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린 왕자

본문 : 로마서 8장 26-30절

설교자 : 이병권

 

우리는 유일하신 만왕의 왕,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가 왕이시기에 우리는 왕자, 혹은 공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분은 왕자이지만 마치 비밀인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더라도 사람들은 무시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생각할 때에도 왕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나조차도 나의 신분에 대해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왕자라고 하면 사람들과 다른 뭔가 특별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나의 모습은 왕자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비교하면 나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왕자로서 가질 수 있는 위엄이나 능력은 없고 오히려 죄에 넘어지고 대적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말 그대로 여린 왕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지금 우리의 연약함에서 벗어나 완전함을 누리게 될 그날을 기다립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 있는 영광스러운 그날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그날의 영광을 기대하며 참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비교불가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학수고대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기에 현실극복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참음으로 기다리고 그날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날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지금의 고난과 어려움을 참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연약한 우리가 소망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여기 ‘도우신다’는 단어는 반대편에서 함께 붙잡는다는 의미입니다. 무거운 짐을 맞은편에서 함께 붙잡아서 옮기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짐이지만 함께 하면 들 수 있는 것처럼,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알지 못함이 있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하는데 알지 못하고 알고 있어야 하는데 잊어버리는 겁니다. 우리의 무지함이 우리의 연약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어떻게 도우십니까? 특별히 성령님은 간구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아십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 것을 잊고 지낼 수 있지만 성령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어떻게 간구하십니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기에 이러한 간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님의 간구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타납니다. 말로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그 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성령님은 친히 우리를 위해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 그날을 고대하며 탄식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날을 기다리며 탄식하는 것처럼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 탄식하고 계십니다.

탄식하는 피조물과 자녀들에 이어서 탄식하는 성령님이라고 할 때 이 사실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석가들 중에는 이 말씀을 성령님이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탄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님이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의 간구와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이 탄식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불완전한 지금의 모습을 아시기에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완전한 자유와 영광을 누리게 될 그날을 바라보고 참음으로 기다릴 수 있도록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그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기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도우십니까?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 어떻게 간구하십니까?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을 ‘마음을 살피시는 분’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서 일하는 성령의 간구를 잘 알고 계십니다. 무엇을 간구하는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간구하는지 모두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처럼 성령의 간구를 잘 아시는 것처럼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아시고 그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성령님은 서로 너무도 잘 아시기에 서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듣는 분은 기도하는 분의 모든 생각과 의도를 아시고, 기도하는 분은 기도를 듣는 분의 모든 계획과 뜻을 아십니다. 한 마음, 한 뜻, 한 생각, 한 분이신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간구하심은 반드시 응답되고 그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한 가지 질문해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한없이 작고 연약한 왕자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도 압니다. 그런 우리가 참음으로 기다리며 그날을 소망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고 마음이 힘들고 복잡할 때도 있습니다. 낙심되고 지쳐있을 때도 있고 여러 문제들과 힘겹게 씨름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다양한 어려움과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 모든 상황에서 완벽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하나님 뜻에 관해서 적중률 100%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안에서 간구하시는 성령님을 생각할 때 그날을 참음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을 생각함으로 힘과 위로를 얻어서 그날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주석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성자는 우리에 대한 모든 고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 마음속에서 중보하시는 성령은 우리의 불확실하고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성부께 설득력 있게 간구하신다.”

우리에게는 두 중보자가 계십니다. 하늘에서 일하시는 중보자와 마음에서 일하시는 중보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8:34).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그런 나를 아시고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그분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기에 우리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인 유익한지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아무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성령님은 알고 계십니다. 내 마음속 깊은 근심까지도 모두 아십니다. 내 아픔과 어려움을 아시고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성령님이 나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에게 참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연약한 우리가 소망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 교회가 알고 있었던 것 그리고 지금 우리도 알고 있는 것, 더 나아가 지금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알기 위해 세 가지 질문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누구에게 이루어집니까?

바울은 그 대상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대상으로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어느 정도 사랑하는 사람이 해당될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만 선을 이루시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두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대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추가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부르심을 입은 자는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믿는 자의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러한 특징은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이 근거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선을 이루십니다. 다시 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은 이 말씀의 대상이 아닙니다.

둘째,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이루시는 것은 선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는 선은 무엇일까요? 앞선 말씀을 보면 선은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것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이 그의 뜻대로 부르신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선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변화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의 궁극적인 실체는 그날에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그 모습이 되기까지 그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그 과정에 있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우리 인생의 모든 것들, 정말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빚으시며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힘든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고난이나 고통까지도 그 모든 것은 선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단련되고 우리의 소망은 더욱 분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사람의 관점으로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잘되는 것, 성공하는 것을 선이라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모든 것이 잘되고 결국은 성공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선은 어디까지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관점이며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바울이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늘 이것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나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에는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빚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원의 여정으로 말할 수도 있는데 다섯 과정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선을 이루시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 ‘황금사슬’, ‘연결고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절대로 끊을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과정은 이러합니다. 미리 아심(예지), 미리 정하심(예정), 부르심(소명), 의롭다 하심(칭의), 영화롭게 하심(영화)입니다. 참고로, 이것이 구원의 모든 과정을 다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례대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섯 과정은 모두 과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 하나님은 미리 아셨습니다.

미리 안다는 것은 지적으로 아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알다’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아는 것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호13:5;암3:2). 한 주석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셨다는 말은 사실상 하나님이 미리 사랑하셨다는 말과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미리 아심은 미리 정하심으로 연결됩니다.

둘, 하나님은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적지를 미리 정해두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계획을 세우셨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되는 것을 목표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셋,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부르심은 일반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제한적인 부르심입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부르심이 아니라 믿는 자를 향한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반드시 의롭게 되고 반드시 영화롭게 됩니다. 부르심은 받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부르심에 반응하게 됩니다.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역사하심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넷, 하나님은 의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근거로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의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진 것입니다.

다섯,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화롭게 되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있어서는 미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영화에 대해서도 다른 과정과 같이 과거로 기록합니다.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반드시 영화롭게 됩니다.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영화는 이미 일어난 일과 같은 것입니다. 영화로움에 이르는 연결고리를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백 명이라면 영화롭게 되는 자도 백 명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소망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선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확신의 근거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안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대로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모든 상황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으시고 그 아들의 형상으로 빚어 가십니다. 예수님의 완벽한 모습을 본받게 하십니다. 단순히 겉모습만이 아닙니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속에서부터 역사하십니다. 우리 속을 변화시키시고 변화된 내면을 통해서 우리의 겉을 바꾸십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이 나를 통해 이 땅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 놀라운 일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입양되어서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서 예수님을 닮아감으로써 진짜 가족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왕자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가 서로를 보면서 서로의 닮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벽한 구원으로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우리가 미래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으로 그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날은 올 것이고 그날에 우리는 완전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땅에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지만 나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런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일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린 왕자이지만, 온전한 왕자가 될 그날을 기다리며 왕자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