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선지자의 글이 말하는 성육신

본문: 여러 본문

설교자: 조정의

예수님의 성육신은 이천 년 전, 예고 없이 일어난 돌발 사건이 아니다. 창세 전에 계획되었고, 태초부터 예언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가리켜 많은 것을 기록하게 하셨다. 이 기록을 우리는 구약 성경이라고 부르는데, 예수님은 이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라고 칭하셨다(눅 24:44-45). 예수님은 자기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아셨고, 가르치셨다. 실제로 이루신 그리고 이루실 예언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바로 신약 성경이다. 

지난번, 우리는 모세의 율법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어떻게 가리키고 있는지 세 가지 이미지를 통하여 살펴봤다: 여자의 후손, 하나님의 어린 양, 모세와 같은 선지자. 이제 선지자의 글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어떻게 가리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1. 선지자의 놀라운 예언

성경 예언 백과사전의 저자 존 바톤 페인은 구약 성경에서 어떻게든 메시아를 묘사하거나 가리키거나 언급하는 구절의 수를 세었는데, 574구절이나 된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경학자, 알프레드 에더샤임은 구약 성경에서 456구절이 메시아를 가리키거나 메시아의 때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적으로 접근해 봐도 예수님은 적어도 300여 개의 예언을 그분의 공생애를 통해 성취하셨다. 한 사람에 관한 수 백개의 예언, 참 놀랍다.

단지 예언의 수가 많아서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예언의 방법도 놀랍다.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로 본다면, 가장 오래된 예언은 예수님의 성육신으로부터 1,4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 가장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자기 백성을 고치고 원수를 심판하러 오실 메시아를 예언했는데, 주전 430년경에 기록되었다. 이렇게 오래전에 기록된 예언이 이뤄졌다는 사실만 해도 놀라운데, 족장 시대부터 노예 시대, 광야 시대, 정복 시대, 사사 시대, 왕국 시대, 재건 시대까지, 성경의 모든 시대에 걸쳐 각각 다른 문화와 역사의 배경 안에서 예언했고(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영향 아래), 왕부터 평민, 학자, 농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선지자가, 히브리어, 아람어 두 개의 다른 언어 체계로 각각 예언한 것이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피터 스토너라는 수학자는 “과학이 말하다”(Science Speaks)라는 책에서(미국과학협회 검토) 구약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예언된 내용이 정확히 이루어질 확률을 계산했다. 그는 8개의 예언만 선정했는데, 1) 메시아가 태어날 장소(미 5:2), 2) 메시아 앞서 보내실 사자(말 3:1), 3)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것(슥 9:9), 4) 친구의 배신을 당할 것(슥 13:6), 5) 은 30에 팔릴 것(슥 11:12), 6) 은 30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살 것(슥 11:13), 7) 동정녀 탄생(사 7:14), 8) 고난과 죽음(사 53:4-8), 이 8가지 예언을 어느 한 사람이 성취할 확률은 10경분의 1이다. 한국의 약 3.5배 되는 크기의 땅 전체에 1원짜리 동전을 빽빽하게 쌓기를 1.5m까지 하고, 그중 하나의 동전에 표시한 뒤, 단 한 번에 그것을 찾을 확률이다. 그런데 적어도 구약 성경엔 예수님에 관한 60가지 이상의 내용이 예언되어 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 선지자의 성육신 예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지자의 예언 자체가 주는 놀라움을 대략적으로 살펴봤다. 이제 성육신을 가리켜 기록한 선지자의 글을 예수님이 어떻게 이루셨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① 성육신 장소: 베들레헴

베들레헴 에브라다(베들레헴의 옛 이름 혹은 흡수 됨)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선지자 미가는 유다 족속 중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그냥 왕이 될 사람을 말한 게 아니다. 그의 근본이 상고까지(아득한 옛날), 얼마나 먼 옛날인가? 영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나실 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란 말이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 곧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말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요 1:1, 14).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예언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오실 것을 미가의 예언을 통해 확신했다. 동방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예루살렘까지 온 박사들에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 장소를 말해 줬다: “유대 베들레헴”. 그러면서 그들은 미가의 예언을 근거로 들었다: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5-6). 예수님은 정확히 예언된 그 장소에서 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기적적으로 성취된 역사다. 요셉은 원래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는 약 230km 떨어진 베들레헴까지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10일 이상 걸려 이동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누가는 그들이 왜 베들레헴으로 이동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기록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소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1-7).

