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리아의 찬양
본문 : 누가복음 1장 46절~56절
설교자 : 이  병  권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저는 오늘 마리아의 찬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자신이 아들을 낳을 거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놀라운 말씀을 받아들였고,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나사렛으로부터 유대까지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며칠을 걸어갔을까요? 3박 4일 정도로 예상합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그 시간 동안, 먼 길을 어린 여자 아이가 걸어갑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도대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생각들과 기대감, 불안감, 걱정, 정말 복잡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리아는 먼 길을 걸어갔고 드디어 사가랴의 집에 도착해서 엘리사벳을 만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축복합니다. 엘리사벳의 축복을 듣자,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소망을 찬양합니다. 그 찬양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기적적으로 임신한 두 여인의 만남, 그 기쁨과 감격의 현장에서 마리아의 입술로부터 감사의 찬양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정말 뛸 듯이 기뻐하십니까? 최근에 여러분이 기뻐하며 즐거워했던 적은 언제입니까? 어떤 이유로 그렇게 기뻐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우리의 참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찬양하며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기쁠 때, 내 마음에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내 마음이 그러한 감격으로 푹 빠져 있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과묵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경상도 남자라 해도 그것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말입니다. 마리아가 지금 그러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감격으로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오늘은 이 마리아의 찬양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그 대상에 따라 세 가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무엇을 찬양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첫 번째 대상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에는 구약의 여러 말씀들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마리아는 잘생긴 연예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기다리며, 인기 있는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을 나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46절과 47절을 보겠습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6절과 47절을 보면 서로 병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6절과 47절이 서로 짝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내 영혼이, 내 마음이” 그리고 “주를, 하나님 내 구주를” 그리고 “찬양하며, 기뻐하였음은” 이렇게 46절과 47절은 하나로 묶어 줄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짝을 지어 반복함으로 지금 부르는 찬양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 영혼”, “내 마음”이라고 반복하는 것은 이 찬양이 개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바로 ‘내가’ 주를 찬양 합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개인적인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자신에 대한 표현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49절까지 그런 표현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46절에 “내 영혼이” 47절에 “내 마음이” 그리고 “내 구주를” 48절에 “그의 여종” 그리고 “나를” 49절에는 “내게” 마리아는 연이어서 하나님을 자신과 관련지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리아는 왜 이렇게 찬양하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48절과 49절에서 말합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우리 성경에는 모두 생략되었지만, 원래 48절과 49절은 각각 이유를 말해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이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첫째 이유는 48절, 둘째 이유는 49절.’ 두 가지 찬양의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보셨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큰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유는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사건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은 바로 메시아를 잉태한 일입니다. 이것은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을 더 놀랍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여종을 통해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스스로를 여종이라 말합니다. 자신은 복종해야만 하는 신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을 받아 메시아를 잉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자격 없는 자임을 알기에, 마리아는 겸손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하신 이 일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복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이와 같은 일을 행하셨기에 사람들은 마리아를 복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의 결과입니다. “이제 후로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마리아를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마리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제 후로는” 이라는 표현은 누가복음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이제 후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전과는 결코 똑같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그 분이 행하시면, 이전과 이후가 생깁니다. 행하시기 전과 행하신 이후가 분명하게 달라집니다.

여러분에게 이전과 이후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큰일을 행하지 않으셨습니까? 자격 없는 나를 돌보시고, 나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품어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에게 이전과 이후가 생겼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도 우리 인생에서 “이제 후로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로 인해 우리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이후의 삶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생각하며 그 분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전에 우리는 생명이 없었는데, 죽어있었는데, 이제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전에 우리는 소망이 없었는데, 이제는 소망이 있습니다. 전에 우리는 하나님이 없었고, 영원한 멸망에 심판 아래에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놀라운 일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마리아의 찬양의 관심, 그 대상은 마리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둘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두 번째 대상은 모든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찬양하는 이유는 이제 보다 확대됩니다. 50절부터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로 찬양의 초점이 바뀝니다. 50절을 보시면,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마리아의 관심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서 모든 사람에게로 전환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일을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 찬양합니다. 이와 같이 찬양의 초점이 개인에게 시작해서 신앙 공동체나 폭넓은 대상으로 그 관심이 바뀌는 것은 시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하시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모든 사람을 위한 일반적인 경험으로 확대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단지 마리아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자신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51절에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팔이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비유적으로 그분의 행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하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 다섯 종류의 “자”가 나옵니다. 어떤 “자”입니까? (51)“생각이 교만한 자”, (52)“권세 있는 자, 비천한 자”, (53)“주리는 자, 부자” 이렇게 다섯 자입니다. 긍정적인 대상과 부정적인 대상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천한 자와 주리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게 되지만, 교만한자, 권세 있는 자, 부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권세 있는 위치에 오르면 하나님이 그를 벌하십니까? 그 권세를 허락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부자는 어떻습니까? 재산이 있으면 하나님이 무조건 심판하십니까? 여기서, 누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게 됩니까? 단순히,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면 되는 걸까요? 그냥, 가난하면 하나님이 사용하는 자가 되는 겁니까?

