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의 일을 위해 세운 일꾼

본문 :  사도행전 13장

설교자 : 조정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제자가 된 이들을 부르는 여러 이름이 있다. 그리스도인(행 11:26). 하나님의 자녀(요 11:52). 하나님 나라 백성(행 18:10).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인(행 2:32).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8; 행 1:8).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3;15; 5:32; 10:39; 13:31).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 주님의 첫 번째 증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거하는 일꾼이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된 것은 증인이 증인을 낳고 훈련하는 사명에 지난 세월, 그리스도의 일꾼, 교회가 충성한 결과이다. 이제 우리가 충성할 차례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주의 일을 위해 세운 일꾼이 1) 어떻게 세워졌는지, 2) 어떻게 충성했는지, 3)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현재 그리스도의 일꾼,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가  주의 일을 위해 세워진 일꾼으로서 분명한 사명감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기를 결단하자.

1. 어떻게 일꾼이 세워졌는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꾼을 세우셨다. 안디옥 교회에(행 11장) 여러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앞에서, 장래 일을 말하거나, 교리 교육을 하는 일꾼들). 사울(바울, 9절), 바나바 외에도 니게르(시므온, 유대인, 흑인), 루기오(구레네 사람, 개종자), 마나엔(헤롯 안디바의 젖동생, 귀족, 높은 관리). 그들이 주님을 섬기고 금식할 때 말씀하신 이가 계셨다. 성령 하나님이다(2절).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구분하다, 할당하다)

성령님은 많은 일꾼 가운데 특별히 바나바와 사울을 구분하여 택하셨다. 일꾼을 택하신 이는 분명 하나님이시다. 바나바와 사울이 고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구분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그들에게 맡겨진 특별한 임무, 사명이 있었다. 

4절을 보면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이동했다. 안디옥에서 실루기아 항구로 내려갔고,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갔다. 그곳을 시작으로 그들은 주님이 불러 시키신 일 곧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했다(5절). 그들이 전한 말씀의 주제는 ‘예수님이 성경과 부활로 증명된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이다(행 13:16-41).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씀을 성령이 이끄시는 곳마다 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주께서 불러 시키는 일이었고, 그 일을 위해 두 사람은 성령에 의해 특별히 구별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배운다. 일꾼을 세우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는 것이다. 개인이 간절히 바란다고 무조건 일꾼이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일꾼을 세우신다. 교회가 금식하며 섬길 때 하나님은 일꾼을 따로 구분하여 부르셨다. 그리고 3절을 보면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하여 주가 세우신 일꾼을 확증했다. 바나바(10년)와 바울(15년)은 이미 오랜 세월 교회 안에서 충분히 입증된 일꾼이었다(행 11장).

하나님이 자기 일을 위해 일꾼을 세우신다. 이 원리는 교회 인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도 적용된다.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면, 당신 또한 주의 일을 위해 주께서 직접 세운 일꾼이다. 안디옥 교회 여러 일꾼이 있었지만, 바울과 바나바 외에 구브로, 갈라디아 지역에 파송된 이가 없었던 것처럼, 당신 삶의 영역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가라고 명하신 사역지다. 당신의 직장, 가정, 이웃에게 가서 예수를 증언하는 하나님 말씀을 전할 일꾼은 당신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구별된 일꾼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의 시기와 비방에 맞서 이렇게 담대히 말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13:47). 그들이 인용한 말씀은 이사야 49장 6절 말씀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의 빛이 되실 메시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 구원의 빛을 비출 자로 삼겠다’라고 명하셨다고 이해했다. 주가 그 일을 이제 그들에게 위임하셨다고 확신했다. 당신도 그 확신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주가 주의 일을 위해 따로 세운 일꾼이다. 특별한 부르심을 입었다. 당신 주변을 비출 구원의 빛으로 삼으셨다.

2. 어떻게 일꾼이 충성했는가?

① ‘가라’는 명령에 충성했다. 구원의 빛이 비춰져야 할 곳까지 이동했다. 주가 필요한 이들이 있는 곳까지 적극적으로 찾아갔다. 사도행전 13-14장, 안디옥에서 구브로, 갈라디아 여러 지역을 돌아 다시 수리아 안디옥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총 1,430km를 이동했다. 주석가 슈나벨에 따르면 하루에 걸어서 이동한 거리가 무려 24km 정도였다. 13장에 기록된 여정만 보면, 안디옥에서 실루기아 항구, 구브로까지 몇 시간의 항해, 구브로에서 살라미까지 7일 길을 걸어서, 다시 배로 바보에서 밤빌리아 버가로, 밤빌리아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최고 해발 3,000m에 이르는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160km의 길을 걸어서 이동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안다고 말했는데(갈 4:13), 이 지역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의 두통과 발작을 겪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이 지역엔 또 유명한 강도와 도둑 떼가 있었는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도의 위험…을 당”했다는 바울의 고백이 여기에 잘 들어맞는다(고후 11:26). 충성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② 예수를 전하는 일에 충성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략은 회당을 시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구브로 살라미-5절, 비시디아 안디옥-14절). 유대 인구가 많은 곳이어서 여러 회당이 있었다. 회당엔 정통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교 교리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을 숭배한 이방인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16절),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43절))이 있었다.