가이사 아구스도가 황제가 되지 않았다면, 로마 제국 전역에 호적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그 명령이 늦게 요셉에게 전달되어 아기를 먼저 나사렛에서 낳았다면, 혹은 베들레헴으로 이동 중에 양수가 터졌다면,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지 않을 가능성과 요인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국의 권세가 세워지는 시점부터, 요셉과 마리아의 발걸음 속도까지,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전능하시고 영광스러운 섭리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신다. 하나님의 손은 섬세하고 따뜻하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세세하게 만지시고 다루시고 사용하신다.

② 성육신 방법: 성령으로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주전 730년경의 이 말씀은, 당시 선지자 이사야가 낳은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나타내시고 그들을 결국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말씀이 성취된 것은 바로 730년 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나셨을 때다.

‘처녀’로 번역된 히브리어 알마(עַלְמָה)는 ‘결혼 적령기의 소녀’를 뜻한다.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였다(눅 1:27). 천사가 그녀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했을 때, 그녀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었다(눅 1:31, 34).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라고 말했다(눅 1:35). 천사의 말대로 마리아는 잉태했다. 그런데 약혼자 요셉이 이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고 엄격한 율법대로 그녀를 돌로 쳐서 죽이기보다 의로운 그의 성품대로 가만히 파혼하려 했다. 하지만 꿈에 천사가 나타나 잉태된 아기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마 1:19-20). 그러면서 이것이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2-23). 

처녀 마리아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은 요셉의 시험을 통해 입증됐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요셉은 천사의 설명을 꿈에서 듣고는 아들을 낳기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다(마 1:25).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요셉의 씨일 가능성을 조금도 만들지 않은 셈이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남자의 씨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 나신 유일한 분이시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건지시고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하여 친히 사람이 되셨다(마 1:21).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희박한 확률로 엄청나게 많은 요인이 다 맞아떨어져야 성취될 수 있는 경이로운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고 신비롭게 모든 것을 조율하셨기 때문에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처녀(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것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전자를 섭리, 후자를 이적이라 부른다. 둘 다 하나님의 영광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3. 성육신 예언의 교훈

존 파이퍼는 <섭리>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섭리로 목적하신 모든 뜻을 이루실 때 그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밝혔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길과 행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것”(생명의말씀사, 2021, 362p). 우리는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기념할 때, 이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 성령으로 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찬양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길과 행위를 통하여 당신을 위한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파이퍼는 같은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이 세상과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날마다 생명을 지탱해 주는 수많은 섭리로 인해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세계를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을 보여주는 극장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를 지성이 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본다. 아울러 반역과 자기 예찬에 몰두하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비난할 기회를 찾고 있고, 반항적인 피조물을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수많은 친절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정당화하곤 한다”(270p). 

당신도 혹시 그렇지 않은가? 이 세계를 거대한 기계로 보고 있지 않은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일상적으로 혹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수많은 친절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기회만 생기면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편 106편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을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죄를 자백한다.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기억하시며 수많은 섭리로 날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은 언약을 기억하셔서 수많은 섭리로 날마다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도 잊어버렸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큰 섭리와 이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선지자의 예언대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나신 것이다. 어떻게 이 사실을 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랍고 아름다운 영광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현재 당신의 삶도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을 보여주는 극장임을 잊지 말라. 보이는 것만 가지고 불신과 불평을 쏟아내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담긴 영광을 바라보고 찬송과 감사로 반응하라. 특히 당신이 기념하고 기억하고 노래하고 표현하는 성육신의 은혜가 실제로 당신 삶에 기쁨과 위로와 만족과 감사를 낳기를 바란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기적 같은 사랑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