죄만 해당 – 모든 죄가 의지적, 고의적이다

위의 적용법들은 결과적으로 모두 어떤 형태로든 죄를 간과하고 허용한다. 계속 저 기준을 적용하며 살면 방종하게 된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쓴 당시에도 그리스도인이 육으로 짓는 죄를 간과하고 방종으로 이끄는 거짓 교사, 적그리스도들이 많이 교회 안팎에 존재했다. 요한은 분명한 기준을 세워 놓고 그들의 거짓에 속지 말라고 경고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7절)

편지의 독자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요일 5:13). 요한은 경계하면서 아무도 그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라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핑계와 변명을 대며 어떻게든 삶 속에 존재하는 죄를 당연하게 여기려 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죄가 양립할 수 있다고 정당화한다. 세상과 마귀도 깨끗한 물에 고기가 살 수 없다며 적당히 혼탁함을 유지하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죄를 미워하고 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그것이 요한이 말한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4-10절까지 요한이 말한 ‘범죄’는 지속적, 습관적 죄를 가리킨다(4, 6, 8, 9, 현재형, “practice of sinning”, “keep on sinning”, ESV). 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계속해서 범하는 것이다. 이런 죄에 대한 태도는 굉장히 위험하다. 바로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범죄하는 자 곧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도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 반복적으로 죄를 즐길 수는 없다. 죄를 지을 때 자백하여 용서를 받고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의 능력으로 계속해서 죄와 싸우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이다(요일 1:9). 죄와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여 싸우는 삶(히 12:4),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삶(골 3:5).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롬 8:13).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롬 6:13). 그것이 요한의 기준을 제대로 적용한 하나님 자녀의 마땅한 삶이다.

톰 라이트는 이를 피아노 연주에 빗대어 설명했다. “우리는 가끔 손가락이 미끄러져 틀린 음을 치거나, 우리가 예전에 연주했던 음악에 나오는 음들을 치게 된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다시 돌아가 그 옛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210-11pp). 

우리 삶은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 찬양이지, 마귀에게 헌납하는 악한 노래가 아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분명 있고 옛사람의 습관대로 음 이탈을 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 노래를 삶으로 연주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죄를 용납하는 사람은 그런 삶을 지속할수록 점점 더 마귀를 찬양하는 삶을 산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다. 7절에서 10절까지 요한이 기준을 바르게 적용한 결과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7-8절)

한 주석가는 7-10절까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아버지가 누구냐?”로 요약했다. 의를 행하는 자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그는 아버지가 의로우심과 같이 의를 행한다. 죄를 짓는 자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마귀다. 마귀는 처음부터(태초)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분의 뜻에 반항하여 죄를 범했다. 사람을(아담/하와) 미혹하여 하나님께 반역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는 아비 마귀에게 속하여 죄를 짓는다.

한편 하나님의 자녀가 죄와 싸우는 것은 오롯이 그들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께서 자녀 안에 창조하신 새로운 성품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8-9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 곧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마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항하며 살다가 영원히 지옥에서 멸망하게 만든다. 평생 죄에 종노릇 하며 살다가 영원히 벌 받게 하는 일이 마귀의 사역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역을 파괴하셨다. 그를 믿는 자를 죄에서 해방하셔서 더 이상 죄에 종노릇 하지 않고 의롭게 살 수 있도록 구원하신 것이 예수님의 공로다(롬 6:6; 히 2:14-15). 

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된다(위로부터 난 자, 거듭난 자). 그들은 요한의 기준을 바르게 적용하여 죄와 치열하게 싸우며 죄를 반대하는 삶을 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는 이후의 설명을 보라.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씨는 성령, 말씀, 진리, 성품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상태, 새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고, 말씀의 진리가 심어졌을 때 새롭게 생겨난 성품이기도 하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 죄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 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긴다. 죄와 공존하지 않고 언제든 죄를 범하면 자백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깨끗하게 하심을 통해 해결한다(요일 1:9). 죄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니 우리도 미워한다. 예수님께서 죄를 없애기 위해 죽으셨으니 우리도 죄를 없애기 원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가 죄를 보는 것처럼 죄를 보고, 아버지가 우리 죄를 벗겨내고 의를 입게 하시는 은혜로운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10절)

결론적으로 요한은 독자가 둘 중 하나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거나 마귀의 자녀들이거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죄를 용납하는 삶, 죄와 싸우지 않고 허용하는 삶, 나아가 10절에 말하는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삶, 그 구체적인 적용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삶이 관철된 사람, 삶의 특징으로 규정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가 분명하다. 

3. 적용

참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죄를 없애려고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희생의 상처가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진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어떻게 죄를 즐길 수 있겠는가? 아버지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을 받아 자녀가 되었는지 지속해서 바라보는 자는 거룩하신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동시에 죄를 그 교제권 속에 포함할 수 없다. 발견되는 즉시 자백하고 제거한다. 몇 가지 실질적인 적용을 제시하기 원한다.

첫째, 즉시 자백하라. 당신이 쉽게 범하는 죄, 성적인 죄, 분노, 악한 말 등 죄지었음을 깨닫는 순간 즉각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 또한 그 죄의 영향을 받은 사람에게도 용서를 빌라. 죄를 묵혀두지 말고 바로 자백하여 용서와 깨끗게 하시는 은혜를 받아라.

둘째, 항상 경계하라. 당신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작은 죄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민감하게 살피고 경계하라. 당신을 잘 아는 이에게 회개할 죄가 있는지 묻고, 하나님께 기도로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셋째, 말씀과 기도로 죄를 물리쳐라. 악한 마귀를 공격하는 무기는 성령의 검 곧 말씀이다. 기도는 전장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필수 도구이다(엡 6:17-18). 말씀의 예리한 검으로 당신 삶을 판단하고 사탄의 거짓을 분별하며,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필요한 경우 가까운 성도에게 특정 죄와 싸움을 알리고 기도 요청을 하라. 특정 죄 관련 서적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