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데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들어 가는 불쌍한 영혼을 어떻게 하든지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열심은 본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를 찾는데 열정이 있는 자들이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열정이 잘못된 경향을 쉽게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거듭나기만 한다면 잘못된 성경해석도 쉽게 허용하려는 경향, 믿지 않는 자가 성경을 믿게 된다면 거짓 정보도 쉽게 사용하려는 경향입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 있어서 조금 미비한 것이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입니다. 물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생각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준비한 것에 부족함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한 것을 허용하려는 것, 그리고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니까”라고 핑계 대는 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에 역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그들이 쉽게 허용한 거짓과 오류 때문에 참되고 진실한 진리의 말씀까지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고고학적인 자료입니다.

많은 전도자가 고고학적 자료를 사용하여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 가운데 노아의 홍수나 홍해에 빠진 애굽의 전차 바퀴 사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또 “떨기나무”에서 주장한 출애굽의 새 경로를 그대로 인용하여 저자가 제공하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출애굽의 역사성을 입증합니다. 문제는 그 자료의 신빙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론 와이엇이 발견했다고 처음 주장한 노아의 방주나 애굽 전차 바퀴는 고고학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인 론 와이엇이 홍해 바닥에 미리 심어둔 거짓 증거였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학계에서 그 신빙성을 객관적으로 밝힌 적도 없는 자료입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목사나 학자들 가운데 론 와이엇의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출애굽의 새경로 역시 론 와이엇의 아이디어입니다. 한국에서는 “떨기나무” 김승학 집사가 그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객관적으로 입증되기 힘든 자료들입니다. 보통 이스라엘 유적을 발견할 때 사용되는 철저한 조사나 검증과정 없이 “오! 하나님, 제가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고고학적인 자료로 사용되기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입증해줄 만한 증거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료들을 전도할 때 진지한 고려 없이 사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이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자료니까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확실한 도구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제시되는 자료들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신빙성 없는 자료인지 보게 됩니다. 노아의 방주나 홍해의 전차 바퀴, 출애굽의 새 경로가 거짓임을 밝히는 사람들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결국은 이런 가짜 자료들로 성경을 입증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맹신하고 있는 진리의 진실성을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에겐 고고학적으로 공신력을 갖춘 훌륭한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많은 고대문서와 돌판, 유적과 유물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와 바퀴와 출애굽 경로에 대한 자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그 자료들이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예수님의 얼굴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 토리노 수의 등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수의에 묻어 있는 피의 DNA까지 이야기하면서 말입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 성도들을 거듭나게 한 것이 여러 가지 역사적 유물이나 증거들처럼 썩어질 것이 아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언제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고고학적인 자료가 있어서 말씀이 사실인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실입니다. 고고학적인 자료는 그 사실을 재확인해주는 증거일 뿐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노아에 대한 기록이 사실인 것이 아니고, 애굽 전차의 바퀴가 발견되었기에 홍해를 건넌 기록이 역사성을 띄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말씀이 진실을 말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증거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역사성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은 뒷받침입니다. 말씀 뒤에서 받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인터넷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진이나 이야기들을 진지한 검증 없이 가져와서 믿지 않는 자에게 “이러한 자료들 때문에 성경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자료의 부실함과 거짓된 정보가 드러나는 동시에 “이러한 자료들 때문에 성경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용인 복음을 얻게 하려고 고고학 자료라는 포장을 했지만, 포장이 너무 허술하고 거짓되어 그 속에 있는 복음도 함께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외부 자료를 사용하고 제시할 때는 참된 진리의 말씀을 뒷받침해주는 역할로서 제시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시로 제3 성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전도자가 제3 성전을 사용할 때는 제3 성전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이나 성전 재건을 꿈꾸는 유대인들의 시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자는 제3 성전과 계시록과 다니엘서에 기록된 종말론적 사건을 연결지어 결국 “주 오심이 이렇게 가깝다, 그러니 회개하고 구원을 얻으라”는 말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문제는 고고학적 자료와 유사합니다. 성경은 제3 성전 이야기가 시작되기 수천 년 전부터 주 오심이 가깝다고 선포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제3 성전이 있어서 재림의 임박함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 이미 선포하신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주님의 오심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3성전과 주의 재림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성경의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에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계시록은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기록되었지만, 상징적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 표현들을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성전”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는가? 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재건 후 3년 반의 대재앙이 시작된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의 문제가 이어집니다. 제3 성전의 이야기와 실질적 준비들은 최근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십수 년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백 년 이상 성전은 세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전 재건 후 수백 년 간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종말에 대한 성경의 기록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성전”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성전의 완공이 대재앙의 신호탄이며 7년 후에는 재림이 임한다는 가설을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감추어둔 비밀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시한부 종말론자가 저지른 심각한 오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성전이 이 세대에 건축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진전이 없을 때 무엇으로 믿지 않는 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양치기 소년처럼 “늑대가 곧 온다!”고 여러 번 외쳤으나 결국 거짓이라고 드러난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양치기 소년이 말하는 “진실”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더 나아가 제3 성전은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일입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전도자는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는 때와 시기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아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조차 다시 오실 그 날의 때와 시기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는데 우리가 무엇이기에 마치 그때와 시기를 어느 정도 추측하고 어느 정도 임박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많은 전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복음을 열정적으로 선포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또 많은 전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고 성경에 해박하여 기록된 말씀을 바르고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전도자와 목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들의 열정을 본받기 원합니다.

하지만 전도자 가운데 성경의 잘못된 해석을 쉽게 용인하려는 경향이나 외부 자료를 철저한 검증 없이 사용하려는 경향을 멀리하지 않아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잘못된 정보로 구도자를 협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신실하고 참되게 말씀을 선포하는 일꾼들의 평판 마저 땅에 떨어뜨립니다.

무신론자들은 모든 기독교인이 이들과 같다 생각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을 어리석은 광신도나 맹신하는 자라고 비방합니다.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도 제3 성전을 강조하는 사람을 보며 모든 세대주의를 믿는 사람이 이처럼 무식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타는 열정과 함께 예리한 이성과 지혜를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열정에 불타 검증되지 않은 거짓 자료들을 구도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철저하게 검증하고 분별하여 참된 것으로 진실로 참된 진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도자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진리의 말씀은 거짓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면서 어둠으로 포장해서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있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도자의 불타는 열정으로 전해질 때 예리한 이성과 순전한 지혜가 진리와 손잡고 함께 역사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