여기나오는 “자”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50절에 있는 “자”를 알아야 합니다. 50절에는 어떤 자가 나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50절에 나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기준이 되어서 나머지 “자”들을 분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같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을 벌하시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비천한 자들을 높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반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혁명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미 맛보고 있지만, 그 날에 온전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단순히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 부자를 미워하시고, 가난한 자와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은 사랑하신다. 이런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면 이 말씀은 사회운동을 위한 구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이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훈을 오해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사회적 지위의 높낮이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은 긍휼하심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러면 두려워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서워서 벌벌 떠는 걸 말할까요? 캄캄한 밤에 혼자 화장실갈 때 느끼는 그런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위와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그분의 높으신 권세를 인정함으로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께 순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감사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한 사람은, 그 분이 하시는 일을 아는 사람은,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은 사람은, 진심으로 그분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종으로 이어지고 입술의 찬양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십니까?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어떠함으로는 절대 그 앞에 나아갈 수 없는 분을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세상 사람은 하나님을 만만히 여기며 함부로 대합니다. 참으로 존귀하신 하나님이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으로 사용하는 세상입니다.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여기에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요?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그분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이 하시는 일을 분명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그분이 주시는 긍휼하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마리아의 찬양의 관심, 그 대상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대상으로 넘어갑니다.

III. 셋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세 번째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자신의 찬양의 마지막 단락에서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돌아봅니다. 오래 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54절과 55절입니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특별히 “종”으로 언급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도우십니다. “도우신다”는 이 단어는 꼭 붙잡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능하신 이가 권능의 팔로 그 종 이스라엘을 꼭 붙들고 계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말씀이 성취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사실은 “기억하시되”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락에서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기억한다’는 이 말은 ‘돕는다’는 말과 서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 때문에 이스라엘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자기 백성을 위한 행동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분이시기에 그것에 근거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까먹으면,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일을 잘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해버립니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더라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한다 하더라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능력이 없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싶지만 불가능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 정말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지만 안 됩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살면서 이와 같은 수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일이지만 기억 못해서 못할 때가 있고, 기억해도 능력이 없어서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한계가 없으십니다. 그분은 하신 약속에 대해서 반드시 지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까먹지 않으십니다. “아차! 그 일 해야 되는데 깜빡했네!” 이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아! 그거 너무 힘들어. 못하겠어!” 이러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변함없는 신실하심과 그 크신 능력에 근거해서 그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말씀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고 이루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일 하십니까? 5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50절에 이미 언급했던 긍휼하심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기억하시고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 일을 행하십니다. 긍휼을 말하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약의 헤세드를 번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긍휼의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또한 그의 백성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기억하시며, 그들을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해 하시는 일은 그분의 말씀에 근거한 자비와 신실한 사랑의 결과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그 긍휼하심은 그분이 택한 백성에게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으며, 또한,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도우십니다. 그래서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 힘이 되시며 우리를 붙잡고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 변함없는 약속에 근거해서, 그 신실하심을 의지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변치 않으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기억하시기 때문에, 그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 모든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리아의 찬양을 살펴봤습니다. 이 찬양은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대한 찬양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자비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나님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에게 긍휼을 베푸심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이 찬양은 하나님의 복에 동참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자비와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시면 거의 모든 표현들이 다 과거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그렇게 하셨듯이,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을 확정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표현들은 미래를 바라보는 과거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 중에 유일하게 현재형이 하나 나옵니다. 그것은 찬양한다는 동사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신 일을 돌아보십시오. 그분이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고,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그분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참으로 기뻐하며 노래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되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그분으로 기뻐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여러분에게 이전과 이후의 삶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을 하나님 경외하는 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십시오. 입술로 그분을 찬양하며, 삶으로 그분을 노래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