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잠언 23장 29-35절에 대한 해석을 물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서 이 본문이 성경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라”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칼럼으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에 도움을 얻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하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29-35)
본문은 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술 취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 솔로몬은 먼저 질문 합니다.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까닭 없는 상처,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냐고 묻습니다(29). 정답은 바로 “술에 잠긴 자”입니다(30).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입니다. 이 당시에도 혼합주를 마셨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잠 9:5).
혼합한 술은 포도주에 향료나 도수가 낮은 포도주를 섞은 것으로 보통 포도주보다 더 독한 술을 가리킵니다. “술에 잠긴 자”는 우리말 성경에서 번역한 것처럼 “술에 찌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술이 있는 곳에서 계속 미적대며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NAC주석의 저자 가렛은 마치 자기 손에 들린 한 잔의 술이 곧 자신의 감각을 죽일 것을 알면서도 그 술에서 위로와 안정을 찾으려는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NAC, 197p).
솔로몬은 이런 자에게 재앙과 분쟁, 원망과 까닭 없는 상처, 붉은 눈이 있다고 말합니다. 술 취함에 대한 경고의 잠언입니다.
물론 포도주는 겉으로 볼 때 붉고 잔에서 번쩍입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멋지다는 것입니다. 마실 때 순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갑니다. 맛도 좋다는 말입니다(31a). 하지만 저자는 포도주가 외관상 아름답고 맛이 좋다 할지라도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31b).
왜 이렇게 강하게 경고할까요? 바로 32절부터 나오는 술의 실체 때문입니다. 결국, 그 아름다워 보이던 붉은 것이 뱀 같이 물 것이고 독사처럼 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을 똑바로 보는 능력을 잃게 되고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로 내지 못합니다. 시각과 언어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바다 위에 있을 때처럼 심지어 돛대 위에 누운 것처럼 속이 좋지 못하고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상태가 됩니다. 몸이 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대한 결과나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못합니다. 지각능력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깨고 싶지 않아 다시 술을 찾습니다. 늦은 밤 회식자리에서 우리는 이런 상태의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잠언이 마치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듯이 오늘날 술 취한 자가 보여주는 어리석은 모습들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이 본문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30절에 나오는 강력한 경고로 “너는 그것을(포도주) 보지도 말지어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문장을 가지고 “성경은 ‘술을 보지도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본문에서 우리는 “술을 보지 말라”는 일반 원리를(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뜻) 도출해낼 수 있을까요?
먼저 본문은 분명히 “너는 그것을(포도주) 보지도 말라”라고 말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문맥이 술 그 자체보다는 ‘술 취함’을 다루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술은 솔로몬이 묘사한 온갖 재앙과 분쟁과 원망과 상처를 낼 소지가 다분한 음료인 것이 사실입니다. 술을 철저히 통제하지 않으면 쉽게 술에 통제당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음료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술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이것이 전부라면 결국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대로 술을 보지도 않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성경해석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기본적인 원리인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 14장 20절에서는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합니다. 먹는 것 중 어떤 것을 그 자체로 더러운 것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말합니다(딤전 5:23). 심지어 우리 구주 예수님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 불렸습니다(마 11:19). 비방하는 자들의 비약적 조롱이었지만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에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만일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반적인 원리라면 예수님도 바울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술 자체를 악하고 더러운 음료로 구분하여 ‘보는 것 마저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우리는 잠언 말씀이 술 취함을 아주 강력하게 금하기 위해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경고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야 합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녀에게 “너 스마트폰을 아예 손에서 떼어버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이 필요한 통화를 해야 할 때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녀도 잘 알아듣습니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니 되도록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잠언의 강력한 경고 역시 이처럼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이 잠언 본문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잠언 본문의 중심주제는 “술 취함”이었습니다. 성경은 술 취함에 대해 일관성 있게 경고하고 있습니다(잠 23:21; 롬 13:13; 고전 5:11; 6:10; 엡 5:18). 물론 본문에서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성경의 다른 구절을 참고하여 잠언 본문을 해석해보면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술 취함에 대한 아주 강력한 경고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결론적으로 잠언 말씀으로 “성경은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다”라고 일반 원리를 도출해서는 안 됩니다(더 나아가 “보지도 말라고 한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잠언 본문으로 “성경은 술 취함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동일하게 지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잠언은 심지어 ‘보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술 취함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술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예전에 쓴 이 칼럼을 참고해보십시오: 술 마시는 것은 죄인가요?
오늘은 성경해석에 대한 예로 잠언 23장 29-35절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구절로 “술은 보지도 말아야 한다”라고 성경적인 원리로서 제시하는 분들이 있지만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라”는 성경해석의 기본원리를 따라 본문을 살펴볼 때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의 해석을 “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나의 해석을 “성경적”이라고 말하는지 계속해서 물어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