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본문: 요한계시록 19장 1-10절

설교자: 조정의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묘사한다(사 61:10).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신부이고(호 2:16, 20),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을 간음이라고 지적한다(겔 16:7-14). 선지사 호세아를 통하여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취하라고 하신 것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묘사한다(고후 11:2). 에베소서 5장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라는 큰 비밀을 밝힌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잠시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우리 결혼 관계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궁극적인 결혼을 나타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우리 결혼이 사용된다.

모든 결혼은 이 땅에서 시작해서 언젠가 끝나지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결혼은 영원 전에 시작되어 영원까지 이르는 궁극적인 관계다. 그러므로 결혼 한 성도나 아직 결혼 하지 않은(혹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성도, 결혼 관계가 끝난 성도 모두 궁극적인 그리스도와의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라는 면에서 같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서 허락하신 관계들에 감사하며 그 관계를 통해 복을 누릴 수 있지만, 우리가 사모하며 기다리는 궁극적 관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영생의 관계다.

본문은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노래한 천국 혼인 잔치를 담고 있다(1절). 마침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영생의 관계를 온전히 누리게 될 그날, 그리스도와 교회가 혼인식을 치를 그날을 다룬다(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7절). 구체적인 신부와 신혼집의 아름다운 모습은 21장에 기록되어 있다. 19장에서는 1) 준비된 신랑, 주님의 위엄 찬란한 모습, 2) 준비된 신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한다. 각각의 장면을 통하여 오늘날 결혼 잔치를 앞둔 신부로서 우리가 신랑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어떻게 자신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1. 준비된 신랑, 주님(1-6)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1절). 요한이 19장에서 들은 노래는 전장에서 들은 애가와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18장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상과 벗한 이들, 관계를 맺은 자들이 세상의 패망을 보며 가슴을 치고 애통히 여기며 부른 슬픈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그 후에 들은 노래는 기쁨이 가득한 찬송 소리였다.

① 누가 찬송을 불렀는가? 하늘에 허다한 무리(1절). 무리 가운데는 교회를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와 고위급 천사를 가리키는 네 생물이 포함되어 있었다(4절, 그룹). 또한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자들도 함께 찬양했는데(5절), 대환난 기간에 목숨을 바쳐 어린 양을 따른 셀수 없이 많은 성도들을 가리킨다(계 11:18,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 보좌를 둘러싼 허다한 무리의 천사들도 함께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웅장한 찬양을 불렀을 것이다(6절). 

② 누구를 향한 찬송인가? 하나님(1, 4, 5, 6절). 특별히 요한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이 장에서만 네 번이나 사용된 단어를 통하여 특별한 찬송 대상을 가리킨다: 할렐루야(1, 3, 4, 6). 히브리어 할랄(‘찬양하라’)과 야(‘야훼’) 합쳐진 단어의 음역인 할렐루야는 오직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 그 백성이 합당한 찬양을 올려드릴 때 사용된 특별한 용어다. 구약 성경에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할 때 사용되었다. 

마지막 시편인 150편은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노래한다(1, 2, 6절). 마지막 날 하늘 성소에서, 그 권능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할 것이다. 그분의 능하고 위대하신 구원의 절정을 노래하며, 할렐루야!

③ 찬양의 제목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위엄 찬란한 모습이다. 그 모습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영광능력을 통해 나타나고(1절). 자기 원수를(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 심판하시는 됨과 의로우심을 통해 나타난다(2절). 또한 자기 보좌에 앉아 전능하신 힘으로 통치하심을 통해 나타난다(6절).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1, 5, 6절).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원 전에 우리를 택하여 언약의 관계를 맺고, 그 언약에 따른 신실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 원수를 심판하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다스리실 우리 신랑이시다. 그분의 위엄 찬란한 모습을 당신은 기대하는가? 사모하는가?

신부인 교회가 이 땅을 살아가는 힘은 바로 신랑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얼마나 자주 또 깊이 바라보는가에 달려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성도는 신랑의 무궁한 영광과 능력과 부와 지혜에 압도되어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돌려드리는 천상의 예배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리고 있을 것이다(계 4-5장). 우리도 곧 그 웅장한 찬양 소리에 우리 목소리를 더할 것이다. 

지금 무엇이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가? 무엇이 당신을 염려하게 하는가? 무엇이 당신을 좌절하고 낙심하게 하는가? 누가 당신을 미혹하고 넘어뜨리는가? 무엇이든 누구든 그보다 크고 위엄 있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라. 무엇이든 누구든 결코 우리를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 신랑을 바라보라. 그 위엄 찬란한 영광을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2). 

2. 준비된 신부, 교회(7-10)

하늘에 허다한 무리는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찬양을 불렀다: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7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내인 교회가 혼인기약이 이제 정말 이르렀다. 우리는 영광 받기 합당하신 위엄 찬란한 신랑을 봤고, 이제 준비된 아름다운 신부를 볼 차례이다. 

