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음이 약해질 때

본문 : 시편 61편

설교자 : 최종혁

 

시편 61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땅 끝에서”(2절)라는 표현 때문에 저자는 이스라엘을 떠나 있었던 포로기에 이 시편을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시는 다윗의 시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땅 끝에서”라는 표현과 4절에 나오는 주의 장막에 머물기를 원한다는 표현을 통해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있었던 상황이었음은 알 수 있다. 60편의 상황처럼 전쟁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다윗은 왕이 된 후 압살롬의 반역 때도 도망했었던 경험이 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다.

여러 가능성들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다윗이 지리적으로 어디에 있었느냐보다, 그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을 “땅 끝”이라고 표현할만큼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끼는 상황에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땅 끝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다윗은 그런 마음으로 이 시편의 기도를 시작했다. 다윗에게 있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은 믿음의 중심이고 삶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다른 시편에서도 많이 볼 수 있듯이 다윗은 하나님이 계신 그곳을 사모했다. 다윗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렇게 하나님 계신 곳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땅 끝에 있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그냥 멀리 있어서 그립기만한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약해져’ 있었다.

이 표현은 그냥 그런 느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 짓눌리는 것을 말한다. 그 상황 앞에서 내가 무력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 번역들을 보면 “내 마음이 연약할 때”, “내 마음이 짓눌릴 때”, “내가 낙심할 때”, “내 심장이 떨려 힘이 없을 때”와 같이 번역했다.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잃은 상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다. 지쳐버린 상태다. 무엇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어떤 결정도,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다.

땅 끝에 있어도 마음이 약해져 있지 않다면 괜찮다. 이겨낼 힘이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을 만나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여기 다윗이 그런 상황에 있었다. 그가 처한 상황이 객관적으로 봐서 어느 정도로 압도적이고 고통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윗의 마음이 약해져 있음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와 다윗이 만난다.

우리도 다윗처럼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것들에 꼼짝할 수 없고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의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이 나를 약하게 만들고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경제적인 타격을 받아 그럴 수 있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영적 거리두기가 되어 버렸을 수 있다. 영적으로 교회와 멀어지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서 우리의 마음이 약해져 있을 수 있다.

계획한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오래 준비한 일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거나,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재앙 같은 상황을 만나거나, 우리는 다윗처럼 땅 끝에서 마음이 약해져있을 때가 있다. 내가 직접 당하는 일들, 내가 사랑하는 자들이 당한 일들로 인해 우리는 마음이 약해진다.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뭐가 필요한지를 모르고 멈춰서있을 때가 있는 것이다. 시편 61편은 다윗이 그런 상황에서 기록한 시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준다.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약해질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1-2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3-7절),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8절)를 배워보자.

I.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다(1-2절)

먼저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다(1-2절). 다윗은 “나의 부르짖음”이라 말하고 “내 기도”라고 말한다. 또한 2절에서는 “주께 부르짖는다”고 말한다. 1절의 부르짖음은 일반적으로는 기쁘게 소리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큰 소리는 아무 의미없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요청한다.

A. 들으소서(1-2a절)

첫번째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얘기처럼 듣지 마시고 주위를 기울여 내 얘기를 좀 들어달라고 다윗은 하나님께 요청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라고 표현한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은 들을 수 있으시다. 그 마음이 약해져 있어 그의 부르짖음은 너무나 작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들을 수 있으시다. 그러니 기도할 수 있다. 땅끝에 있든지, 마음이 약해져있든지 기도할 수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다. 성경이 믿는 자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명하는 것은 하나님은 “쉬지 않고 들으신다”는 전제가 그 아래 있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최소한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도 기도다.

B. 인도하소서(2b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2절)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60편 9절에서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라고 물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조금은 특별한 표현을 사용한다. “나보다 높은 바위”. 바위는 시편에서 20번 이상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이어지는 62편만봐도 3번이나 하나님을 반석(바위)라고 표현한다. 광야에서 생사를 건 피난 생활을 했었던 다윗에서 있어서 바위는 그 상징하는 바가 분명했다.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다. 높은 바위라면 그만큼 더 안전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단순히 높은 바위가 아니라 “나보다” 높은 바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자신이 이미 높은 바위라고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것들이 의지할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다윗을 자신들의 ‘높은 바위’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보다 더 높은 바위, 가장 강력하고 따라서 언제나 안전한 바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바위는 다윗보다 살짝 높은 바위도 아니었고 무한히 높은 바위,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구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마음이 연약할 때 우리가 소망을 품는 무엇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이 있으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높은 바위인 것이다. 그런 바위들이 무너져내리면 우리 마음도 함께 무너져내린다. 우리 마음이 약해진다. 더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언제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야할 바위도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II.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3-7절)

다음으로 3-7절 말씀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임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다윗은 자신의 경험과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한다.

A. 경험(3-4절)

3절의 더 좋은 번역은 “주는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고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가 되어주셨습니다”일 것이다. 지금이 다윗의 삶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약해질 때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듯이 다윗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 다윗은 담대함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그 마음에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탄식 가운데 신음하기도 했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나님께 깨어 나시라고, 일어나시라고 명령하듯 요청하기도 했다.

