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윗의 삶을 통한 고백 3 – 주를 사랑합니다

본문 : 시편 18편 30-50절

설교자 : 최종혁

시 18:30-50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37]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38]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39]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40]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4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2]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4]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45]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지난 시간에 다윗의 삶을 통한 고백으로 ‘주를 사랑합니다’와 ‘주를 의지합니다’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기초한 고백으로 ‘주를 찬양합니다’라는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3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살아계심에 대해 30-45절에서 설명하고, 46-50절에서는 말씀을 요약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시작은 “태초의 하나님이”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모든 말씀의 기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증거로 나타납니다. 자연 만물이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들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는 것, 곧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30). 앞 구절을 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 하나님 그분의 도는 완전하다”입니다. “이 하나님”은 바로 앞에서 말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29). 다윗이 의지했던 바로 그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길,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가시는 길,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적으로 맞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어떠한 불의도 거짓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하나의 선을 이루어냅니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이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우리가 무엇을 더하거나 빼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지식과 지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30). 순수하다는 것은 불로 정제하는 과정, 그 결과물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검증되었다, 진리임이 입증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하신 바를 언제나 완전하게 이루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 115:2-3).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물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는 모든 일을 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저들이 섬기는 이방신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호자와 피난처로서 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30). 이제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셨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31). 답이 편한 질문들입니다. 다윗은 이것에 대해 이미 마음 속에 결론이 나 있는 듯합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삶을 통해 그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던 경험을 말합니다. 앞 부분 1-19절에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장엄한 문체로 설명했다면, 이제는 동일한 사건을 다윗 개인의 입장에서 설명합니다. 자신이 전쟁을 준비하고 치르고 승리하고 어떻게 끝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주목할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내가 어떻게 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윗이 한 일이었으나 그는 자신이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32-35). 하나님은 다윗을 강하고 민첩하게 하시고(“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전쟁 시 유리한 곳에 세우시며(“높은 곳에 세우시며”), 방패를 주시어 그로 싸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그를 붙들고, 온유함이 그를 크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스펄전은 “만약 하나님께서 그분의 위대하심을 ‘낮아지심’없이 나타내셨다면 우리는 그 발에 밟혀야만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은 다윗을 구원하시기 위해 수고를 감수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기억하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36-39). 다윗은 자신의 전쟁 경험을 돌아보면서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40-41). 이제 적은 완전히 제압되고 패배하여 도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부르짖다가 최후에는 여호와께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그들의 부르짖음은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세에 몰리자 그저 적국의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 뿐임).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어 완전한 승리를 거둡니다.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42-45). 다윗은 완전한 승리와 정복을 마쳤고, 이방인들까지도 다윗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기록은 사무엘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삼하 8:9-10),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삼하 10:19).

다윗의 승리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이 시편의 앞부분에서 자신을 표현했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죽음이 자신의 앞에 있었고 언약의 하나님이 다윗을 버린 듯한 완전한 패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은 승리했고 적들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다윗의 삶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데서 나타났습니다. 다윗의 삶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적으로 체험했기에, 그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특별한 것은, 이 승리가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미 약속하신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심판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에게 직접적으로 하신 약속도 있습니다. 그가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삼하 7:8-11).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이었고 다윗이 삶을 통해 경험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 경험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닙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특권에 대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고 말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전쟁 중에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도 아니고 언약의 자손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이방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이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서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있습니다. 첫 인류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메시야를 약속하셨고 그를 보내셔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라는 놀라운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시고 응답을 받으셨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드러내시고 선한 일을 행하신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도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믿는 자로서의 평안함과 기쁨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환란 중에 지혜를 구하신다면, 여러분에게 그런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윗의 이전에 살았던 성도들도, 이후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도 유일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 삶을 통해 경험해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여호와는 살아계시니”(46).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다윗의 감정, 그의 마음에서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선포합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다른 이방신들처럼 죽어있는 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그렇게 살아가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그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47-48). 다윗은 이렇듯 자신이 경험한 삶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말합니다.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46).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게 해주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 승리가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예배라는 것은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에 해당되는 표현은, ‘절한다’,‘무릎을 꿇는다’,‘엎드린다’ 등입니다. 모두 자신을 낮추고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다윗을 높이시고 크게 하셨기에 이제 다윗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마땅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일을 하시지 않아도 찬송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분의 위대하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찬양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다윗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49). 이방민족들과 함께 찬송하겠다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이 구절은 사도 바울에 의해 로마서에 인용됩니다.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롬 15:9-11).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들이 바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을 예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50). 다윗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의 후손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자손들은 이 말씀을 붙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구원을 기다리며 하나님께 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작은 구원을 주셨지만, 또 하나님은 더 큰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죄에 빠진 온 인류가 하나님께 나올 수 있게 하는 것, 구원의 길 말입니다. 그 일을 다윗의 자손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다윗의 궁극적인 자손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누구나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7-18).

이스라엘 자손은 다윗의 자손으로 올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언제 와서 우리를 구원할까 늘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눅 1:68-71). 이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나가서 그분을 찬양하고 높이는 일이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에서 오는 고백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배운 원리,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으십니까? 이러한 구원을 경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무엇이 우리의 마땅한 의무일까요.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긍휼과 자비, 사랑, 은혜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기억하시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