그리스도의 아내(신부)가 “자신을 준비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있다. 바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다(8절). 천사는 그 옷을 자신을 준비한 신부가 “입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했다(8절). 이 옷은 무엇을 가리키고, 허락하셨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먼저, 신부가 입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신부의 정결함, 순결함을 상징한다. 신랑을 향한 충절을 나타낸다. 신랑이신 주께서 그 옷을 입도록 허락하신 것은 신부가 혼인 기약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정결을 지키며 준비를 잘하였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약혼을 한다. 1년 정도의 약혼 기간 동안 신랑은 신부와 함께 살 처소를 예비하고, 신부는 자신의 정결을 지킨다. 약혼 기간을 마친 후에 신랑과 신부는 성대한 혼인 잔치를 벌인다(일주일 이상). 그리고 그 잔치의 절정은 혼인 예식인데, 신랑이 신부 집으로 찾아와 신부를 데리고 준비된 신혼집에 데리고 가서 혼인이 완성되고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연회가 이어진다(마 22, 25장). 

영원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혼인 언약을 맺으셨다(약혼).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피로 우리 허물과 죄를 씻으시고 자기 신부로 삼아 허물과 티, 주름이 없도록 정결하게 세우실 것이다. 신랑이신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셨고(요 13:2-3), 신부인 우리는 신랑이 데리러 오기 전까지 자신을 준비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충절을 지키고, 세상과 간음하여 죄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정결한 신부로서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신랑이 데리러 올 그날까지.

그래서 천사는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말했다(8절). 옳은 행실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은 계시록 7장 14절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함께 영원한 사귐을 누리는 자들이 입고 있던 흰옷의 비밀을 설명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혼인 잔치에서 교회가 입게 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신랑이 자기 피로 씻어 입도록 허락하신 옷이다.

한편 신부는 신랑이 자기 목숨을 다해 입혀준 거룩한 옷에 걸맞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함을 입은 우리는 마땅히 거룩함을 입은 자에게 합당한 삶을 기쁨으로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교회는 신랑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신랑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마 7:21).

천사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9절). 이것이 정말 참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또 이렇게 말했다: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9절).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정말 복된 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혼인 잔치 중에 예복을 입지 않아 바깥 어두운 데 내던져진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마 22:12-13). 그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3). 혼인 잔치의 복은 오직 택함 입은 자만 누린다.

누가 택함을 입은 자인가? 예복을 입고 있는 자다. 옳은 행실로 자신을 준비하는 자다. 완벽한 삶을 요구하는 것인가? 아니다. 하지만 안주하는 삶, 나태하고 미지근한 삶, 반복적이고 의지적이고 지속적으로 죄에 머무는 삶, 거기서 회개하고 돌이켜 계속해서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지 않는 자들은 분명한 경고를 받아야 한다. 

착각하지 말라. 성경은 분명히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또 그와 같은 것들”에 얽매여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갈 5:20-21).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라는 말이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 교회 다녔든지, 얼마나 많은 헌신과 봉사를 했든지, 얼마나 복음과 성경을 많이 알고 있든지 상관없다. 신랑이신 주님은 문밖에서 열어달라고 외치는 당신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마 7:23; 25:12).

주님은 오늘도 신부인 교회에게 성령으로 말씀하신다. 그 음성을 듣고 교회가 끝까지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신다(2:7).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2:5), 죽도록 충성하며(2:10), 세상을 멀리하고(2:16), 주가 오실 때까지 굳게 잡고 있기를 원하신다(2:25). 미지근한 신앙이 아니라 뜨거운 신앙을 갖기를 요구하시고(3:16), 회개하고 열심을 내기를 기뻐하신다(3:19).

3. 결론

<더 깊게>라는 책을 쓴 데인 오틀런드는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자신을 거룩하게 빚어가는 성화의 삶을 강력하게 살려면, 반드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신 하나님 품에 더 깊게 안겨야 한다고 말했다(개혁된실천사, 2023). 본문에 맞게 각색하여 말하자면, 신부가 신랑을 더욱 사모하여 자신을 지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반드시 신랑이 어떠한 사랑으로 자신을 신부로 삼았는지 기억하고 또 신랑의 품에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오틀런드는 두 가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적용을 제시했는데, 바로 신앙의 들숨과 날숨으로 불리는 성경 읽기와 기도이다. 우리는 성경 읽기를 통해 신랑의 위엄 찬란한 영광과 우리를 향한 불가항력적 사랑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영육간의 필요를 아뢰고 그분의 신실한 응답을 의지하고,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신랑께 고백하여 내보낸다.

우리 육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매 순간 들숨과 날숨을 반복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만나는 그날까지 신앙의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라. 그러면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당신을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 것이다(엡 5: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