그 모든 일들을 통해 다윗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도 별 것 없네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높은 바위”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고 원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견고한 망대가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다윗은 양을 칠 때 곰과 사자의 입에서 자신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골리앗과의 말도 안되는 싸움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사울 왕의 위협에서 절묘하게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계속되는 전쟁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 어떤 피난처보다, 그 어떤 망대보다, 더 안전하고 튼튼한 피난처와 망대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그는 경험했던 것이다.

그래서 4절에서 다윗은 지금도 하나님께로 자신이 피한다고 말한다. 영원히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 있기를 원한다. 특히 궁극에는 바로 하나님의 날개 아래, 하나님의 가장 친밀한 보호하심 아래 있기를 원한다. 마치 아기새가 가장 안전하게 느끼는 것이 어미새의 날개 아래, 그 품이듯이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가 가장 안전함을 알기에 그 아래로 피하기를 원한다.

제임스 보이스는 여기서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한 비유적 표현들이 자신과 하나님의 거리를 점점 좁히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피난처는 바깥 어딘가에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면 망대는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두신 곳이지만 그 날개 아래는 가장 하나님을 가깝게,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피난처는 땅 끝에 있는 다윗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다윗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계신 예루살렘으로, 성막으로, 더 나아가 그 날개 아래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더 친밀하게 나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가까이해서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신 것이다. 다윗의 경험은 그런 확신을 주었고, 그래서 지금 마음이 약해진 이때 그는 이 경험을 기억하며 확신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했다.

당신의 경험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경험을 통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가까이 하면 내가 다칠 분인가? 마음이 약해진 나를 책망하고 꾸짖기만 하는 분이신가?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는 분이시고 약해진 우리를 강하게 세워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그런 확신이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하다.

B. 약속(5-7절)

다음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언급한다. 하나님이 그의 서원을 들으셨다. 이 서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분명히 지키셨음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을 주셨음을 언급한다. 여기서 “기업”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의미한다. 특별히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복이다. 만약 다윗이 지금 왕이 된 후에 정복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다윗은 지금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친히 목격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이 지금 그와 그 백성에게 이루어지고 있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6-7절의 말씀은 좀 갑작스럽다. 하지만 이런 약속(언약)의 맥락에서 읽어보면 다윗이 왜 여기서 갑자기 ‘왕’을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의 때에 이렇게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라는 언약의 말씀을 주셨고 이에 대해 다윗은 이런 기도를 드렸었다.

삼하 7:25-26 [25]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6]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높여지기를 다윗은 구했고,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에 근거하여 자신을 포함한 왕을 보호하여 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져서 주의 이름이 크게 높임을 받으려면,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왕을 하나님께서 그 언약대로 보존하고 보호하여 주셔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런 요청은 언약을 받은 자로서 당당히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윗은 이 모든 것들에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가 필요함도 말한다. 말씀하신 것을 폐하지 않으시고 변하지 않는 언약의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속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이런 언약은 그의 마음이 약해질 때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다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의 이 기도대로 하나님은 인자와 진리로 다윗의 왕조를 보호하셔서 이 땅에 그의 자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셨다. 그리고 오늘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님 안에서 모든 기업의 약속을 받았다.

그 기업의 복은 궁극적으로 하늘에 속한 것이지만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하늘의 소망이 이 땅의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시험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구원을 안전하게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늘 나라를 약속하셨고 상급을 약속하셨다. 우리 마음이 약해질 때, 이 모든 약속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마음이 연약해질 때 무엇이 필요한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을 수 있다. 그 때 그동안 내가 경험한 하나님, 그리고 성경을 통해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해보라. 마음이 연약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에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그 확신 가운데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III.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예배다(8절)

마지막으로,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예배임을 8절에서 배울 수 있다.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한다는 것은 입술의 예배라고 할 수 있고 나의 서원을 이행한다는 말은 삶의 예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단순히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지 않는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한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한다.

마음이 약해질 때도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해야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무거운 책임이자 특권이 바로 예배다. 우리는 결과적으로도 예배해야하고 모든 과정에서도 예배해야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리는 지나치게 나 중심적이 되기 쉽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것 같고, 누구도 나를 몰라주는 것처럼 생각한다. 기도를 해도 나 중심적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하나님이 나한테 뭔가를 잘못하신 것처럼 원망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하시면 안되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 기분이 이러니 주변 사람들도 나한테 농담도 하면 안되고 내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연약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그러한 때에라도 내가 해야할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셨을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또한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선물로 주신다.

도전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나님은 마치 성경 안에만 계신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성경이라는 책 안에 갖혀계신 것 같다. 성경의 하나님은 홍해도 가르시고 아픈 사람도 고치시고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자를 심판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신 것 같은데, 내 삶에는 그런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멀리 떠난 아빠 사진을 매일 보다가 하루는 울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가 이 사진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책 안에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 마음이 약해질 때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나는 땅 끝에서 크게 소리쳐야만 할 것 같을 때가 있다. 아무리 크게 소리를 쳐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해보기 바란다. 그의 마음이 약해질 때,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이 필요했고, 무엇을 해야했는지 기억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보기 바란다. 다윗은 기도할 수 있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필요해서 그의 경험과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예배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이 연약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 말씀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