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주를 의지하는 자의 찬양
본문 : 시편 21편
설교자 : 최종혁

1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2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셀라)

3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4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5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6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7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8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9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10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  

11대저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12네가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13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지난 번 시편 20편 말씀을 드렸는데, 20편과 21편은 다윗이 쓴 시이고 이 두 시편이 서로 짝을 이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0편은 전쟁을 앞두고 승리를 구하는 시편이고, 21편은 승리하고 돌아와서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시편입니다. 저는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기에 어떤 마음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20편). 주를 의지하는 자는 환란 중에 주를 의지하는 자이고, 주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이며(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께 합당한 것을 구하는 것), 또한 주만 의지하는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인되신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그것이 20편을 통해 우리가 보았던, ‘주를 의지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였습니다. 주를 의지하는 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함입니다(20:7). 오늘 말씀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드리는 찬양으로,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오늘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6절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과거형의 표현으로 말하고 있고, 7-13절은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이 감사의 찬양이라면, 뒷부분은 믿음과 기대의 찬양입니다. 이 시편의 시작과 끝은 비슷합니다. 1절에서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13절에서는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주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1). “여호와여”라는 표현을 통해 이 찬양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을 읽으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직접적인 내용입니다. 이 시편이 전쟁 이후의 감사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한다는 내용은 없고 ‘기뻐한다’, ‘즐거워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6). 이것은 단순히 원하던 일이 잘 되어서 기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기쁨의 근원과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왕과 백성이 기뻐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즐겁고 기쁜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감사의 이유를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전능하신 속성을 말한다기보다는, 그 힘으로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즉,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신 것, 주의 구원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20편에서 다윗은 그것을 구했었습니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20:9).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구했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마음으로 구하는 것들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의 2절 끝을 보면 “셀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미 시편에서 여러 번 나왔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한 가지는, 이 단어에는 ‘잠시 멈춘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은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양입니다. 그러다가 왜 잠깐 멈출까요? 그것은 방금했던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 묵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회중은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노래한 뒤에 잠시 멈춰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셨구나’라고 되뇌었을 것입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3-4). 3-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왕에게 “순금 관”을 씌우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무슨 용도인가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이 왕관이라고 하여 왕의 주권, 통치를 인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의 승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사람에게는 왕관을 씌워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금 관도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삼하 12장의 뒷부분에서, 다윗이 군대장관 요압의 연락을 받고 아람땅에 와서 그곳을 정복한 뒤에 했던 행동입니다. 아람땅을 정복하고나서 다윗은 아람왕의 왕관을 가지고 와서 자신이 씁니다. 정복자로서 패배한 왕의 왕관을 가지고 와서 쓰는 것입니다. 다윗은 승리했고 그것을 기념하고 높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금 관을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씌워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4). 전쟁에서 패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왕에게 승리를 주셨기에 왕이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4). 분명한 것은 다윗이 영원히 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이 땅에서 누구도 영원한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그저 오래 사는 것에 대해 말했을 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왕 중에서 비교적 장수한 왕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어쩌면 다윗의 자손 중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셨던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시편 21편을 메시야 시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저 일차적인 의미에서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5). 영광과 존귀, 위엄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6). 왕이 누리는 모든 복들, 즐거움이 하나님에게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의 말씀은 이렇듯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다윗이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왕이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고 온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을 이루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들으시고 복으로 영접하시며 순금 관을 머리에 씌우시고 생명을 주시고 영광과 존귀, 위엄을 입히시고 복을 받게 하시고 즐겁게 하신, 이 모든 일의 주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고백은 뭔가 특별한 반응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까요? 가끔 학생회 시간에 부모님들이 간식을 보내주십니다. 어떤 업체에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시면 교사가 그것을 전달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배가 고프고 간식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제가 피자 등의 음식을 가지고 나타나면 환호합니다. 아이들이 당연히 그것을 들고 온 저에게 고맙다고 합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 스스로 으스댄다면 그것은 정상일까요?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누구 부모님이 사 주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왕이 승리를 가져온 것 같지만 모든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승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공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셨고 왕은 그것을 의지하고 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20:7).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갔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공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왕이 이룬 승리에 대해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일을 우리들은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때도 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내가 한 것처럼 말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기를 잊어버린다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내가 가로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주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고 계십니까? 얼마나 여러분의 삶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제가 원하는 대답은 ‘언제나’입니다. 물론 특별하게 역사하실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도 내 삶에 개입하지 않으셨던 순간은 없습니다. 내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통해서 되었으니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감사하지 못할까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와 같이 고백하지만 그 순간 순간에는 왜 감사하지 못할까요?

어떨 때는 그냥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일이 그저 그렇게 흘러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신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전히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하셨습니까? 여러분 삶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분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역사하셨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난 내가 드러날 뿐입니다.

6절까지 과거에 하나님이 하셨던 일에 초점이 있다면 7절부터는 미래의 일에 초점이 있습니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7). 왕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지존하신 이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여기 오랜만에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심, 바로 ‘헤세드’입니다.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2-16). 이것은 다윗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사울에게는 은총을 빼앗으셨지만 다윗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다윗과 그의 자손은 견고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왕은 순종했고 어떤 왕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다윗의 궁극적인 자손인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분을 통해 온전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 인자하심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들을 징계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 복을 온전히 누리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8). 왕을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에 대해, 왕을 대적하는 자를 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좀 모호한 부분이 잇습니다. 여기서 인간 왕인지 하나님인지 헤깔립니다. 원어 성경에는 “당신”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으로 이해하더라도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왕을 통해 원수들을 물리치실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원수가 하나님의 원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9). 왕의 진노와 하나님의 진노를 같은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왕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예언하듯이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13).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를 구원하셨고 그것에 대해 왕이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이제 그 능력으로 앞으로도 구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그것을 기대하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미 하셨던 일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삶과 역사를 통해 백성들을 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확신으로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안다면 이러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큰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주가 하셨다’고 강하게 확신하십니까? 그것과 동일한 확신으로 이제는 ‘주가 하실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확신 가운데 기도하려면 기도를 과거형으로 하라’ 저는 그 말에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과거형으로 해야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과거형을 사용해서가 아니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20-21편을 통해 주를 의지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20편에서는 주를 의지하는 자의 모습에 대해 말씀드렸고, 21편에서는 주를 의지하는 자는 주께서 하신 일로 기뻐하며 찬양하고, 주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며 찬양하는 자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는 일일까요? 다윗이 말도 병거도 의지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전쟁을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길렀고 전략을 짰습니다. 다윗이 알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전쟁에 나갈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땅을 사는 우리도 동일합니다.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의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는 그것을 인정하고 누군가는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기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라면 그분께서 모든 것을 하시고 또 모든 것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분이 하신 일에 감사하고 그분이 하실 일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순간을 살아갈 때 한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잠들기 전에는 ‘오늘 하루 잘 보냈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나를 살게 하셨구나’, ‘오늘도 내 삶에 여전히 개입하시고 역사하셨구나’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