13장의 절반 분량이(16-41절)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 말씀인데, 그 내용을 봐도 두 일꾼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익숙한 이들에게 딱 맞는 말씀을 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주로 이방인이 청중이었던 루스드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전한다(14장).

바울의 설교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곧 그리스도이시다.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이를 통해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는데, 사무엘을 비롯한 사사도 그리스도가 아니었고, 사울, 심지어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도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윗의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란 약속이 주어졌다.

천년 후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의 회개를 일으켰지만, 그도 그리스도 앞에선 하찮은 종에 불과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바로 예수님이시다(23절). 그분은 선지자의 약속대로 나무에 달려 죽으셔서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셨다(29절). 또한 성경에 기록된 부활의 예언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다(시 2:7; 사 55:3; 시 16:10).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38-39절). 하지만 누구든지 그분을 거절한다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40-41절). 그들은 성경으로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일꾼으로서 어떻게 충성했는지 볼 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첫째, 우리도 가야 한다.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의 사역지로 우리도 사명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에게 맡기신 영혼을 책임지고 찾아가야 한다. 물리적인 거리, 심리적인 거리, 관계적인 거리가 있더라도, 질병이나 강도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맡기신 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더라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가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한다. 사명의 시작은 ‘가라’이다.

둘째, 예수님을 증거할 때 지혜가 필요하다. 듣는 이가 이미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무엇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교회 경험이 거의 없고 성경을 잘 모르는 이에게 한 시간 동안 앉아서 하나님의 어린양,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설명하는 건 지혜로운 방식이 아니다.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게 명백한 이에게 계속 말하는 것도 지혜롭지 않다. 

어떤 사람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증언은 일부 부인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기독교나 기독교인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늘 들어온 이들은 아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 방황한다. 이렇게 다양한 청중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우리는 지혜롭게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려면 예수님 닮은 선하고, 온유하고, 거룩하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야 하고, 바울과 바나바처럼 성경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한다(벧전 3:15).

3. 어떻게 일꾼이 결실을 맺었나?

바울과 바나바가 주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하나는 영접, 다른 하나는 배척이다. 구브로 바보에서 그들은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성령의 역사를 맛보았다. 반대로 총독 옆에서 계속해서 그의 회심을 방해했던 마귀의 자식 바예수도 있었다(7-8). 성령께서 바울을 충만하게 하셔서(9절), 배척하는 이를 심판하시고, 영접하는 이에게 믿음을 주셨다(11-12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수많은 유대인과 유대교 개종자, 심지어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48절). 하지만 반대로 유대교의 유산과 지위를 사랑했던 이들은 이들을 시기하여 비방하고 반박했다. 자기들이 동원할 수 있는 회당 인맥을 총동원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그 지역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50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는 것이다. 바예수를 눈멀게 하신 분, 서기오 바울에게 믿음을 주신 분 성령 하나님이시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믿음에 이른 자들은 모두 48절에 기록된 대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자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52절).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결과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았다. 배척하는 이들에게 담담하게 반응했다. 발의 티끌을 떨어버렸다(너희가 받을 심판에 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 그들은 다만 전하는 일에 충성했다.

우리가 주의 일꾼으로 주를 증언할 때 낙심하고 좌절하는 이유는 종종 결과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꾼이다(고전 3:6).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의 씨를 뿌리고 말씀의 물을 줄 때 기쁨으로 자라는 이도 있었고, 시기하여 배척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어찌하겠는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뿐이다(고전 4:2). 결과가 아니다. 충성이다(구약 선지자).

낙심하지 마라. 거절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에게서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라. 포기할 수 없는 귀한 영혼이 있다면(가족, 친척, 친구), 예수님을 말과 삶으로 나타내는 일에 충성하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하나님께 날마다 간절히 구하라. 

결론: 1) 당신은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일꾼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의 빛으로 삼으셨다. 2)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궁극적으로 당신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 증거하는 일이다. 주께서 가라고 하신 그곳에 반드시 가라. 그리고 주님 주신 지혜로 예수님을 말하고 가르치라. 3) 다만, 결과를 주께 맡겨라. 당신이 충성해야 할 것은 전하는 것이지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당신의 충성을 통해 하나님이 마귀의 자식을 하나님 자녀로 바꾸신다는 것이다. 의의 원수였던 자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다.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